먹거리 X 파일과 100년의 가게
소비자 고발이나 불만 제로와 같은 류의 프로그램들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한데, 1) 분노하는 사람들, 2) 불신하는 사람들, 3) 외면하는 사람들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가장 흔한 경우가 분노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어떻게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나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서비스업에서 고객들을 우롱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분노한다. 그 다음의 경우는 불신하는 사람들이다. 불신하는 사람들은 좀 더 차분하게 그러한 르뽀 프로그램을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믿거나, 혹은 모든 식당들에 대한 불신을 키우기도 한다. 대상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지만, 아무튼 이 사람들은 의심이 강한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음식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사람들에 대해서 보도하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눈길을 주지 않고, 귀를 막는다. 그러한 프로그램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차라리 알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먹는 음식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듣고 싶지 않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딱히 다른 대안도 없는데, 그냥 찝찝할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이러한 성격의 사람들이 이 말을 하지 않을까? ‘대안 없이 죽이지 마라’
최근에 Channel A의 먹거리 X파일을 열심히 봤다. 특히 냉면 육수에 대한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나는 물냉면의 육수는 냉면 그릇의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깔끔하게 마시는 편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물냉면 육수가 고기나 사골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화학 조미료와 식초로만 만든다는 사실이 정말 충격적이었다.먹거리 X파일은 대부분의 시간을 기존 식당들의 ‘먹거리 장난질‘을 파헤치지는데 할애하지만, 그래도 이 프로그램의 백미는 ‘착한 식당‘을 선정하는 부분일 것이다. 열심히 식당들의 잘못된 관행들에 대해서 파해친 다음에, 사실은 그렇게 장사를 하지 않는 정직한 식당을 찾아서 소개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비슷한 토픽을 가진 TV 프로그램이 하나 더 있으니, 그것은 바로 KBS의 100년의 가게 라는 프로그램이다. 100년의 가게는 말 그대로 전세계에서 100년 이상이 된 가게만을 찾아서 소개한다. 100년 이상 지속된 가게들은 저마다 자신들만의 스토리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몇가지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참고로 백년의 가게에는 식당 이외에도 제조업/서비스업의 다양한 산업이 소개되고 있으나, 여기서는 식당 혹은 리테일 레스토랑에 한정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성공의 공식 1 – 레스토랑의 원산지와의 강한 유대 관계 OR 원산지의 리테일의 보유
내가 두 프로그램을 거의 한 회도 빠지 않고 모두 본 다음에 내린 레스토랑 사업에 대한 가장 강력한 성공 공식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레스토랑 (리테일) 업자가 원재료 산지와의 강한 관계를 토대로 한 양질의 원재료 확보를 하거나, 혹은 원재료 업자가 레스토랑 (리테일) 점포를 하는 경우가 가장 성공적이라는 점이다.
일류 요리사들은 하나같이 요리 기술보다는 얼마나 좋은 원재료를 고르는가?에서 요리의 맛이 90% 이상 결정난다고 한다. 아무리 훌륭한 요리사가 좋지 못한 원재료로 맛을 낸다고 한들, 좋은 원재료로 서툰 요리사가 한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먹거리 X 파일이나 100년의 가게에서 소개하는 성공적인 가게들의 하나같이 공통적인 성공 공식은 바로 리테일 레스토랑에서 원산지와의 강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양질의 재료를 꾸준히 공급받거나, 혹은 아예 이러한 원산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먹거리 X 파일에서 소개한 착한 콩국수집은 충청도의 한 콩밭에서 콩을 전량 공급받는다. 칼국수 면의 비밀 편에서 소개된 집도 역시 가게에서 5분 거리에 밀밭을 직접 경작하는 집이다. 추어탕편에서의 착한 가게 역시 아침마다 가게 주인인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미꾸라지 채집에 나선다. 100년의 가게 역시 마찬가지이다. 1930년 일본 교토에서 문을 열고 지금까지 침구류를 판매하는 이와타라는 이불집은 노르웨이나 스웨덴에서 거위털을 공수해오는데, 산지에 직접 가서 고르는 것은 물론, 일본에 수입된 후에도 철저하게 재료를 관리한다.
성공의 공식 2 – 한가지 주재료를 사용한 메뉴 관리
KBS 백년의 가게와 채널A의 먹거리 X파일을 보면서 내가 정리한 성공적 레스토랑에 대한 논리는 아래와 같다.
- 사람들은 좋은 음식을 먹기를 원한다.
- 좋은 음식은 좋은 재료에서 출발한다.
- 좋은 재료는 대부분 국산 원료를 토대로 한다.
- 국산 원료 중에서도 양질의 재료를 잘 선별하고,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두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는
- 농부 입장에서는 시장(market)에 원재료를 공급하는 순간 제값을 받기 어렵다.
- 레스토랑 입장에서는 시장에서 원재료를 공급받는 순간 (중간 유통마진 때문에) 좋은 재료를 사기 어렵다.
- 따라서 농부와 가게 입장에서 모두 직거래에 대한 인센티브가 강하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농부들과 레스토랑들이 직거래를 해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왜일까?
그 이유는 100년의 가게나 먹거리 X파일에 소개되는 훌륭한 가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대부분 여러가지 재료를 사용한 다양한 음식을 팔기 보다는 한두가지 주재료에 의해서 음식의 맛과 질이 결정되는 아이템을 팔고 있다. 추어탕, 백숙, 칼국수, 콩국수, 메밀국수 등등이 모두 그러하다. 즉, 수십가지 재료를 콘트롤해야 하는 비즈니스모델이라면 절대로 양질의 원재료를 산지에서 직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대부분의 레스토랑은 한두가지 메뉴보다는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김치찌게, 된장찌게, 불고기, 냉면, 삼겹살 등을 모두 한 집에서 팔고 있다면, 어떻게 모두에서 양질의 원재료를 직송받겠는가? 따라서 다양한 메뉴를 공급하고자 하는 레스토랑이라면 산지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양질의 재료 공급이 어려울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를 방해하는 요인은 ‘가격의 압박’일 것이다. 대부분 먹는장사를 시작하는 상인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하거나, 아니면 별다른 기술없이 리스크가 적기 때문에 이 업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을 터. 그러한 현실에서 낮은 가격으로 높은 이익을 챙기려는 가게들이 대다수인 것은 전혀 이상한 일도, 비난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엉터리 레시피나 프랜차이즈 사업을 몇천만원씩 받고 팔거나, 이러한 엉터리 레시피를 ‘구현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엉터리 식자재 업체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 또한 문제일 것이다.
위의 프로그램들에 공개되는 성공사례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결국 주인들의 원재료에 대한 집착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좋은 원재료 확보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양질의 원재료가 모두 떨어지면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가게 문을 닫기 일쑤다. 그 모든 것이 한두가지 주재료만으로 메뉴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손님이 너무 많아져서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원재료 공급이 딸리기를 원하지 않아서 언론에 공개되는 것을 꺼리기도 하는 것이다.
성공의 공식 3 – 단순함의 승리, 며느리도 모르는 비밀 레시피 따위는 없다.
우리는 항상 유명한 맛집이나 대단한 요리가에게는 자신만의 비밀 레시피가 있어서, 그러한 레시피는 누구에게도 전수해 줄 수 없는 신비한 무언가가 존재하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의외로 백년의 가게나 먹거리 X파일에 나오는 가게들은 자신들의 레시피를 쉽게 공개한다. 오히려 쉬쉬 하는 쪽은 주방에 무언가 구린 구석이 있는 가게들이다. 그들은 제작진이 레시피를 물어보면 ‘돈내고 물어보라’는 식의 빈정거림으로 일관하지만, 사실은 엉망진창의 주방을 숨기고, 위생도 최악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착한식당’들은 의외로 주방을 순순히 공개한다. 비밀을 물어보면 위에서 언급했듯이 대부분이 원재료에 대한 주인들의 집념과 양질의 원재료의 안정적인 공급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은 그 내용을 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하루아침에 카피할 수 없다.
예컨대 메밀국수편의 ‘착한가게’의 비밀은 좋은 국산 메밀을 잘 손질해서 손으로 꾹꾹 눌러서 만드는 메밀국수를 만드는 할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할아버지는, 메밀을 먹으라고 담당 의사가 권했다며 환자복을 입은채로 찾아오는 어떤 손님을 언급하시며, 본인 무릎이 성하지 않은데도 메밀 반죽을 빚으신다. 감동 ㅠ.ㅠ) 추어탕이 맛있는 집의 비밀은 새벽마다 자연산 추어를 잡기 위해서 나서는 가게 주인 부자가 있기 때문이다. 맛있는 칼국수 면발의 비밀은 국산 밀을 재배해서 맷돌로 갈아주는 국내 몇개 남지 않은 방앗간에 찾아가 곱게 갈아서 그 밀가루로 반죽을 만들어서 24시간 발효시켜야 한다. 맛있는 백숙을 만들기 위한 닭은 좁은 닭장이 아니라 넓은 공간에서 방목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튼튼하게 자란 닭이어야 한다. 착한 팥빙수 집의 팥은 강원도 원산지의 팥을 매일 조금씩만 끓여서 만든다.
당신이 위에 나열한 ‘비밀이라고 말하기조차 민망한 사실들‘을 알았다고 한들, 쉽게 따라할 수 있겠는가?
항상 정답은 간단하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나가며…
나는 경영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써, ‘돈벌려고 하는 짓은 모두 나쁜짓’ 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싫어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방식에 맞써 싸우려고 노력한다. ‘돈벌려고 하는 짓’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대부분) 나쁜 짓이라는 편견이 가득하다. 이윤을 추구하면서 훌륭한 아이디어를 세상에 널리 전파해서 사회에 공헌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기업의 이익실현을 통해서 기업을 일으키고, 고용을 창출하고, 함께 일하는 종업원들에게 월급을 주며, 주주들의 가치를 실현하려고 열심히 일하는 창업가, 기업인, 직장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싫어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은 바로 정말로 ‘돈만 벌려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이다. 먹거리 X파일의 냉면육수 편을 보면서 정말 사람들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서 우리나라에서 음식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에 대한 이해도 약간은 하게 되었는데, 그 구조에는 이른바 사이비 레시피 장사들과 원가압박과 이익극대화라는 미명하에 아무런 죄의식 없이 화학조미료 육수를 만드러낼 수 있도고 만들어 주는 식자재 업체들이 일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항상 이런 문제는 밸류 체인 상에서 어떤 한 단계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인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 경제학자들은 항상 농업과 먹거리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아담 스미스나 맬서스 같은 경제학자들을 비롯해서 많은 고전경제학자들은 농산물이 거래되는 전통적 의미의 시장에 주목했다. (어쩌면 당시에는 공업이 상대적으로 덜 발달해서였을 수도 있다) 그들이 제시하는 시장이라는 곳은 알아서 자신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고, 자원을 분배하는 곳이다. 하지만 적어도 2012년 대한민국의 농업과 음식 리테일(레스토랑)의 경우에 한해서는 시장이라는 곳은 경쟁으로 인한 가격 인하와 개개인의 이익 극대화 욕구라는 변수들이 기형적인 음식문화를 자꾸만 양산해내는 것 같다.
농민들은 점점 더 시장에 물건을 내놓아서는 원가조차 건지기 힘들다고 아우성이고, 식당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좋은 식자재를 시장에서 구매해서 사용하면 손해를 보면서 장사를 할 수 밖에 없다고 또 아우성이다. 도대체 그 사이의 가치(밸류)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모르겠다. 국산팥 가격이 중국산 팥 가격보다 10배 가까이 비싸다고 하는데, 국내의 팥 생산량은 점점 줄고 있다고 한다. 좋은 팥빙수를 먹고자 하는 사람은 늘고 있는데, 좋은 팥을 생산하는 사람은 점점 줄고 있다. 도대체 이 괴리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2012년 대한민국에서는 시장보다는 오히려 원산지와 레스토랑을 연결하는 직거래 모델에 미래가 보인다.
글: MBA Blogger
출처: http://mbablogger.net/?p=4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