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편지를 짧게 쓸 시간이 없어서 길게 씁니다”
이 말은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Blaise Pascal)이 처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후로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재인용한 것 같아서, 확실히 누구의 IP(intellectual property)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누가 최초로 한 것이던지 상관없이, 이 말에는 인사이트가 가득하다. 핵심만을 말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내용들을 재조합하여 정리할 시간과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TED.com 에 빠져서 지냈던 시간이 있다. 2009년에는 인터넷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과 최초로 한국에서의 tedxseoul 이벤트를 준비하기도 했던 추억이 있다. TED에 매력을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18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 한다는, ‘간결성’ 에 있었다. 한두시간 쯤은 마냥 보내곤 하는 한국의 강의 문화를 지겹게 보낸 나에게, 자신의 생각을 간결하게 말하는 TED talk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사회에는 여전히 간결하고 핵심만을 전달하는 효율성보다는, 최선을 다한 ‘티’를 내야 하고 농업적 근면성을 증명해야 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문화는 구성원들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는다. 듣는 사람도, 준비하는 사람도 모두 피곤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필요 이상으로 input 의 양에 집중하는 경향이다. 중요한 것은 output의 효율성/효과성이겠지만, 그것을 판단할 눈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input의 양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시간’, ‘돈’, ‘분량’, ‘사람수’ 등으로 input의 양은 비교적 판단하기 쉽기 때문이다. 종종 우리가 ‘성의를 보인다’라고 부르는 행위 말이다.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이 많은 요즘의 회사 생활에서 이메일은 유용한 수단이자 골치덩어리이다. to list에 누구를 넣을지, cc list 에 누구를 넣을지, 제목을 무엇으로 적을지,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지, 어떤 시간에 보내야 할지 등등을 생각하다보면 메일 한 통을 쓰는데 한시간 이상 걸릴 떄도 많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특성은 생각을 오래 할 수록 이메일의 양이 줄어든다는 것, 간결해진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 더 황당한 것은 그렇게 공들여 써 놓고 draft 로 저장했다가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냥 말로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결국 그 메일은 보내지도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것이다. 즉, 간결해지다 못해서 메일이 사라져 버린다. ^^
메일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다큐먼트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나의 전 직장은 모든 문서를 한 페이지(1 page)의 워드문서로 만들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파워포인트는 매우 싫어하는 회사였다) 제안서나 보고서를 꼭 한 페이지로 만들어야 했고, 데이터나 기타 참고사항은 모두 별첨으로 처리했다. 만약 제안서나 보고서가 두 페이지로 늘어날 것 같으면 미리미리 매우 미안하다고 말하며 매니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특이한 문화가 있었다.
그렇다보니 한장의 문서를 놓고 밤새 고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따라서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어떤 내용이 필요한 것인지 필요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한 페이지라는 한정된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고민을 해 본 것은 참 소중한 훈련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블로그의 길들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에 대해서 이 블로그 독자들에게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진심으로 앞으로는 글을 더 짧고 간결하게 쓰려고 노력하겠다.
아니면 최소한
“죄송합니다. 포스팅을 짧게 쓸 시간 여유가 없어서 길게 썼습니다”
라고 사과의 문장이라도 꼭 적어야겠다.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mbablogger.net/?p=5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