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에 비해서는 확연히 줄어들었고 자주 발생하는 일은 아니라고 알고 있지만, 합리적이지 않은 요구를 하는 투자사 혹은 투자담당자들의 사례들을 가끔 들을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합니다. ‘왜 저런 요구사항을 받아들일까’ 잠시 고민해봤는데, 어쩌면 투자를 유치하는 스타트업이 너무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봤습니다. 해서, 정답은 없지만, 제가 생각하는 잘못된 사례들에 대해서 좀 적어볼까 합니다.
1. 투자사(Venture Capital) 담당자의 지분 요구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게 해줄테니, 투자 담당자(임원 혹은 심사역)인 자신에게 (1) 차명으로 지분을 무상으로 달라고 하거나, (2) 투자사가 투자하는 단가보다 현저히 낮은 기업가치로 증자에 참여할 수 있게끔 해달라고 하는 등의 요구는 무조건 불합리한 요구입니다. 보통 Venture Capital은 자신의 돈만을 가지고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통상적으로 VC에 투자하는 출자자들(Limited Partner)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그런 LP들의 돈은 비싼 기업가치에 투자하고, 자신의 돈은 낮은 기업가치로 투자하게 되면 이것은 윤리적으로 큰 이슈가 있는 것입니다. LP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그 VC에 다시는 출자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요구사항을 듣게 되신다면, 그 투자 담당자와는 다시는 말을 섞지 않으면 되겠습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싶으신 분은,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서 운영하는 부당투자자신고센터에 신고를 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투자 담당자가 투자사가 투자하는 기업가치로 자신의 돈을 넣고 싶다고 하면, 이것은 윤리적인 이슈가 있는 것일까요? 사실 Accel Partners가 페이스북에 투자를 할 때, 투자 담당자였던 Jim Breyer는 개인돈을 동일한 밸류로 넣어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죠. 이 경우는 조금 더 복잡한 이슈이긴 한데, 우선 LP와 담당자간의 이해관계 상충은 상대적으로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동일한 밸류로 투자하는 것이니. 그리고 자신의 돈을 그 높은 밸류에 투자할만큼 자신이 있다고 볼 수도 있고 또 책임감도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차례 더 깊숙히 생각해보면, 만일 투자담당자가 선택적으로 자신의 돈을 VC와 함께 투자한다면, 자신의 돈이 들어간 회사만 더 챙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이 부분을 이슈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해서, 미국의 경우에는 case by case로 VC 회사마다 자신만의 정책을 갖고 있답니다.
윤리적으로 가장 이슈가 없을 구조는 VC에 투자하는 투자자들(LP)의 돈으로 만든 조합(펀드)에 VC 투자 담당자들도 함께 돈을 넣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밸류 이슈도 없어지게 되고, 선택적으로 좋은 딜만 개인 돈을 넣는 이슈도 해결이 되겠지요. 참고로 이 이슈에 대해서 미국의 유명한 Mark Andreessen이 Quora에 답을 해서 화제가 되고 기사화가 되기도 했답니다. Mark는, 자신의 VC는 투자담당자들의 개인 돈 투자를 금지하고 있고, 펀드에 참여하지만 자신들이 가장 엄격한 것일 수도 있다고 답을 했죠. (참고로, 저희 케이큐브벤처스의 경우도 개인투자는 금지하고 있고 투자담당자들이 펀드에 출자를 하는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윤리적으로 완벽하고 이해관계의 불일치가 없게끔 제도적으로 만든 것이죠)
2. 엔젤투자자의 과도한 지분 요구
자주는 아니지만, 스타트업의 주주명부에 ‘모르는 외부인’ 지분의 50% 이상 있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스타트업의 경영진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보면, 아는 분이 엔젤투자를 했다고 답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심지어 ‘액면가’로 투자를 한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스타트업의 사업과 전혀 관련이 없고 밸류를 줄 수 없는 분이 대주주로 있을 경우 향후 투자자들이 볼 때에는 매우 불편한 주주구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열심히 일하는 경영진들은 기업이 성공을 해도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제한적이고, 그런 점들로 인해서 주인의식을 갖고 정말 스타트업 처럼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월급사장처럼 일을 하게 되는 것을 투자자들이 마음에 안 들어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런 주주명부로는 VC의 투자를 받기 힘들게 됩니다.
통상적으로 엔젤투자자라고 하면, 자신이 이미 경험한 분야와 관련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면서 소규모의 지분을 받고 또 다양한 서포트를 해주는 분들을 말하는 것이니, 그렇지 않고 뭔가 회사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투자를 받지 않기를 권합니다.
3. Advisor의 과도한 지분 요구
요즘 스타트업 회사소개서를 보면 Team 소개란에 Advisor들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유관분야 경험이 있고 어느 정도 성공하신 분이 기꺼이 시간을 내서 도와주신다고 하면 사실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 Advisor분들이 무리하게 스타트업들에게 지분을 요구하는 일이 있다고 듣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Advisor를 해줄테니 지분 10%를 무상으로 제공해라” 뭐 이런식인 것입니다. 뭐,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는 ‘정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주더라도 매우 적은 지분을 주는 것을 고려해볼 때 위의 예시는 정도를 넘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지분만을 요구하는 Advisor는 피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Advisor가 스타트업 경영진과 자연스럽게 어떤 일들을 도와줄 수 있고, 구체적으로 매주/매월 얼마간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지 등을 논의하다가 보면 지분 얘기도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지분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성과를 낸 다음에 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극소수의 좋지 않은 투자자/엔젤/Advisor로 인해 열심히 자기 일을 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오해와 피해를 받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
ps. 정말로 좋은 분이 있고, 그 분에게 도움도 받으면서 보상도 해주고 싶을 경우, 그분을 사외이사(BOD)로 모시면서 스톡옵션을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글 : 임지훈
출처 : http://www.jimmyrim.com/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