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병이라는 게 있다. 어디서 시작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제시 되는 현상은 꽤나 보편적이어서 누구나 들으면 ‘아하!’하게 되는 그런 증상들을 모아서 대기업병이라고 부르는 듯 하다. 매일경제에서 꽤 잘 정리한 글이 있어서 그 중 TOP 10 징후를 담아와 보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운이 좋게도 사회생활 초년 시절에 문닫는 조직을 경험해보았다. 다행히 워낙 어리고 월 소비라고 해봤자 식대랑 교통비 밖에 없던 시절이라 큰 타격을 입진 않았지만, 그때 조직이 100명이 넘는 규모에서 10명 남짓한 조직으로 까지 변해가는 모습을 옆에서 매우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나의 경영에 대한 생각, 조직의 문화와 인재에 대한 생각을 갖게 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대기업병이라는게 이름과 달리 중소기업에서도 생길 수 있다는게 함정이다. 사람을 잘 못 뽑거나 조직 문화가 망가지면 20명만 되도 걸릴 수 있고, 반대로 잘 관리만 되면 1,000명 규모에서도 비교적 ‘덜’ 걸릴 수 있는 병인 듯 하다. 조직이 커지면서 어느 정도의 징후는 나타나겠지만, 결국 경영자, 그리고 나아가 조직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중간관리자 층이 잘 받쳐주면 손쓸 수 없는 상황까지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경험해본 조직들에서 대기업병이 있다는 걸 느끼기 쉬운 증상들은 이렇다. 사람들이 일단 책임을 안 지려고 하고, 일을 할 때도 잘못됐을 때 욕을 안먹을 수 있고 남에게 전가할 수 있기 쉽게 일을 짠다. 그리고 뭔가 사소한 일에 대하여도 일일이 확인을 받으려고 하는 모습도 비일비재해진다. 권한의 이양이 되질 않아서 사소한 건에 대하여도 윗선의 눈치를 보며, 관리부서의 목소리가 커져간다. 그리고 중간관리자들은 전형적으로 강한 사람의 눈치를 보며 유해지고, 약한 사람 앞에서는 큰 소리치며 권위를 세우는데(고성불패라는 말을 나도 처음 배웠다), 이러다보면 팀원들의 불만은 위로 전달이 안되고, 조직의 손과 발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문화가 곪기 시작한다. 이러다보니 실무진 레벨에서의 몰입도가 떨어져서 일이 서서히 안되기 시작하고, 자진해서 하던 야근도 갑자기 칼퇴로 바뀌어간다. (칼퇴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고, 야근을 하던 사람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칼퇴로 변한다는 변화의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회사 내에는 이렇다할 성과도 없는데 승진과 강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러면서 조직에는 파벌이 생겨나고,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상호간에 험담을 쉽게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점점 일 보다도 일 외적인 일에 사람들이 시간과 신경을 많이 쓰기 시작하면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동료들끼리의 개운한 기분의 맥주 한잔 보다는, 삼삼오오 파벌끼리 모여서 서로가 아직 적이 아니고 같은 편임을 확인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 한가? 내가 속한 조직이 그런가? 축하드린다. 대기업병에 걸린 것이다.
이러다보면 인재들의 이탈이 빈번해지는데, 주로 자유도가 높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나간다. 이런 사람들은 주로 능력과 인맥이 출중하여 좋은 조건으로 오라는 곳이 많거나, 아니면 젊어서 금전적 부담이 적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느덧 자기도 모르게 대기업병에 걸린 사람들, 혹은 그런 대기업병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리고 능력은 있으나 자유도가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주로 이런 고능력 저자유도 유형의 사람들은 결혼을 해서 자녀가 있거나, 커리어 상의 중요한 타이밍이거나, 아니면 조직내 남아있는 다른 자유도가 낮지만 괜찮은 사람들에 대한 관계 때문에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마음 속에서는 보다 좋은 조직에서 신나게 일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 누구보다 크기 때문에 결국은 반드시 나가게 된다.
내가 경험했던 문닫은 조직에서의 모습이 이러했다. 배울게 많던, 좋은 분들이 먼저 하나 둘 나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떠난 사람들이 조직을 걱정하며 경계했던 암세포들은 정작 조직에 남아서 큰 소리치며, 자신을 견제할 사람들이 사라져가자 점점 득세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그게 자신이 타고 있는 배를 가라앉히게 한다는 걸 잊고 있는 듯 하다. 그러다가 배가 가라앉기 직전에 부랴부랴 뛰어내린다. 그러면서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외친다.
Netflix가 요즘 힘든 모습을 보이긴 하나, 한때 좋은 기업 문화로 무척 유명해진 사례(이건 경영자라면 필독)가 있다. 여기에서도 보면 알 수 있듯, 조직이 커지면서 어떻게 뛰어난 인재들이 먼저 조직을 버리기 시작하는가에 대한 좋은 설명이 있고, 그리고 나서 그걸 막기 위하여 어떻게 조직 문화를 관리해야하는 가에 대한 좋은 처방들이 있다.
분명한건 조직이 크던 작던 대기업병이 걸린다는 것이고, 그걸 막기 위하여는 결국 경영진이 인재 경영과 조직 문화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의 경영 환경에서 인재 경영의 중요성은 점점 그 위상이 높아져가는데, 아직 본인이 속한 조직의 문화나 마인드가 그러한 시대적 패러다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크나큰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McKinsey에서 말하기를, “Change Management(변화 경영)”의 핵심은 “Change the management(경영진의 변화 혹은 교체의 중의적 의미)”라고 하지 않던가.
글 : 김동신
출처 : http://dotty.org/2699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