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말이 다가온다.
직장인들에게 금요일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한주를 마무리하는 날이다. 피곤했던 한주였던, 아니면 보람차고 의미있는 한주였던 간에 어쨌든 금요일 저녁이 되면 모든 것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진다. 5일근무제가 보급된 후에 금요일 회식을 잡는 문화가 많은 기업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물론 여전히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회사, 조직의 단합을 다지기를 좋아하는 회사들 중에서는 금요일 저녁에 회식잡는 회사들이 있지만, 많은 회사들이 회식을 목요일로 옮겨가는 추세. 그러면서 금요일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아니면 직장 동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 혹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조금씩 가능해지고 있다.
금요일 저녁에 강남역이나 종로 등의 번화가에 나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맛있는 저녁 식사와 ‘술 한잔’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조금 더 늦게까지 있다보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술 한잔’이 아니라 ‘술 여러잔’ 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문제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실 때이다. 여기서 ‘ 너무 ’라는 단어의 정의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폭음(binge drinking)의 국제적인 정의는 2시간 안에 남자는 5잔, 여자는 4잔의 술을 마시는 것, 혹은 혈중 알콜농도가 0.08% 이상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5잔의 술이라고 하면, 소주와 같은 고도주(18도 이상의 알콜 도수를 가진 술)을 즐기는 한국사람들은 소주 반병에서 조금만 더 마셔도 사실 폭음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의도적으로 술에 취하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것이라고 하니,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거야!’ 라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술을 마시러 가는 우리 주변의 모든 용감한 사람들, 그들 모두에게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다.
즉,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주말을 폭음으로 시작한다고도 볼 수도 있다. 내 주변의 많은 직장인 친구들도 아주 엄밀한 잣대로 보면 자기 스스로가 알콜중독에 해당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화요일이나 수요일 정도가 되면 은근히 술이 땡겨온다는 것이다. 아마도 술은 스트레스의 근원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사람의 기억회로를 잠시 멈추게 하는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에, 즉 스트레스의 근원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잊게 만들기에는 좋은 것이 아닐까? 그렇게 컴퓨터를 리부팅할 때 메모리가 깔끔하게 비워지듯이 잠시 기억을 껐다가 다시 켜면, 다음날 아침에 우리는 지난 한주에 대해서 좀 더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다. 때로는 그 이유가 기억이 리프레쉬가 되어서가 아니라 장이 쓰리거나 머리가 아파서 다른 생각이 잘 안나서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좀 극단적인 표현일지 몰라도, 한국의 직장인의 삶이라는 것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알콜 중독에 폭음을 즐기는 사람들로 만드는 측면이 있다. 물론 자신의 의지로 이런 경향성을 거부하거나 이겨낼 수 있겠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서 돌이켜보면 여간 의지가 강하지 않고서야 폭음과 알콜 중독 초기 증상을 한번쯤은 겪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2. 당신만의 충전방식
나는 회사를 다닐때, 금요일 저녁이 되면 퇴근후에 회사 앞에 있는 스포츠 센터에 운동을 하러 갔다. 금요일은 퇴근을 일찍 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이른 저녁시간인 6시 반에서 7시면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스포츠 센터에 간다. 물론 금요일 저녁에 운동을 하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나는 사람이 북적거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에, 그리고 역삼역 사거리에 있는 회사에 다니던 나에게 일찍 거리를 나서서 강남역 방향으로 도도히 흐르는 사람들 틈에 섞여버리는 것은 나 스스로가 사라져버리는 듯한 느낌마져 있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한주간의 일을 끝내고 한적한 곳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편이 힐링의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서 맥주를 한잔 마시면서 TV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잠이 드는 것이 내가 한 주를 마무리 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Carl Jung)은 사람들의 성향을 크게 외향적인 사람(extrovert)과 내향적인 사람(introvert)으로 나눴다고 한다. 물론 완벽하게 100% 외향적인 사람, 혹은 100% 내향적인 사람은 정신병원에만 살고 있고, 우리 모두는 외향성과 내향성을 양 극단으로 하는 그 중간의 어디인가에 머물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나는 아무래도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회적 활동을 늘려야만 새로운 에너지가 충전되는 외향적인 사람(extravert)은 아닌 듯 하다. 금요일 저녁에도 혼자 운동을 하면서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평소에도 생각을 많이 하거나 혼자 있으면 무언가 기분 전환이 많이 되는 것을 보면 나에게는 분명 내향적(introvert) 인 성향이 더 강한 것 같다.
광장에 모인 대중 앞에서 의견을 적극적으로 스피치 하거나, 수업시간에 눈꼽만큼이라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손을 들고 적극적으로 물어보거나, 혹은 상대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절대로 지지 않기 위해서 상대를 몰아붙이면서 상대방에게는 다소 불공평하더라도 나는 한푼도 손해보지 않는 관습과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우리 동양의 문화권에서는 외향성이라는 것은 근대사회가 열리면서 우리 주변을 지배하게 된 다소 생소한 느낌의 개념이다. 아무래도 동양의 전통적인 가치관은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기 보다는 숨기고, 겸손하게, 겸허하게, 그리고 외유내강의 자세로 사는 것이 이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수전 케인 (Susan Cain)이 그녀의 베스트셀러 콰이어트(Quiet)에서도 밝혔듯이 이렇게 외향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각광받기 시작하고 외향성을 발현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스킬들이 보급되기 시작한데에는 ‘기업’이라는 새로운 제도의 등장이 공헌한 바가 크다. 19세기와 20세기의 기업의 성장과 함께 발달한 경영학 이론들은 모두 카리스마 있고, 달변이며, 결단력있는 외향적인 리더를 지향하는 리더십과, 불확실한 상황을 뚫고 항상 에너지 넘치게 매출목표를 달성하는 세일즈맨과, 생전 처음 보는 팀원들과 밤새면서 야근을 하더라도 즐겁게 일하면서 자신의 일을 사랑할 줄 아는 전문가를 그 이상형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내향적인 사색가 (thinker)보다는 외향적인 행동가 (doer)로서, 조직 안에서는 이러한 외향적 행동가들이 훨씬 더 각광을 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기업의 문화와 교육 그리고 분위기가 외향적인 인간형을 향해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서구인들에 비해서 내향적인 문화 안에서 자라온 우리는 기업이라는 곳에서의 하루하루가 서구인들에 비해서 조금 피곤하고 낯선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자신의 성향이 내향적인지 혹은 외향적인지에 따라서 저마다 주말을 보내는 방식은 조금씩 다른 것 같다. 브런치를 잘하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팬케익에 커피를 마셔야 하는 직장 여성들도 늘고 있지만, TV 를 보면서 뇌를 공회전을 시키고 나서야 기운을 차리는 사람들도 있다. 산과 들을 누비면서 레포츠를 즐기고, 금요일 저녁이 되기가 무섭게 가족들과 야외로 나가서 캠핑을 즐겨야 하는 캠핑족들도 늘고 있다. 아무튼 그 방식이 무엇이던지, 우리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재충전을 한다. 그러면 또 한주를 버틸 수 있다.
3. 주말에 일하기
최근에는 금요일 저녁에는 일단 무조건 퇴근을 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저녁 6시-7시가 되면 특별히 나라를 구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일이 아니면 일단 집에 갔다가 주말에 못다한 일을 좀 더 하거나, 아니면 월요일에 다시 시작해도 큰 지장이 없이 처리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업무의 특성상 팀으로 하는 일이기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일을 해야 하는 경우, 혹은 조직의 리더가 주말에 일을 더 하는 것을 선호하기 보다는 늦더라도 금요일에 일을 끝내는 것을 선호해서, 금요일에 일을 마치는 방향으로 조직을 이끄는 경우이다. 팀으로 일하는 경우에는 주말에 다시 모이기 힘든 경우도 있어서, 시간이 좀 들더라도 금요일에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내 주변에서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일단 금요일 저녁에서 토요일까지는 쉬고, 일요일 오전에는 종교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점심을 먹고 슬슬 오후에 출근을 하거나, 혹은 각자의 집에서 일을 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팀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출근을 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되도록이면 회사쪽으로는 발걸음을 두지 않고, 팀원들이 모두 가깝게 올 수 있는 커피숍 등에서 모여서 일을 마무리 한다.
혼자 일을 하는 경우 금요일 저녁에 일단 퇴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토요일과 일요일이라는 두장의 카드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자신의 직장 상사와 주말에 언제까지 결과물을 전달할 것인지 합의만 잘 되면, 원칙적으로 우리는 금요일 6시에 퇴근할 수 있다.
퇴근을 하면서 꼭 주말에 결과물을 내야 하는 급한 경우는 아니지만, 나 자신의 일의 추진을 조금 더 빨리 하기 위해서 욕심내서 금요일 저녁에 무거운 노트북 가방을 싸서 집으로 갈 때도 있다. 나 개인적으도 이렇게 노트북 가방을 집으로 싸 오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런데 집에 오는 순간 그 노트북 가방은 방사능 오염물질을 능가할 정도로 가까이 가고 싶어지지 않는 혐오물질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주말 내내 방 한구석에 두고, 귀찮음과 두려움의 복합적 작용으로 가까이 가지 않다가 월요일 아침에 다시 들고 회사를 간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는 금요일에 퇴근을 할때 현관 앞에 두었다가 월요일 아침에 다시 들고 가는 경우이다. 이럴땐 나에게 ‘의지’나 ‘계획’이라는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반문하게 되는 월요일을 보내게 된다. 물론 최악의 경우는 금요일 퇴근할때 가져왔던 노트북 가방을 주말내내 집에 방치했다가 월요일에 까먹고 안가져가는 경우이다.
일요일 저녁에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확인했는데, 나의 직장 상사가 월요일 오전에 보기를 원하는 자료를 잔뜩 요청해 놓은 경우도 만만치 않게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사실 눈 찡긋 감고 이메일을 못 본척 외면한 후에 월요일 아침에 직장 상사에게 ‘앞으로는 주말에 이메일 보지 말라고’ 용기내어서 말을 하고 싶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한편 월요일 아침에 중요한 미팅이 있는 경우도 많다. ‘월요일 아침에는 중요한 미팅을 잡지 말라’는 것은 직원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조금이라도 챙기는 회사에서는 유행어가 되어버린지 오래이지만, 그래도 갑과 을의 수직적 관계가 지배적인 한국의 비즈니스 상황에서는 갑이 원해서 을로서 월요일 아침의 미팅을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혹은, 부지런하신 윗분들이 특히 월요일 아침 미팅을 선호하시는 경우도 꽤 있다. 이렇게 월요일 아침 미팅이 잡히면, 그 미팅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분들이나 보고를 받기만 하면 되는 분들이야 설레는 마음으로 주말을 보내시는지 몰라도, 그 미팅을 이끌고 가는 사람들에게 주말은 시한폭탄의 폭발을 기다리는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4. 주말이 지나간다.
저마다의 개성이 다양한 현대의 한국 사회지만, 아마도 모든 직장인들이 백이면 백 동의할 수 있는 명제는 ‘주말은 빛의 속도로 지나간다’라는 문장일 것이다. 금요일 저녁이 바로 1초 전과 같이 느껴지는데, 어느덧 일요일 저녁이다. 일요일 저녁에 느껴지는 우울함은 직장 생활을 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주말이 이처럼 쏜살같이 지나가는 이유는 우리가 금요일 저녁이 되었을 때, 다가올 주말 시간에 대해서 심적/물적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한 주 동안의 일에 매몰되어서 주말이라는 것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주말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단 주말이 시작되고 나면, ‘음… 이제부터 무엇을 하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일요일 오후가 된다.
나의 경험상으로 주말이 조금이라도 더 늦게 지나가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미리 주말을 계획하는 것이다. 되도록이면 촘촘하게 계획할 수록 그래도 주말에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지나간 시간 대비 한 일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적은 일을 했을 때보다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방법의 부작용이 또 하나가 있다. 그것은 주말이 끝났을 때 피곤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일을 한 주말은, 그냥 침대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보낸 주말 대비 몸의 피로를 가중시켜서 월요일 아침의 집중력을 흐려놓는다.
그럼에 생각해보건대, 가장 효과적으로, 그리고 의미있게 주말을 보내는 방법은 쉬는 시간과 노는 시간의 적절한 배합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 말에서는 ‘쉰다’와 ‘논다’라는 단어가 혼용되는 경향이 있다. 너 지금 뭐하니? 라고 물어봤을 때, ‘놀고 있어’ 라고 대답하는 경우, ‘쉬고 있다’라는 뜻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논다는 것과 쉰다는 것, 이 둘은 엄연하게 다르다. 쉰다는 것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논다는 것은 몸과 마음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일’이외에 다른 것을 함으로써 재미를 추구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너무 쉬기만 해도 의미없이 지나가는 주말이라는 생각이 들고, 너무 놀기만 해도 피곤한 주말이 되어버린다. 정작 문제는 놀이와 쉼이 가정안에서 뒤섞일 때이다. 즉, 소파에 앉아 있지만, 등 뒤에 한명, 배 위에 한명, 이렇게 아이들이 올라타고 있는 경우 말이다. 그러면 쉬는 것도, 노는 것도 아닌 상태가 되어 버린다. 자기 혼자만의 쉴수 있는 공간에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글: MBA Blogger
출처: http://mbablogger.net/?p=4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