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아이패드 미니(iPad Mini)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dead on arrival”이라 폄하했던 바로 그 7인치대의 태블릿을 애플이 출시하게 되다니, 시장이 많이 변하긴 했나 봅니다. 태블릿의 사이즈가 얼마가 되어야 하느냐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모두 그 사이즈에 맞는 타겟이 있고 포지셔닝이 있을 뿐입니다. 그 관점에서 태블릿의 사이즈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기대 반, 우려 반의 아이패드 미니 스크린 사이즈는 7.9인치. 7인치라기보단 8인치라고 하는 게 좋겠죠. 이로써 아이패드는 10인치, 8인치 두 가지 제품군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애플의 아이패드는, “이게 뭐야?” 하는 전문가들의 어리둥절함을 비웃으며 또 다른 큰 시장을 열었습니다. 사람들은 태블릿을 컴퓨터 시장으로 인식해, 노트북 잠식을 우려하는 그래프들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포스트 PC’ 시대를 여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아이패드가 처음 나왔을 때, 스티브 잡스는 브라우징, 이메일, 사진, 비디오, 음악, 게임, 전자책을 아이패드의 영역으로 포지셔닝했었습니다. 한마디로 종합 미디어 단말이라는 얘기죠. 아이폰(인터넷, 전화, 아이팟)과는 분명 다른 포지셔닝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포지셔닝이 모호한 면이 있습니다. 그간 시장이 많이 변했죠. 아이패드는 날로 그 성능이 높아지면서, 단순한 미디어 단말에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도 죽을 쓰고는 있지만, 경쟁사들의 끊임없는 도전은 태블릿의 범주를 또한 새롭게 넓혀가고 있습니다. 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딱 부러지게 설명은 못 하는 요즘 태블릿의 포지셔닝에 대한 나름의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미디어 단말
우선 미디어 단말로서의 포지셔닝입니다. 브라우징, 비디오, 게임 등의 하이엔드 미디어를 고려할 때, 아이패드가 기존의 아이폰보다 훨씬 큰 10인치 태블릿으로 출발한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미디어의 특징은 정보량이 많고 몰입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폰 같은 작은 화면에서는 그런 소비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전에 제가 썼던, ‘적정 스크린 사이즈, 해상도에 대해‘라는 글에서 관련된 내용을 정리했었습니다. 보통 눈의 초점을 자연스럽게 맞추고 시력의 피로감을 낮추려면 25~30cm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몰입을 위한 시청 각도를 30도로 가정했을 때 아이폰 사이즈의 스크린은 시청 거리는 20cm 이내가 되어야 합니다. 이건 거의 초점도 맞추기 어려운 거리죠. 다시 말해, 아이폰으로는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는 미디어 소비가 어렵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하이엔드 미디어들은 상대적으로 긴 소비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더 편한 자세의 소비 행태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손에 들고 있기보다는 책상이나 무릎에 내려놓는 행태가 자연스럽습니다. 이 시청 거리가 40~50cm가 되는데, 30도 시청각을 적용하면 9~12인치 스크린이 적당합니다. 딱 아이패드의 크기죠.
삼성에서 곧바로 7인치 태블릿으로 대응하자, 스티브 잡스는 ‘도착하기 전에 이미 사망’한 제품이 될 것이라 혹평을 했었습니다. 그 당시 아이패드의 포지셔닝으로 보자면 맞는 얘깁니다. 삼성이 처음에 7인치에 대한 어떤 분석과 결론을 내렸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결과물로만 봤을 때는 뭔가 잘못 짚은 냄새가 많이 났었죠. 디스플레이 패널 수급 문제 때문에 10인치가 아닌 7인치가 나왔다는 말도 들려왔었고.
또한, 아이폰 대응의 목적으로 스마트폰의 사이즈 자체가 커지는 기현상도 벌어졌습니다. 벽돌만 한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전화를 하는 모습은 ‘울트라 씬’이 판을 치던 피처폰 말기 시대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정말 코미디의 한 장면이죠. 미디어 기능을 강화하려는 의도이긴 하지만, 전화기로서의 폼팩터와 미디어 단말로서의 폼팩터는 서로 융합되어도 충분히 양쪽을 만족하게 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니 전화하기도 불편하고 미디어 감상하기도 좀 불편한 그런 단말이 되는 것이죠. (물론 그런 단말을 필요로 하는 라이프스타일도 있습니다. 밖에서 계속 돌아다니는 분들에겐 꽤 쓸만하다고 합니다.)
현재 태블릿 시장을 보시죠. 아이패드 미니 이전엔 경쟁사들이 그나마 비빌 수 있는 언덕은 7인치 사이즈였습니다. 10인치로는 도저히 경쟁이 되지 않니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 밖에요.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바로 아마존 킨들이 주도한 전자책 리더 시장이었습니다. 아마존은 6인치 크기로 저렴한 전용 단말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여기에 고무되어 7인치 킨들 파이어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태블릿 시장에 진입하게 됩니다. 게다가 편안한 시청 거리인 25~30cm로 몰입이 가능한 스크린 사이즈가 6~7인치니까, 미디어 단말로서도 손색이 없죠. 아마존이 전자책뿐 아니라 아마존 인스탄트 비디오(Amazon Instant Video)와 앱스토어 등의 컨텐트 사업을 확장해 나간 것도, 7인치 태블릿의 가능성에 기대를 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자, 이제 애플도 이 시장을 아니 볼 수 없겠죠. 아이패드 미니는 그런 의미의 단말입니다. 7인치(물론 미니는 7.9인치니까 8인치라고 해야겠죠) 대역의 단말들은 그러니까 보다 미디어에 특화된 단말입니다. 사이즈가 커진 스마트폰까지 포함한 미디어 태블릿을 다음과 같이 그루핑해봅니다.
- Palm-top Group: 4~5인치 스마트폰. 휴대성이 뛰어나나 몰입을 위한 환경을 만들기 어려움. 미디어 소비 간극을 메우는 용도.
- One-hand Group: 6~8인치 태블릿. 적정 시청 거리 30cm 부근에서 한 손으로 몰입 시청이 가능한 사이즈. 휴대형 미디어 전용 단말.
- Lap-top Group: 9~10인치 태블릿. 무릎이나 책상에 오려 놓고 시청하는 40~50cm 거리에서 몰입 시청이 가능한 사이즈. 또한, 보다 큰 사이즈로 인해 인터페이스의 자유도가 더 높아져 미디어 단말 이상의 잠재력을 지님.
창조성과 생산성 단말
미디어 단말과는 달리 창조성과 생산성 단말은 단순히 시청 거리에 의한 몰입 사이즈를 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후자는 집중된 입력을 위한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스타일러스, 키보드가 중요한 액세서리가 됩니다. 여기에선 스크린 사이즈는 실은 크면 클수록 좋습니다. (물론 한자리에서 스크린 끝까지 손이 뻗을 수 있는 정도가 최대치가 되겠지만) 기본적으로 화면엔 원활한 작업을 위해 충분한 정보과 기능을 제공해야 하고, 복잡한 터치 작업도 매끄럽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휴대성이 생명인 태블릿의 특성상, 스크린 사이즈가 마냥 커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럼 그 기준점은 무엇일까. 애플의 최소형 노트북 모델인 맥북 에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JK 롤링(Rowling)이 칭송했다는 그 제품 말입니다.
맥북 에어는 내 삶을 변화시켰다. 나는 어떤 아주 낯선 곳이든, 어디든 글을 써왔다.
The MacBook Air changed my life. I’ve written everywhere, including some very strange places.
11인치 맥북 에어는 최대한의 생산성을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폼팩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짐작하셨듯, 그 키는 바로 키보드입니다. 그것도 그냥 키보드가 아니고 풀사이즈 키보드 말입니다. 아이패드 등 태블릿용으로 나온 키보드 액세서리를 써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풀사이즈 키보드가 아닌 지나친 컴팩트 키보드는 생산성 역량을 100%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경험상 50%도 안됩니다.) 현존하는 가장 뛰어나고 가장 컴팩트한 풀사이즈 키보드-제 생각일 뿐-는 애플의 무선 키보드죠. 이 키보드 사이즈가 생산성 100%의 마지 노선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키보드의 가로 사이즈가 11.1인치인데, 이 크기와 랩탑 그룹의 태블릿들의 크기를 비교해 봤습니다. 딱 맥북 에어 11인치에 맞는 크기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유사한 태블릿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서피스(Surface)입니다. 서피스는 아이패드 매직 커버 스타일의 키보드 액세서리를 가지고 있죠. 직접 보진 못했지만, 서비스의 가로 길이가 10.81인치니까 거의 애플 무선 키보드 사이즈 수준의 키 간격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다른 태블릿들과는 달리, 오피스 앱을 강화하고 스크린 사이즈를 키워서 생산성 단말로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죠. 그런 포지셔닝이라면 꽤 적절한 폼팩터를 가져가고 있다고 보입니다.
이 사이즈보다 작은 아이패드나 갤럭시 노트 10.1 같은 경우는 (저처럼) 별도로 풀사이즈 키보드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면, 생산성 도구로 충분한 기량을 발휘하긴 힘들 겁니다.(여담으로, 아이폰에 애플 무선 키보드를 사용하시는 분도 봤습니다. 옛날 워드프로세서 기계가 생각나더군요. -_-;) 대신에 아이패드는 터치 기반으로 간단한 스케치나 음악 창작 등 다양한 창조성 앱이 풍성합니다.
갤럭시 노트의 경우는 특이하게 스타일러스를 강화하여 펜 입력이라는 차별화된 인터페이스를 가져가고 있죠. 스타일러스도 더 정교한 창조 작업에 분명 도움을 줍니다. 즉, 창조성과 생산성이 무 자르듯 딱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나, 풀사이즈 키보드 장착의 쉬움에 따라 각각 생산성 그룹과 창조성 그룹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그 기준도 단말의 사이즈가 결정 요소가 됩니다.
그럼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조금만 더 화면을 키워 생산성에 잘 적용될 수 있는 태블릿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여기에서 PC 시장과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애플은 바로 맥북 에어와 포지셔닝이 겹치게 됩니다. 그런데 맥북 에어는 최적의 생산성을 보장할 수 있는 최저 마지 노선이므로, 아이패드가 여기에 중첩되어 봤자 둘 다 득이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창조성 그룹 수준에서 생산성 그룹의 맥북 에어와 선을 긋는 것이 낫죠. 제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지나치게 훌륭한 서피스의 전략에 우려를 표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겁니다.
결국 이 생산성 그룹의 시장은 로우엔드 PC 시장이 될 것입니다. 예전엔 태블릿 PC가 제법 고가의 사치였다면 지금은 좀 저렴해진 태블릿 PC가 되는 거죠. 하지만 저렴한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철칙은 이런 것입니다. 비용을 낮추려면 기능을 버리고 좀 더 협소한 포지셔닝으로 특화할 것.
그리고 언젠가는 기술이 발전해서 PC와 태블릿의 경계가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태블릿의 기술이 발전한다는 것은 PC의 기술도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단위 면적당 성능 집적도의 차이가 없을진대, 어떻게 태블릿이 PC를 따라잡습니까. 휴대성의 극대화는 항상 성능과 타협을 합니다. 말하자면 태블릿과 PC는 출발 위치가 다른 평행선입니다.
결론
따라서, 최종적으로 작금의 태블릿 시장 포지셔닝은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습니다.
- 7~8인치대의 로우엔드 미디어 특화 태블릿.
- 10인치대의 하이엔드 미디어 & 창조성 태블릿.
결국 애플이 다 맞는다는 얘기냐? 이제는 애플이 시장을 100% 홀로 끌고가진 않습니다. 아이패드 미니도 로우엔드 태블릿 시장의 대응이었죠. 애플이 맞다는 것이 아니고, 시장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부가하고 싶은 말은, 7~8인치 태블릿은 시장 진입 상품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즉,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낮은 학생이나 기술 도입에 소극적인 여성층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아이패드 미니를 장만하려고 아내를 꾀어봤지만, 아직은 장벽이 높은 것 같습디다…)
글 : 게몽
출처 : http://bit.ly/XWaA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