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강남스타일’ 신드롬. B급 문화에 대한 선호일까 아니면 ‘디지털 공유의 문법’에 대한 선호일까. 어느 한 가지 요인으로 규정하고 설명한다는 건 어리석은 접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존의 ‘접근 프레임’에서 한발짝 벗어나 뉴미디어와 그 뉴미디어에 담기는 콘텐츠의 달라진 문법을 확인해보는 작업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글은 ‘싸이 강남스타일’을 B급 문화론으로 바라보는 전통적 문화비평 시각에서 벗어나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다.
디지털 문법과 유튜브
미디어의 혁신은 그 안에 담길 콘텐츠의 혁신을 견인한다. 디지털 미디어는 디지털 미디어에 걸맞는 콘텐츠를 요구하고 그것에 어울리에는 새로운 문법의 창안을 필요로 한다. 이는 종이신문의 문법을 1대1 디지털에 옮기고 있는 오류에서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바다 .
최근 저널리즘의 장에서 오픈 저널리즘(Open Journalism)이 급속히 주목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픈 저널리즘의 핵심은 사용자 혹은 독자의 참여와 참여 경로의 개방이다. 참여와 개방은 도덕적 이유에서 내세우고 있는 가치가 아니라, 참여와 개방이 저널리즘을 작동시키는 주요 구성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음악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목격된다. 음악산업은 레코딩 산업의 시대를 거쳐 디지털 시대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디지털 음악을 유통하는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가 바로 유튜브이다. 동영상을 올리고 시청하는 플랫폼으로서 유튜브는 최근 들어 가장 강력한 음악 유통 플랫폼이 돼가고 있다.
지난 8월 14일 닐슨이 발표한 보고서 ‘Music 360’의 조사 결과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0대들은 다른 어떤 소스보다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10대의 64%는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10대의 56%는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10대의 53%는 iTunes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10대의 50%는 CD로 음악을 듣는다
이미 미국의 10대들에게 유튜브라는 플랫폼은 음악을 발견하고 듣는 제1의 음악 소스이다. 이는 20대로 저변이 넓혀지고 있고, 이들이 성장하게 되는 몇 년 후엔 가장 보편적인 음악 채널로 유튜브를 인식하고 있을지 모른다.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듣고 보며, 그 음악을 따라 부르며 춤을 추는 영상을 올리며 페이스북으로 그리고 트위터로 유튜브 영상을 공유하며 친구들과 때론 처음보는 이들과 관계망을 형성한다.
이 보고서는 ‘미국’ 온라인 소비자 3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이러한 조류가 곧장 한국의 흐름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유튜브가 국내에서 차지하는 위상, 이용 행태 등을 볼 때 한국의 소비자들이 이 결과에서 크게 빗겨나있다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음악을 소비하고 유통하기 위한 채널로서 유튜브라는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은 전언했다시피 불과 몇 년 뒤면 그 어떤 음악 플랫폼만큼과 견주기 힘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플랫폼의 강점은 전 세계의 수많은 음악산업 커뮤니티, 댄스 커뮤니티와 광범위하게 네트워크로 연결돼있으며, 이들 커뮤니티는 늘 새로운 경험과 실험과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유튜브가 로컬과 글로벌이라는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로컬을 위한 전략이 곧 글로벌을 위한 전략이며 글로벌 전략이 곧 로컬이 되는 플랫폼이 바로 이곳이다.
참여와 개방, ‘대중이 가속화시키는 확산’
싸이 ‘강남스타일’ 성공을 분석함에 있어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역할과 더불어 반드시 조명돼야 할 요소는 달라진 확산의 문법 즉 디지털 공유를 확산시키는 ‘문법’에 대한 이해다. 이 문법은 아날로그와 크게 달라지고 있다. 그 핵심 키워드는 ‘참여’와 ‘개방’이다.
적지 않은 음악비평가들은 ‘따라하기 쉽다’라는 표현으로 강남스타일의 성공 요인을 진단하고 있다. 정확히 짚어내고 있는 셈이다. 그 속에 디지털 공유의 핵심이 담겨있다. 단, 아쉬운 점도 있다. ‘따라하기 쉽다’는 비평이 따라하면서 배우기 쉽고, 그것을 다시 공유함으로써 확산의 과정에 참여하기 쉽다는 의미까지 확장돼야 한다.
강남스타일의 확산을 구성하는 생태계에는 단순히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의 원본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확산의 과정에 수없이 패러디되며 복제되고 버전업되는 사용자의 참여 영상이 동시에 기여하고 있다. 어쩌면 후자가 더 큰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TED 컨퍼런스 큐레이터 크리스 앤더슨의 표현을 전용하자면 ‘대중이 가속화시키는 확산'(Crowd Accelerated Spread)이라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강남스타일은 ‘대중이 가속화시키는 확산’의 요소인 대중 열망(Desire)과 대중이 참여하기 쉬운, 대중 참여를 추동하고 자극하는 ‘디지털 문법’을 갖추고 있다. 말춤이 그렇고 가사와 멜로디가 그렇다. 저널리즘에서 독자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하라’는 액션 플랜이 존재하는 것처럼, 싸이는 그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혁신적인 디지털 문법을 따라가고 있는 듯 보인다. 어쩌면 싸이 그 스스로가 이러한 디지털 문법과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 기제를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례는 의외로 적지 않다. Carly Rae Jepsen의 ‘Call me maybe’, Gotye ‘Somebody That I Used To Know’가 대표적이다.
B급 문화 아닌 참여하기 쉬운 문화가 확산력 높였다
Carly Rae Jepsen의 ‘Call me maybe’는 끊임 없는 2차 창작물(패러디)을 양산한 사례이다. 공식 뮤직비디오는 현재까지 2억건 이상의 재생횟수를 기록하고 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 버전은 2300만건, Chatroulette 버전은 1500만건, 미국 올림픽 수영팀 버전은 670만건을 넘어섰다. 공식 비디오가 유튜브에 등록된 지난 3월 이후 지금까지도 패러디 영상은 새로운 문법으로 작성되고 유통되고 공유되고 있다.
Gotye의 ‘Somebody That I Used To Know’는 캐나다의 인디밴드 walk off the earth가 패러디에 주목을 받은 경우이다. 한 대의 기타를 5명이 연주하는 독특한 연주법으로 화제를 불러모았다. 2주만에 3400만건 이상의 재생수를 기록했고 현재 1억3200만건이 조회되는 결과를 낳았다. 덩달아 공식 뮤직비디오는 3억건을 넘어섰다.
대체로 팬들이 복제와 패러디를 통해 참여하기 쉬운 음악이 확산력이 높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측면에서 ‘강남스타일의 성공은 B급 문화였기에 가능했다’는 가설은 설득력을 일부 잃게 된다. 참여 그리고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모티베이션이 높은 음악이 곧 ‘B급 문화’는 아니기에 그렇다. ‘Call me maybe’,’Somebody That I Used To Know’의 공전의 히트를 ‘B급 문화’로 설명하기엔 논리적 완결성이 떨어진다. ‘강남스타일’의 성공을 그래서 B급 문화 선호 현상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는 있지겠지만, 확산의 과정을 설명하기엔 여전히 부족해보인다.
1차 한류와 2차 한류가 다른점
1차 한류는 잘 포장된 영상과 음악으로 지상파 등 기존 주류 미디어의 해외네트워크에 의존하는 형태를 보였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1차 한류는 한국 드라마의 해외 진출 흐름에 몸을 실어 나르면서 인지도와 브랜드를 확보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와 같이 “드라마가 K-pop에 새로운 수용자를 데려오는 가교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1차 한류의 범위에 SM엔터테인먼트의 유튜브를 통한 해외 진출 케이스를 포함시킬 것이냐는 문제는 뜨거운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아날로그적 문법으로 자체 마케팅의 파워를 작동시켜 유튜브를 거친 뒤 글로벌에 성공한 케이스라는 주장과 현지 진출 없이 유튜브를 활용해 글로벌에 성공한 케이스라는 주장이 충돌할 개연성이 존재하기에 그렇다. 전자 측의 시각에선 1차 한류에, 후자 측의 시각에선 2차 한류에 포함시키는 구분법이 가능해질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2차 한류를 ‘혁신적인 디지털 문법을 갖추고 디지털 유통 채널을 통해 ‘대중이 가속화한 확산’의 경로를 거쳐 전개돼 글로벌에 성공하는 흐름’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소녀시대, 빅뱅과 같은 기존의 K-POP 뮤직비디오들은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군무, 뮤지션의 각선미와 섹시함에 어필하는 초점, 포장된 그러면서도 화려한 세트 이미지 등 정형적이고 고정화된 기존의 문법으로 무장하고 있다. 이는 고전적인 뮤직비디오의 틀을 여전히 답습하고 있는 흐름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유통 경로의 변화 이외에 형식적 실험의 요소는 여전히 부족해보인다.
언론계와 비교하자면 전자는 종속형 인터넷신문인 반면, 싸이의 강남스타일 형식은 독립형 인터넷신문을 떠올리게 한다. 이 관점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최초는 아닐 수 있지만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을 수 있다.
‘강남스타일’의 성공에서 의미를 뽑아내자면, 형식의 측면, 유통의 측면, 확산의 측면에서 모두 과정의 개방성과 실험적 태도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싸이를 기점으로 시작될 2차 한류는 이러한 학습효과에 의해 이전과는 또다른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유튜브 등 무료 스트리밍이 수익 견인한다
사실 국내 음악산업 특히 저작권 관련한 산업에서 강남스타일의 성공은 여러모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유튜브를 통한 글로벌한 성공 경로를 걷고 있긴 하지만 수많은 패러디물에 저작권 위반 딱지를 붙여넣고 싶어도 붙여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확산의 발목을 잡는 주체로 비난 여론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국내에선 공정이용(Fair Use)의 범위가 협소한데다, ‘음악 패러디 영상이 음악 저작권자들의 잠재적 이익을 탈취한다’는 낡은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패러디 영상에 대한 적지 않은 소송이 제기됐고, 이 과정에서 국내 사용자들의 ‘자기 검열’이 일상화되는 경험을 겪은 바 있다. 이 행위가 누군가의 수익모델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과 제도는 음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서비스는 뮤지션의 수입을 갉아먹는다는 논리에 기인한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둘러싼 국내외의 여러 논란이 이러한 인식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전혀 다른 통계들이 제시되고 있다. 유튜브나 Spotify 같은 무료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뮤지션 개인의 수입 증가에 보탬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최근 시장보고서에 따르면, 스포티파이가 탄생한 스웨덴의 경우 2012년 상반기 음악 스트리밍을 통한 매출이 전체 음악시장 매출의 79.4%까지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2012년 상반기 전체 음악시장 매출이 2011년 상반기 대비 30.1% 증가했다는 점이다.
미국 음악시장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워너뮤직그룹의 최근 2분기 실적 보고에 따르면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로부터 벌어들인 수익 비중이 전체 매출의 25%를 차지했다. 게다가 스트리밍 서비스로부터 창출된 수익은 다운로드보다 훨씬 더 높은 비율로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음악 스트리밍 시장의 확대가 한편으로 전통적인 다운로드 시장을 잠식하는 자기잠식효과(cannibalization)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 파일공유(file sharing)을 축소시키고 유료 음악시장의 확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혁신적인 디지털 음악 산업의 환경에서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에서의 확산은 뮤지션의 수입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수입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스트리밍에서 본 음악을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구매해 내려받고 소장하는 소비 흐름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DNA 전환’ 종이신문 사례 반면교사 삼아야
요약하자면, 음악의 전통 문법, 아날로그를 1대1로 디지털에 대응, 적용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종이 신문을 온라인에 1대1로 옮겨 놓은 것과 같은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지상파용으로 제작된 뮤직비디오를 기계적으로 유튜브에 재발행하는 방식은 머지 않은 시간 안에 빈틈을 드러낼 것이다. 아날로그 DNA로 디지털 DNA를 대체해가는 접근이 실패한다는 가설은 종이 신문이 충분히 입증했다.
뮤지션, 음악산업종사자도 이제 혁신에 참여해야한다. 디지털 음악 시대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이해와 인식뿐 아니라 혁신의 방법론에 대한 학습이 요구된다. 네트워크에 열결된 개방과 공유의 새로운 문법을 받아들이고, 집단 다시 말해 (잠재적) 팬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음악의 세계를 향해 걸어나가야 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던져주는 강력한 시사점이다.
글: 몽양부활
출처: http://blog.muzalive.com/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