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격자’ 전략으론 일류국 불가능
– 각종 규제가 기업가정신 억눌러
– 특허기반 창업역량 키워야할 때
한국은 6·25 전쟁 후 세계 최빈국에서 반세기여 만에 세계 8대 무역국가에 진입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한국의 도전적인 기업가정신이 그 기적의 비밀이었다. 정주영, 이병철 씨로 대표되는 대기업군에 이어 1990년대 중반 벤처기업들은 바로 고(故) 피터 드러커 교수가 극찬한 기업가정신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소르망 교수는 “한국의 경제 정치 발전사는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고 평가하지 않았는가.
한국은 전 세계 최빈국에서 중진국으로 진입하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에서는 전 세계 최우등생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방식으로 일류 국가 진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불편한 진실이다. 빠른 추격자 전략과 최초 개척자(1st mover) 전략은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다. 이제 기업가정신에 기반한 혁신국가건설에 대해 심층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기업가정신은 창업기업가 정신, 사내기업가 정신, 사회적 기업가 정신 등 다양한 방면에서 발현되고 있다. 그러나 그 공통점은 바로 ‘혁신의 리더십’이다. 전 세계 60개국의 기업가정신을 비교 연구한 GEM(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에 의하면, 중진국까지의 성장은 열심히 일하는 효율성이 주도하나, 선진국 진입은 혁신을 이끄는 기업가정신이 주도한다. 전 세계적으로 혁신적 벤처 창업이 성장과 고용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유일한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2000년 벤처붐 이후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대한상의의 기업가정신 지수는 72.3에서 6으로 격감했고, 한국은행은 2000년 53.2에서 2007년 18로 하락했다. 필자의 강연에서 절반이 넘던 창업 희망자들은 이제 청년의식조사에서 벤처 창업 희망 3%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같은 기간 스웨덴은 창업희망자가 30%에서 45%로 증가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적어도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한국인의 기업가정신 부재는 아니라는 것은 현대산업사가 입증한다. 2000년 초반 전 세계적인 IT버블 붕괴도 아니라는 것은 미국의 사례가 입증한다. 그 원인은 바로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억누르는 규제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000년 IT버블 붕괴 이후 세계적 현상을 국내 문제로 오해하고 ‘묻지마 투자와 무늬만 벤처’를 없애기 위한 엔젤투자 세액공제 축소, 코스닥 운영 보수화, 벤처인증 보수화, 주식옵션 제한 강화 등 ‘4대 벤처 건전화정책’은 한국의 창업 생태계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혔던 것이다. 이들 규제 제도의 원상 회복이 절실한 이유다.
미국의 창업 활성화는 실패를 지원하는 재도전 문화에 있다. 실리콘 밸리의 성공 기업가들의 평균 창업 횟수는 2.8회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단 한번만의 창업 기회가 제공된다. 바로 연대 보증의 족쇄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창업 자금이 융자가 아니고 투자로 이뤄지면 신용불량은 본원적으로 사라진다. 초기 투자가들인 엔젤투자자들이 사라진 것이 문제다. 엔젤투자자들의 중간 회수 시장의 활성화가 시급한 이유다.
그러나 자금 공급은 창업 활성화의 필요조건이며, 충분조건은 기업가정신과 핵심역량의 강화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특허청의 지원으로 KAIST와 포스텍이 3년 전 특허기반의 영재기업인 과정인 ‘IP-CEO’ 과정을 만들었다. 전국의 중학생 중에서 특허 아이디어와 기업가적 꿈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해 프로젝트 중심의 창의와 협력 기반 학습을 연간 200시간 이상 제공하고 있다. 3년간의 성과는 연간 평균 1인당 특허와 사업계획서 4건으로 대표된다. 특허를 통해 깊이 있는 창조성을 개발하고 사업계획서를 통해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기업가정신은 특허 기반의 역량이 융합돼야 꽃을 피운다. 바로 같은 시기에 미국에서 ‘특이점 대학’이 만들어진 것과 시대정신을 공유한 것이 아닌가 한다.
기업가정신에 기반한 혁신국가 건설,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는 대안이다.
글 : 이민화 KAIST 교수ㆍ디지털병원수출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