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가 우연잖게 옆 자리에 앉은 모녀의 대활 듣게 되었다. 딸은 20대 후반 정도로 어머니는 50대 후반 쯤 으로 보였다. 딸이 어머니에게 직장동료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다. 요약하자면 딸이 오래 전부터 휴가를 내겠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알렸는데, 평소에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동료가 찾아와 딸이 휴가를 계획한 날 자신이 휴가를 내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딸은 그 동료에게 오래 전부터 휴가를 내겠다고 말했는데, 이제 와서 휴가를 바꿔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화를 냈다고 한다.
난, 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화의 이유에 대해서 공감이 갔다. 그런데 딸의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무조건 딸의 편을 들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 상당히 기분 나빴겠다. 그 동료가 잘못한 게 맞는데, 나름 어떤 사정이 있어서 너에게 부탁했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드네. 엄마 생각엔, 다른 사람의 부탁이 비합리적으로 보이더라도 단칼에 거절하기보다, 일단 어떤 사정 때문에 그런지 그 이유를 먼저 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일단 들어 보고 부탁을 들어 줄 상황이 되면 부탁을 들어 주든가,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이야기해 보는 게 단순히 거절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인상을 줄 것 같다.”
대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할 때 여러 번 고민한다. 물론 부탁을 아주 손 쉽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아서, 사회 생활을 하다 타인의 이기심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부탁을 칼같이 거절하는 게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탁하는 입장에서 대개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자신의 부탁이 한순간 거절을 당하면 그 상처도 만만치 않다. 농구를 처음 배울 때 일이다. 선배에게서 패스 받는 방법을 배웠는데, 패스를 잘 받으려면 두 가지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그 두 가지는 마중 나가기와 일단 품어주기로 요약될 수 있다. 마중 나가기는 패슬 해 주는 사람이 패스해 줄 위치를 예상해서 그쪽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가만히 서서 패스를 받을 생각을 하면 수비수가 공을 가로 챌 가능성이 많아진다. 이런 이유로 마중나가기가 중요하다.
초보들은 공을 받자마자 슛을 쏘거나 드리블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빠른 속도로 날아 오는 공을 잡고 보자는 마음이 앞선다. 그런데 공이 빨라서 이렇게 서두르다 보면 공을 놓치기가 쉽다. 따라서 패스를 잘 받으려면 공을 잡기 전에 공의 속도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즉 날아 오는 공을 잡는 게 우선이 아니라 품으로 품듯이 받아서 공의 속도를 줄이는 게 먼저다. 이런 이유로 패스 받기를 잘할려면 두번째로 일단 품어주기를 잘해야 한다.
대기실에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데 핵심은 좋은 패스 받기의 기술인 품어주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내게 하는 부탁은 패스하는 공과 같다. 그 공을 내가 받아서 슛을 쏴 처리를 하거나, 내가 받아서 공격 포인트로 마무리할 수 없으면 그 상대에게 다시 넘겨 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 어떤 후속 조치를 취하든 일단 상대가 패스한 공은 받아야 한다. 그 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일부러 놓치거나 그 공을 서투르게 처리하려다 보면 공을 놓치게 된다. 일부러 흘리든 서투르게 놓치든 그렇게 떨어져서 바닥을 구르는 공을 보면 상대나 나나 서로 탓하기 마련이다.
어렵게 부탁을 하는 상대의 이야기 못마땅하다고 단칼에 거절하기보다, 조금 힘들더라도 일단 품어주는 게 어떨까? 일단 품었는데 정 내가 처리할 수 없는 공이라면 다시 상대에게 넘겨주거나, 정신적 육체적 여력이 된다면 상대의 패스를 멋진 슛으로 연결할 수도 있을 터이다.
덧. 농구는 나이 먹으면 잘 안되지만, 즉 체력이 딸려서. 정신적인 받아주기는 연륜이 쌓이면 느는 것 같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글 : 신승환
출처 : http://www.talk-with-hani.com/archives/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