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텍 크런치 기사를 읽다가 “마리사 메이어의 첫 30일“이란 기사를 보게 되었다. 내용중에 인상적인게 있었는데, 그녀가 야후에 와서 처음으로 한 일 중의 하나가 VP들이 그녀에게 보고할때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쓰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내용을 아래와 같이 트윗했더니 삽시간에 50번이상 리트윗 되는등 여러 반응이 있었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가 미팅에 도움이 되느냐 마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오랜 직장생활을 뒤돌아보면 슬라이드 때문에 ‘버려지는’ 시간이 참 많았다. 성격상 디테일한 것도 신경 많이 쓰는 편이고 약간 완벽 추구에의 집착을 가졌던 때도 있어서 (지금은 아님 ^^), 이런것 저런것 하나씩 고치다보면 슬라이드 한장에 이틀을 소비한 적도 있었다. 특히 여러명이 하는 공동 프로젝트에 관한 슬라이드는 이사람 저사람이 만든 것을 취합해서 깔끔하게 다듬어야되고, 어느 한명이 리뷰하고 고치고, 그걸 또 다른이가 문제 제기하고 등등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몇주는 금방 소진된다. 물론 슬라이드의 장점도 있다. 만들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되고, 미팅 방향의 나침반이 될수도 있으며, 향후 documentation의 역할도 하게되니 말이다. 그래도 지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미팅에서 슬라이드 사용은 아예 안하거나 minimal로 해야 한다는 생각인데, 슬라이드 제작에 걸리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미팅 흐름이 지루해지거나 미팅 본연의 목적이 흐려지는 부작용도 있기 때문이다. (파워포인트를 줄줄이 읽어나가는 지루한 미팅은 아마 누구나 경험한 적이 있을 거다) 미팅의 주 목적은 서로 대화와 토의를 통해서 정보와 의견을 주고 받거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인데, 슬라이드에 전적으로 의존한 미팅은 자칫 이게 어려워질 수 있다 — 슬라이드만 첫장 부터 끝장까지 별탈없이 발표하면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모두 착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슬라이드의 비효율성을 깨닫고 난뒤, 가끔 어디서 세미나같은 발표 부탁을 받으면 슬라이드는 형식상 5-6장만 아주 간단하게 준비해 간다. 일단 멋있는 슬라이드를 만들 재주와 시간이 별로 없을 뿐더러, 그렇게 만든다고 해서 세미나를 듣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얻어간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슬라이드에 긴 텍스트는 넣지 않는데 그 이유는 내가 발표하는 동안 사람들이 그것을 읽느라고 내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텍스트는 아예 넣지 않거나, 넣더라도 몇초내로 읽을 수 있게 bullet point로 아주 짧게 나열한다. 최근에 Bay Area K Group에서 세미나 발표한 적이 있는데, 링크의 사진에서 보듯 텍스트를 되도록 넣지 않는다. (슬라이드 만드는 시간이 확 준다 ^^)
서론이 너무 길어졌는데, 암튼 내가 슬라이드의 비효율성을 깨닫게 된데는 개인적인 경험도 있었지만, 내가 접한 텍 업계의 거장들의 이야기가 영향이 컸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와 원문을 여러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이글을 쓰게 되었다.
1)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
Steve Yegge라는 한 구글 직원이 자신의 전 직장 아마존에서 제프 베조스에게 프리젠테이션 했던 기억을 살려 쓴 블로그를 보면 다음과 같다.
내용에서 보듯이 제프 베조스는 이미 오래전에 아마존에서 파워포인트 금지령을 내렸고, 그에게 뭔가 제안을 하려면 산문체의 글을 적어내야 한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창업가중 한명인 만큼, 그는 스피드와 실용성을 중시했을테고 현란한 그래픽이 있는 슬라이드 보다는 “확실한” 내용이 있는 텍스트를 선호한 것으로 짐작된다.
2) 쉐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
샌드버그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구글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저커버그의 부름을 받고 페이스북에서 COO로 재직중인 실리콘 밸리에서 몇 안되는 여성 최고위직 임원 중의 한명이다. 얼마전 그녀가 그녀의 모교인 하버드 비지니스 스쿨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So one of the things I tried to do was encourage people not to do formal PowerPoint presentations for meetings with me. I would say things like, “Don’t do PowerPoint presentations for meetings with me. Instead, come in with a list of what you want to discuss.” But everyone ignored me and they kept doing their presentations meeting after meeting, month after month. So about two years in, I said, “OK, I hate rules but I have a rule: no more PowerPoint in my meetings.”
쉐릴 샌드버그의 연설 (12분쯤에 파워포인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옴)
(연설을 계속들어보면 샌드버그가 이 일화를 이야기한 배경은 “올바르지 못한 권위나 룰에 대한 도전”등을 설명하려고 이런 예를 들게 되었는데, 암튼 그녀가 파워포인트를 싫어한 것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3) 스티브 잡스 (소개 생략)
파워포인트를 혐오했던 사람의 선봉장(?)이라면 아마 스티브 잡스일 것이다. 그의 전기를 보면 그가 암투병 중일때 그의 의사가 파워포인트를 이용해서 그의 병세에 관해 설명했다가 잡스에게 혼쭐이 났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그가 이렇게 파워포인트를 혐오하게 된데는 우선 경쟁사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이 업계를 평정했던 점도 어느정도 작용을 했을테지만, 더 나아가 그는 어떤 아이디어를 전달함에 있어서 슬라이드는 별로 필요없는 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가 제품 발표등을 할때면 자사제품인 Keynote라는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을 쓰기는 했지만, 복잡한 텍스트는 거의 없고 굉장히 심플한 그림이나 사진을 주로 백그라운드에 깔아놓고 이야기를 풀어가곤 했다) 스티브 잡스 전기 337쪽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One of the first things Jobs did during the product review process was ban PowerPoints. “I hate the way people use slide presentations instead of thinking,” Jobs later recalled. “People would confront a problem by creating a presentation. I wanted them to engage, to hash things out at the table, rather than show a bunch of slides. People who know what they’re talking about don’t need PowerPoint.”
그는 문제의 핵심을 ‘생각’으로 맞서야지 파워포인트 만드는 걸로 빗겨가지 말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잡스의 전기에서 읽은 이 내용이 사실 나에게도 영향을 미쳐, 나도 이제는 복잡한 슬라이드는 만드는 것도, 보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직업상 entrepreneur들을 만나 프리젠테이션 듣는일이 아주 많지만, 사실 내가 더 좋아하는 포맷은 그냥 커피숍에서 만나서 슬라이드 없이 그냥 그사람의 사업 스토리를 듣는 것이다. 그리고 점점 느끼는건데 내공이 깊은 사람은 슬라이드 없이도 듣는 사람이 잘 이해가 되게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잡스가 위에서 말한 맨 마지막 문장이 정말 맞다고 느끼는 적이 많다.
글: Phil Yoon
출처: http://liveandventure.com/2012/08/18/powerpo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