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전략 컨설팅 회사의 한국 지사 부사장님은 마케팅 프로젝트를 전략 컨설턴트가 제대로 할 수 없는 이유를 두가지로 들었다고 한다. 논리적인 분석과 그에 기반한 전략을 고객사에게 추천하는 것이 주된 업무인 전략 컨설턴트는 사실 모든 산업과 모든 부서를 아우를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 이자 만능선수(all round player)여야만 한다. 그런데 마케팅 프로젝트는 할 수 없다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분은 그 이유를 두가지로 들었는데, 1) 첫번째는 마케팅 프로젝트는 주로 고객조사를 그 기반으로 하는데, 고객은 절대로 사실을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2) 두번째는 작은 한국시장에서 종종 히트상품이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히트상품에 대해서는 사후적으로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사전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꼽았다.
첫번째 포인트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하고, 오늘은 두번째 포인트를 힘주어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고객은 가짜 심장을 내놓는다.
첫번째 이유로 언급한 ‘고객은 절대로 사실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는 말은 스티브 잡스의 철학인 ‘고객은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 말하지 않는다’라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핸리 포드가 당시에 소비자 조사를 했다면 그는 자동차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며, 그 이유는 사람들은 ‘우리는 더 빠른 말을 원한다’는 대답밖에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다 똑같은 맥락이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흔히 마케팅 분야에서 주로 사용되는 고객 서베이나 포커스그룹인터뷰(Focused Group Interview, FGI)의 경우, 고객들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내가 한 어느 리서치에서는 일반 소비자들이 과자를 슈퍼마켓의 매대에서 고르기 위해서 보내는 시간은 약 30초 미만이었던 것에 반해서, 소비자 리서치를 위해서 별도로 모집되어서 마트에 초대된 리서치 참여자들이 과자를 고르기 위해서 과자 매대에서 보낸 시간은 무려 3분이 넘었다. 자신들이 과자와 관련된 리서치에 참석하는 것을 알고는 일부러 매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이것저것 고르는 척을 하는 알 수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세계적인 광고회사 싸치 앤 싸치의 CEO 케빈 로버츠(Kevin Roberts)는 그의 저서 ‘러브마크(lovemarks)’에서 이러한 현상을
사자를 동물원 우리에 넣고 사자가 밀림에서 어떻게 사냥하는지 관찰하겠다는 것과 같다
고 말했다. 마케터가 돋보기를 들고 고객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하는 순간, 고객은 가짜 심장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는 두가지 방법은 1) 고객에게 물어보지 않고 관찰(observation) 데이터를 주로 사용하는 것과 2) 기획자의 인사이트를 활용하는 것이다.
관찰 데이터 활용의 맥락에서 최근에는 소셜 네트워크에서의 고객들의 상호작용(dynamics)을 분석하거나, 거래 정보등을 대량으로 분석해서 일정한 패턴이나 인사이트를 찾아내는 빅 데이터(Big Data) 활용이 각광받고 있다. 그리고 후자인 기획자의 인사이트 활용 측면의 대표적인 예가 아마도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과 디자인에 대한 깊은 조예를 활용해서 ‘미치도록 놀라운 제품들(insanely great products)’을 만들어 낸 사례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훌륭한 마케팅은 조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서 철저한 관찰 및 분석 혹은 인문학과 디자인으로의 회귀라는, 전혀 마케팅의 영역 밖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이다. 이는 마케팅이라는 것의 본질은 ‘고객의 마음속에 무언가를 심어 놓는 작업(inception)’이기에 결국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에 ‘인문학으로 광고하라’ 같은 책이 인기를 끈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히트상품은 사후적으로만 설명된다.
두번째 이유로 말씀하신 히트상품의 사후적 설명은 가능하지만 사전적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점은 무척 공감가는 부분이다. 예컨대 최근에 가수 싸이가 ‘강남 스타일’이라는 노래로 아이튠즈(iTunes) 차트 1위를 차지하고 미국을 강타하는 현상에 대해서 성공요인은 사후적으로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런 노래와 컨셉을 다시 기획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싸이라는 브랜드가 형성됨으로써 싸이가 그 이전보다 높은 인기를 구가하기는 하겠지만, 강남스타일 이전의 싸이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누군가가 그 전략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replication)은 불가능하다.
여담이지만 이 글을 쓰는 와중에 연세대학교 장대련 교수님께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성공요인을 분석해서 HBR 에 기고하신 글이 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는 이런 글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사후적으로 성공요인을 더 다양하게 분석하면 분석할 수록, 실무자들이나 일반인들은 더 혼란에 빠진다. 두세가지 이유로 성공 공식을 요약한 다음, 그런 성공 레시피로 다시 기획을 해서 성공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기업을 하는 사람들의 관전 포인트인데, 해석하는 사람들마다 다른 이유를 내놓는다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혹은 그렇게 분석을 해 놓은 이유가 흔히 말하는 ‘겨울에 눈내리는 소리’같이 너무 뻔한 이야기라면, 누가 마케팅 기획의 가치를 인정하겠는냐는 말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고 바이럴 마케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많은 실험을 통해서 바이럴 마케팅은 ‘기획한다고’ 되는게 아니라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메세지 자체의 viral 한 요소나, 혹은 전달자의 특성등에 대해서 모두 분석을 해 보아도 일관적인 경향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대박 히트상품은 사후적으로는 얼마든지 설명이 되지만, 그 이유를 안다고 해서 replicate 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가며..
나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마케팅을 통한 ‘대박’을 쫓는 경향이 강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대박’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와 같은 한 줄의 잘 쓰여진 카피 (copy)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고 매출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나, 톱 연예인을 고용해서 광고하나 잘 만들면 초대박을 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경우이다.
하지만 실제로 전세계에서 마케팅에 가장 큰 돈을 쏟고 있는 회사들은 코카콜라, 맥도날드 같은 식음료 회사, 혹은 P&G나 유니레버 같은 생활용품 회사들, 혹은 술/담배 같은 제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들이다. 산업의 성장률이 1~5% 이내이거나 심지어 산업내의 수익률이 줄지 않을 정도로의 defense를 주로 하고 있는 이런 회사들이 마케팅에 가장 큰 비용을 쓰는 것은 ‘대박’을 위함은 아님이 분명하다. 이들은 산업을 유지하거나, 조금씩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온갖 마케팅 분석과 연구를 하고 있다. 혹은 LVMH같은 럭셔리 브랜드 기업들의 광고비도 만만치 않은데, 이들의 광고들은 연예인도 거의 쓰지 않을 뿐 아니라 매 시즌 자신들의 브랜드 정체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고급 브랜드로 갈 수록, 수십년간 브랜드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광고들도 더러 있다. (디자이너들이 들으면 섭섭해 할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나는 루이비통이나 구찌의 매시즌 광고가 바뀐다고 해도 그들을 시즌 순서대로 배열하거나, 시즌에 따라서 다른 광고를 구분할 자신은 없다) 그런 기업들의 마케팅은 한마디로 벽돌을 한장씩 쌓아서 건물을 짓는 느낌에 가깝다.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한다. 이전에 ABC라고 이야기했다면 ABC’ 정도로 변화를 주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에서의 마케팅이 남을 거짓말로 꼬드겨서 물건을 사게 하는 행위로 인식되거나, 인기가 없는 물건을 한방에 히트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대박의 제조기술 정도로 인식되는 것은 매우 서글픈 일이다. 물론 그 가장 큰 이유는 작은 시장에다가 business cycle도 점점 짧아지고 있어서 ‘치고 빠지기’식으로 장사를 하지 않으면 단기간의 미래도 점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먹고 살일이 걱정인 사람들이야 급한 마음에 마케팅과 ‘단기홍보’를 헷갈리거나 심지어 굳이 그런 것들을 구분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1년에 마케팅에 수백억을 쓰는 대기업들이 그런 식으로 마케팅 캠페인을 운영하는 것도 슬픈일이다.
Note] 그렇다고 강남 스타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님. 싸이도 매우 좋아함. 그런 의미에서 한번쯤 더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