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시장, 자영업, 그리고 대안 없는 삶

골목시장 분투기를 읽었다. 이 책은 컨설턴트와 트레이더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던 억대 연봉의 한 직장인이 커피숍을 차리면서 겪게 된 우리나라 자영업의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커피숍 사업에 실패하고 카드회사의 빚독촉에 시달렸으며, 지금은 대학으로 돌아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자영업의 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던 나의 시각을 한층 더 넓혀 주었다. (당장 책을 읽을지 말지를 고민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한마디로 조언한다면 읽을 가치가 매우 매우 충분한 책이다. 게다가 200페이지 정도로 분량도 얼마 안되어서 쉽게 읽힌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 책을 읽고나서 좀 더 궁금한 점이 있어서 아래 프로그램들을 찾아봤다.

KBS 시사기획 창 ‘출구 없는 정글, 자영업’ (2012년 3월 방영)
MBC PD수첩 ‘서민경제 진단- 자영업, 내일은 없다’ (2012년 1월 방영)
KBS 생활의 달인, ‘자영업의 달인’ (2012년 9월 방영)

그리고 최근에는 대기업들의 프랜차이즈 설명회에도 두군데 참석할 일이 있어서 본의 아니게 자영업에 대해서 공부할 기회가 좀 있었다.

자영업에 대한 스터디 요약

골목시장 분투기, 두번의 창업 설명회, 그리고 몇몇 방송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대부분이 50-60대에 퇴직금을 들고 자영업에 뛰어들며, 그 숫자는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몇천만원에서 많게는 억 이상의 빚을 지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1.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원래 계획보다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over investment 하게 됨 (부동산, 프랜차이즈 업체등 주변의 꼬임에 넘어가서 무리한 투자를 하는 경우),
2. 창업을 준비하면서 예상치 못한 비용이 발생하므로 (철거비, 세금, 인테리어비, 기존 업체가 요구하는 권리금 인상분, 등)
3. 단순히 자본금이 부족해서

자영업으로 성공하기 가장 어려운 이유 (반대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

1. 높은 임대료: 한국의 임대료가 워낙 살인적으로 높기 때문
2. 권리금 제도: 한국에서만 있는 권리금 제도 때문에 자본비용이 상승하고, 사업이 안될경우 권리금 손실의 리스크가 상승하므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입자 입장에서 권리금 보장이 안되는 법률적 리스크도 있으므로
3. (기술적/ 재무적) 준비 부족: 자영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철저한 준비를 하지 않고 뛰어들기 때문
4. 공급과다: 한 분야가 뜬다고 하면 몰려드는 성향이 한국 시장에는 존재하므로, 쉽게 과다경쟁이 생겨서 모든 사업이 유행 (fad) 경향을 보이는 현상이 있음
5.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 사업 초기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내용 강요 등

시장의 논리에 따르면 이렇게 공급이 과잉이 되면 자영업자의 공급이 줄어야 할텐데, 계속해서 사람들이 자영업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그 이유는;

1. 베이비부머들이 대거 은퇴하고 있으므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이유는 ‘그들에게는 대안이 없으므로…’
2. 자영업의 실상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므로
3. 자영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상권분석, 경쟁 구도분석을 하지 않고 ‘나는 될꺼 같다’라는 자세로 시작하므로

어떻게 해야 성공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뻔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으나)

1. 그 업에서 필요한 기술에 대한 철저한 준비
2. 상권, 고객, 수익률에 대한 철저한 계산 (예컨대 ‘골목시장..’의 저자가 말하는 ‘유동인구’에 대한 정의는 깊이 공감했다. 동네의 유동인구는 어떤 사업을 하는것과는 거의 무관하며, 실제로 그 주변의 경쟁업체들에 손님들이 얼마나 들어가서 얼마나 구매하는지를 계산하는게 중요하다는 포인트)
3. 자신이 익숙하거나 아는 분야에 도전

아마도 가장 슬픈 부분은 결국 지금 자영업 전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그 전쟁에 뛰어든 이유가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안이 없는 삶이란 얼마나 슬픈 삶인가? 열심히 몇십년간 청춘을 바쳐서 직장생활을 했는데, ‘내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자식들에 들어갈 돈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면, 당장 성공할 가능성이 10% 미만인 사업에라도 뛰어들 수 밖에 없는 절박함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 한두달 간의 스터디에서 나에게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이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한 단 하나의 FACT 를 꼽으라면, 자영업을 시작한 사람들 대부분이 ‘대안없는 삶’의 마지막 종착역으로 자영업을 택한다는 점이었다.

자영업의 업의 정의 (business definition)

화제를 전환해서, 자영업에 대해서 좀 더 체계적으로 보겠다.

‘골목시장 분투기’에서 자영업에 대해서 공감했던 부분은 자영업과 ‘기업창업’은 그 정의가 전혀 다르다는 점이었다. 기업을 창업하는 것은 종업원을 고용하고, 사업이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반면, 자영업은 그렇게 큰 꿈을 꾸기보다는 안정적인 현금흐름(cash flow)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며, 인원도 주로 가족단위 + 소규모의 아르바이트 인력을 가정으로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계형’이다.

또한 자영업은 소규모 ‘동네 비즈니스’를 의미하거나 단일매장의 프랜차이즈 매니지먼트 정도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업종은 주로 치킨집, 빵집, 편의점, 수퍼마켓, 기타 요식업을 아우른다. 혹은 노래방, 모텔을 비롯한 서비스업이 될 수도 있겠다.

‘업의 정의(business definition)’가 중요한 이유는 그 업(business)의 고객과 요구되는 스킬이 정의되기 때문이다. 물론 자영업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하기에는 업종이나 고객이 너무 다양하다. 하지만 각각의 자영업자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 뚜렷한 정의를 내리지 않고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골목시장 분투기의 말미에서도 필자가 ‘자기가 잘 아는 분야를 할 것’을 권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어떤 사업을 하던지, 자신이 그 밸류체인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이해하지 않으면 사업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사업’ 따위는 없다. 만약 당신이 하는 자영업을 ‘딱히 기술이 없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면, 빨리 그만두어야 한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자영업에 대한 기대수준’을 말하고 싶다.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누구나 ‘대박’을 원할것이다. 여기서 대박이라 함은 도대체 몇%의 수익률인지, 혹은 절대 금액으로 몇백만원 혹은 몇천만원을 벌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 명확한 기대수준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많이 벌면 많이 벌수록 좋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미 그 사람은 자신의 사업에 대한 계산이 명확하게 서 있지 않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반면에 한달에 100만원이라도 나는 ‘내 것’을 갖고 싶다고 뚜렷하게 말하는 사람은, 돈을 적게 벌어도 스스로 ‘짭짤함’이라고 표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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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BS 시사기획 창 ‘출구없는 정글, 자영업’ 화면 캡처
만약 내가 자영을 한다면?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만약에 내가 50-60이 되어서 조직에서 ‘교체의 대상’이 된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 또한 자영업을 옵션 가운데 하나로 생각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골목시장 분투기’ 나 시사프로그램에서 다뤄지는 것과 같은 사람들의 예처럼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애초에 자영업을 하지 않을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부분의 실패원인들은 구조적인 것들이지 나 개인이 힘을 발휘한다고 해서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예컨대 비싼 임대료,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권리금 등의 문제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을 시작하시는 대부분의 분들의 심정과 같이) ‘달리 대안이 없다면 어떻게 할래?’라고 묻는다면 나는 되도록이면 임대료가 낮고 권리금이 싼 곳에 들어가는 수 밖에 없다고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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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좀 바뀌긴 했지만) 몇년 전에는 ‘매드 포 갈릭’을 참 좋아했다. 그런데 이 매드 포 갈릭이라는 레스토랑 체인은 신기하게도 매장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 비슷한 포지셔닝이었던 아웃백은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서 매장을 찾을 수 있었는데, 내가 잘 가던 매드포갈릭 역삼점, 공덕점, 압구정점, 여의도점 등은 전철에서 나와서도 10분 정도는 걸어야 하거나, 내가 자주가는 곳들의 사이 중간 지점에 애매하게 위치한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매드포갈릭 역삼점은 역삼과 강남역 사이에, 압구정점은 압구정 상권과 갤러리아 상권의 중간쯤 애매한 위치에서 찾을 수 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런 위치선정이 매드포갈릭의 가장 중요한 전략의 하나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층도 주로 지하층이어서 어둠침침하기 때문에 매드포갈릭의 컨셉과 맞으면서도 월세나 권리금이 싸다는 장점이 있었다. 매드포갈릭과 같이 자본이 많이 필요한 사업에 국한해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꼭 남들이 모두 헤엄치는 곳에서 헤엄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하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가 무엇을 하던지 내가 그만두기 이전까지 다니던 회사의 ‘업’과 관련된 것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심각한 수준의 취미로라도 깊이 관심을 갖고 하지 않았다면 쳐다도 보지 말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워낙 관심 분야가 많은 것이 오히려 고민 -_-;;)

나가며…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철학’이다. 여기서 철학은 바로 ‘차별화’와도 같은 말인데, 어떤 업에 대해서 자신만의 철학이 없다면 차별화를 절대 할 수 없다. 그 철학이라는 것이 제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던지, 아니면 공간에 대한 생각이던지, 고객의 경험에 대한 그 무엇이던지 아무튼 그 ‘업’을 구성하는 중요한 한 요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서 자기만의 ‘철학’을 얻었다는 정도가 되어야 사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부분은 ‘골목시장 분투기’에서도 여러번 소개되어서 매우 공감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이 나는 것은 바로 얼마전에도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소개한 ‘착한가게(채널 A)’ 혹은 ’100년의 가게들(KBS)’이었다. 이들의 성공공식은 매우 비슷비슷한데, 대박욕심을 내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재밌을 것 같다는 느낌이 오시는 분들은 아래 포스팅을 한번쯤 보시길 바란다.

먹거리 X파일과 백년의 가게를 통해 본 ‘착한 식당’ 성공 공식

한편으로는 결국 건물임대주와 프랜차이즈 업체들만 돈을 벌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영업자들 입장에서는 도대체 대기업들이 만들어내는 골목상권용 비즈니스와도 싸워야 하고, 프랜차이즈 경쟁업체와도 싸워야 하고, 건물 임대주와도 싸워야 하고… 이게 과연 애초에 승산이 있는 비즈니스인가?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영업자 한명 한명이 각자의 비즈니스를 영위해서는 답이 잘 나오지 않을 것 같고, 유럽의 사례들처럼 생협(coop)위주로 동네상권들을 다시 재편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혹은 ‘골목시장 분투기’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무분별한  ’공급과잉’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정보부족과 계산부족에서 기인하므로,  자영업자들 간의 (혹은 자영업을 원하는 사람들간에) 네트워크를 발전시켜서 정보 공유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예컨대 자영업을 하려면 어떤 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본적인 비즈니스 플랜이 꼭 들어가게 한다던가 하면 훨씬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런 의도로 비즈니스 플랜을 검토하거나 세워야 하는 자원봉사가 필요하다면 나도 기꺼이 한몸 바친텐데 말이다….

Note]
혹시 자영업을 하시거나 하셨던 분들이 읽는다면 쥐뿔도 모르면서 얘기한다고 말씀하실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당연할 것이다.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자영업을 하고 계신 분들이 그런 각오로 하는 것 만한 배움을 내가 고작 한달 쫓아다녀보고 얻을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그런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주저마시고 가르침을 주시면 감사하겠다.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mbablogger.net/?p=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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