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와 연주자가 처음으로 실업을 경험한 것이 언제쯤인지 아시나요? 20세기 초입니다. 사실 가수라는 직업 자체가 존재한 것은 이 시점으로부터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가수의 등장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했는데요. 악보 복제 및 판매가 산업화된 1796년 이후의 일입니다.
1796년은 독일의 제네펠더가 석판화 기술을 발명한 시점입니다. 인쇄혁명이 일어난 지 꽤나 지난 시간이었죠. 사실 인쇄혁명은 당장 음악을 산업화하는데 기여하지는 못했습니다. 문자 인쇄에는 적합했으나 악보의 화음 기호 인쇄에는 썩 매끄럽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석판화 기술이 발명되면서 본격적으로 악보를 인쇄하는 업이 번성하게 됩니다.
악보 인쇄의 산업화는 곧 가수라는 직업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악보의 출판, 복제가 쉬워지면서 누구나가 집에서 연주할 수 있게 됐죠. 또한 이를 공공 장소에서 연주할 수 있는 이들이 늘어났습니다. 연주회의 상업화가 시작된 시점입니다.
석판화 기술과 가수라는 직업의 탄생
그 이전까지, 음악가는 귀족들의 후원을 받으며 그들만을 위한, 그들의 사교를 위한 작곡과 연주를 해왔습니다. 그들은 작곡가이면서도 동시에 연주자였죠. 이 직업의 분화가 생겨난 것이 바로 악보 복제의 산업화이죠. 이 과정에서 음악출판사(musci publisher)가 탄생합니다. 악보를 인쇄하고 복제해서 대중들에게 판매하고 그 인세를 작곡가에게 제공하는 비즈니스가 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연주회의 상업화가 이루어진 배경에는 신흥 부르주아지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연주회의 주된 고객이었기 때문입니다. 귀족들만이 즐기던 문화가 석판 인쇄기술의 보편화에 힘입어 대중화되면서 연주회는 연주자들의 주된 수입원이 됐습니다. 오페라의 경우 곧 가창할 수 있는 가수의 등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며 일종의 출연료(정확히는 가창료)를 받던 가수들은 20세기 초 심각한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됐습니다. 축음기의 등장과 원형 레코드판(베를리너)의 대중화에도 끄떡하지 않았던 그들이었습니다. 바로 라디오 때문입니다.
라디오는 지금의 스트리밍 서비스 등장처럼 음악산업에 혁명적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그전까지 이들 가수는 외부 공연뿐 아니라 라디오 스테이션 내에서의 라이브 공연으로 수입을 획득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들 라디오가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그냥 레코드판을 라디오에 대고 돌려버린 것이죠.
공연 고객들 입장에서는 굳이 연주회나 공연에 가지 않고서도 해당 가수의 음악을 청취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경험을 마련해준 것이죠. 이 때문에 가수들이 심각한 실업 상태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레코드판은 가정 내에서만 듣는 경우가 많아 큰 타격은 없었지만, 전파를 타고 음악을 내보내는 라디오는 그야말로 이들 가수에겐 치명적이었습니다.
라디오는 음악 소비자 측면에선 또 다른 의미로 음악의 무료 이용 경험을 제공한 계기가 됐습니다. 레코드판을 구매하지 않아도 됐고, 라디오만 있으면 높은 공연료를 지불하지 않고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것이 음악 연주자와 가수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요즘 다시 가수들의 ‘기술적 실업’ 현상이 등장할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의 확산 때문입니다. 그것은 Spotify일 수도 있고, Pandora일 수도 있고 국내에선 무료는 아니지만 저가에 음악을 이용할 수 있는 멜론, 벅스와 같은 서비스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 음원 정액제 규정에 대해 많은 반발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20세초 현상과 유사한 흐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가수들의 기술적 실업 타개와 저작인접권
20세초 가수들의 ‘기술적 실업’은 저작인접권의 탄생으로 일단 해소가 됐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가수나 연주자의 실연 행위를 저작권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작권법은 창작자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이죠.
“실연자는 음악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이미 창작된 음악작품을 보고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를 함으로써 대중에게 음악작품을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문화 발전의 기여도를 인정해 ‘저작인접권’이라는 개념을 발명하게 됩니다. 이들의 권리가 보호된 최초 법은 1931년 오스트리아의 저작권법에서입니다. 아직 100년도 되지 않은 개념입니다.
그러다 1961년 로마협약(실연자 및 음반제작자 및 방송사업자의 보호를 위한 국제협약)이 성립되면서 본격적으로 국제적으로 권리가 보호되기에 이릅니다. 빼앗긴 일자리를 되찾을 수 있는 법적 권리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시작된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는 이미 상당한 덩치를 키운 대형 음반사가 큰 역할을 합니다. 수많은 소속 가수를 데리고 있으면서 레코드까지 취입해 판매해오면서 자본을 축적해온 터라,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됐죠. 국제협약까지 체결함으로써 해외에서도 그들의 권리를 인정받으려 한 것입니다.
앞으로 가수들의 수익 모델은?
어쩌면 지금 제기되고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 수익배분 이슈는 20세기초 가수 등 실연자의 기술적 실업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합니다. 당시 가수들과 음반제작자들은 저작인접권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켜 상업적 이윤을 보전받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즉, 가수 동의 없이 실연 결과를 방송하는 행위, 그것으로 음반을 제작하는 행위가 금지됐습니다. 또한 그 음반을 복제하는 것 또한 허락을 구하지 않고는 금지 당했죠. 방송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는 기회는 줄었지만, 그 대신 재생해주는 대가를 얻게 됨으로써 수입을 취하게 됩니다.
물론 음악 소비자들에게 그 비용이 전가되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라디오를 통해 무료로 음악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죠. 오히려 방송사들에게 비용이 전가되거나 불법 음반 복제를 금지함으로써 음반 판매를 보다 활성화시키며 막대한 이윤을 거둘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음반의 전성시대가 이렇게 시작된 것이죠.
그러나 지금 다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여전히 음악 소비자들은 무료로 소비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유료로 경험해본 역사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입니다. 음악=유료라는 경험을 오래해본 경험이 없었습니다.무료로 들을 수 있는 대체제가 늘 상존해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해적판을 단속하는 수많은 경험들이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사실. 우리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가수들의 수익모델은 어쩌면 다시 공연으로 돌아가는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애초 가수들이 수익을 얻어왔던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것이겠지요.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니다. 이젠 혁신적인 기술의 등장으로 공연을 제공할 수 있는 경험이 100년 전보다 훨씬 다채로워졌습니다. 최근 들어 공연 산업의 음악 산업에서 차지하는 파이가 커져가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물론 다른 방식은 저작인접권의 발명과 같은 또다른 상업적 규제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후자는 이미 보호 범위를 쪼갤 대로 쪼개 인정받고 있는 터입니다. 더이상 어떤 권리를 쪼개어 새로운 보호 권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회의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음악은 새로운 경험의 가치가 덧붙여질 때 시장이 탄생하고 성숙합니다. 연주회라는 대중에게 경험될 수 있게 되면서 가수라는 직업이 보편화됐고, 라디오로 무료로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면서 더 많은 가수들이 활동할 수 있는 저변이 마련됐습니다. 이동하면서 들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 테이프, CD. 이 모든 것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전달해줬습니다.
하지만 동일한 경험을 제공하면서 가격을 높이는 방식은 결국 일탈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동일한 경험을 제공하면서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 또한 같은 결과를 낳기 마련입니다. 음악을 전달하는 새로운 경험이 무엇인지 더 깊이 골몰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