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모션 문화가 치뤄야 하는 높은 비용 (Cheap)

summary: 우리 주변에 팽배한 할인 문화. 할인점, 홈쇼핑, 백화점, 소셜커머스 등등에서 우리는 항상 값싼 딜을 찾지만, 과연 우리는 그렇게 많은 할인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 더 나가서 그 이면에 감춰진 보이지 않는 비용은 없는가? 미국의 할인 문화에 대해서 할인점, 아웃렛, 카테고리 킬러, 생산공장 등등에 대해서 속속들이 살펴본 Cheap이라는 책을 통해서 한번 이런 문제를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한국의 할인점, 지난 10년간의 비약적 성장

우리 나라에 있는 대형 할인점은 2012년 현재 400개에 달한다. 이 개수는 2000년 당시에 50개 수준이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 비약적인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1930-40년대부터 슬슬 도입되기 시작한 이러한 superstore 컨셉의 대형 할인매장은 60-70년대를 거치면서 비즈니스 모델의 정교화와 함께 옥석이 가려지고, 1980년대에 들어서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Hypermarekt 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는 대형 할인마트가 출현한 것도 이 시기이고, 대표적으로 Wal-Mart, Target, CostCo, K-mart, Carrefour 등의 초대형 리테일러들이 출현한 것도 이 시기이다. 아무튼 미국과 한국은 그 시간의 gap은 약간 있지만, 할인점 중심으로 생필품 시장(grocery shopping)이 형성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 소비자 혹은 유통업자 모두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할인점 문화가 다른 점도 있는 것 같다. 예전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외국인은 한국의 할인점에 갈 때마다 ‘Every day is Christmas in Korea(한국은 매일매일이 크리스마스야)’라며 감탄했다. 계속되는 1+1 프로모션이나 반값할인 같은 행사들을 보면서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디스카운트가 계속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소비자들은 저렇게 샴푸를 2리터씩 사다가 도대체 무엇에다가 쓰는지 궁금해했다. 설이나 추석이면 선물세트도 치약, 칫솔, 샴푸 등의 생활용품으로 그득 담아서 서로서로 나눠주는데, 그 선물세트의 가격도 불과 1-2만원 밖에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게다가 매장은 왜 그렇게 북적거리는지… 미국의 교외에 있는 할인점 매장은 한가한 것에 비해서, 한국의 주말 할인점은 정말 북새통이다. (참고로 전세계 코스트코에서 가장 매출이 높은 매장은 한국의 양재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할인점이 붐비는 것은 비단 소비자들이 많아서만은 아니다. 외국에서는 보기 힘든 프로모터, 즉, 매장 직원들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 매장 직원들은 할인점 소속이 아닌, 대부분 제조업체 소속이라는 점이다. 할인점에서 제조업체들에게 비용을 부담시키고, 자신들의 매장 및 재고정리를 위해서 이러한 프로모터들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고, 매장내에서 판촉을 강화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프로모터는 우리나라 할인점 비즈니스에서 이제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할인점과의 비즈니스를 오래 했던 나는 이러한 상황이 한국만의 상황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난 10여년간 한국의 할인점 비즈니스는 급속도로 성장했기에, 할인점 업체들끼리는 top line (매출) 증대가 최대의 목표였다. 즉, 급속히 성장하는 시장에서는 bottom line (이익)을 최대화하기 보다는 더 많은 매장, 더 높은 점유율을 목표로 해서 시장 선두의 위치를 잡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1+1, 프로모션, 매장 늘리기 등등의 공격적인 영업들만 계속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외형을 중심으로 한 M&A도 계속 되었다. 큰 놈이 작은 놈을 잡아먹는 상황으로 지속되어서 결국 이제는 우리나라에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단 세군데의 대형 할인점 업체만을 남겼다. 월마트, 까르푸, 홈에버 등등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셋 중에서 하나쯤 사라질 가능성쯤이 얼마든지 남아 있었다.

대한민국, 할인점 전망

하지만 지금은 과거에 비해서 상황이 많이 바뀌긴 한 것 같다.

일단 여론이 좋지 않다. 사람들은 더 이상 대형 할인 마트들이 확대되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중소 상인들만의 견해이고, 서울의 곳곳에는 아직도 동네에 대형마트가 들어서서 자신들의 생활도 편해지고, 집값도 좀 오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홈플러스 합정점 사태처럼, 소상공인들이 똘똘 뭉쳐서 신규 점포 개점을 막을 수도 있다. 대형 할인점들이 신규 점포를 열기 위해서는 타협을 해야 하는 점들도 점점 많고, 아무튼 갈수록 외형성장에 대한 방해물은 늘고 있다.

“The system stand to have a broad impact on the work lives of Americans. Some 15 million people work in the US retail industry., making it the nation’s third largest private-sector employer. The work isn’t especially lucrative. Many jobs are part-time, the pay is low, and most sales jobs aren’t unionized.”

(이 시스템(대형 할인점들)은 미국인의 생활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약 천오백만 노동자들이 미국 리테일 산업에 일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에서 세번째로 큰 산업이다. 그렇지만, 이 산업은 그다지 풍요롭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정식 근로자가 아닌 일용직이며, 급여는 낮고, 노조는 거의 조직되어 있지 않다”)

위의 문구는 2008년 9월 Wall Street Journal 에 실린 기사의 일부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리테일 산업은 비슷한 모양새인것 같다. 미국의 대형마트들 역시 대부분 정규 근로자가 아닌 시간제로 일하는 근로자들(한국으로 치면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으며, 그들은 대부분 낮은 급여수준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노조는 글쎄…

이런 상황이다보니 우리 동네에 마트가 새로 생긴다고 해도 정말 물가를 잡는데 도움이 된다는 증거도, 우리 지역의 고용을 증진시킨다는 보장도 없다. 지역의 여론은 점점 좋아지고 있지 않고, 성장은 점점 정체되고 있으며, 제품 공급업체들은 죽어나가고 있다.(실제로 내가 여기서 소개하는 cheap 이라는 책에는 할인점이 새로 생긴 지역의 물가가 실제로 감소하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실려 있다. 결론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트들도 향후에는 지금까지처럼 항시 1+1 이나, 엄청난 디스카운트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과거에 카드사들이 초기 회원모집을 위해서는 혜택을 남발했지만, 서서히 혜택을 줄이면서 수익성 위주로 경영의 포커스가 바뀐 것과 마찬가지로, 할인점들도 수익성 위주로 전략이 바뀔 것이다.

그리고 제조업체들에 대한 압박도 더 심해질 것이다. 제조업체들에게 더 높은 마진을 제공할 수 있는 제품을 달라고 압박할 것이며, 이는 몇몇 제조업체들로 하여금 할인점이 아닌 다른 대안을 찾게 만들 여지가 꽤 있다. 예컨대 새로운 리테일이나 인터넷 등이 그러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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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ap – 할인 문화가 지배적인 곳에 ‘혁신’은 없다!

얼마전에 Cheap 이라는 책을 읽었다. 위에서 언급한 할인점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단순히 나의 과거 업무 경험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책을 통해서 미국의 할인점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미국의 할인점 뿐 아니라, 아웃렛, 백화점, 카테고리 킬러(IKEA, Toys R Us) 등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들 각자가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으며,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들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를 챕터들을 통해서 보면

  • Discount nation – 미국의 광범위한 할인점 비즈니스.
  • The founding fathers – 미국에서 현재와 같은 대형 할인점이 생겨나게 된 역사적 배경에 대한 내용
  • Winner take nothing – 가격과 할인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조작되기 쉽고 왜곡되기 쉬운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내용
  • The outlet gambit – 할인 문화의 또 다른 형태, 아웃렛에 대한 이야기
  • Markdown madness – 할인점들이 기존 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낮추면서 제조업체에게 그 마진 폭을 받아내는 markdown  현상에 대한 분석
  • Death of a craftsman – 할인점 문화가 가져온 장인정신의 죽음 (IKEA 사례가 중점적으로 다뤄짐)
  • Discounting and its discontents – 가격할인 문화가 가져오는 미국의 사회적 문제들
  • Cheap eats – 값싼 음식에 대한 이야기
  • The double headed dragon – 중국이라는 엄청나게 싼 생산공장, 그들이 세계 경제에 끼치는 긍정적, 그리고 부정적 영향에 대하여
  • The perfect price – 가격 할인 문화가 지배적인 시장에서는 혁신이  불가능하다는 내용

이 책의 부제목은 ‘high cost of discount culture’ 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싼(cheap)’ 제품을 찾는다. 하지만 ‘싸다’라는 개념처럼 주관적인 개념도 이 세상에 없다. 값이 싼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고, reference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백화점에 만원에 제품을 등록해 두고, 단 한 개도 못 팔고 (혹은 안팔고), 그 똑 같은 제품을 소셜커머스나 홈쇼핑에서 50% 할인이라는 명목으로 파는 업체들을 보라. 당신은 정말 반값에 그 제품을 샀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단적인 예이지만, 지금 당장 소셜 커머스 사이트에 들어가서 찾아보라. 이런 사례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싼 제품을 비싼 가격에 등록해 놓고서 싸게 파는게 무슨 문제냐고?

할인 문화의 지나친 강조 행태는 새로운 혁신(innovation)을 저해할 뿐 아니라 제 값에 좋은 제품을 파는 것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예컨대 물을 탄 우유가 있다고 하자. 이러한 물탄 우유를 만드는 제조업자는 값을 일반 우유보다 20% 나 싸게 판다. 하지만 우유에 물을 탔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판매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점점 그 우유를 사서 마시고, 점점 그러한 소비자가 늘어났다. 이 업체처럼 물을 타서 우유를 만드는 업체들이 더 늘어났고, 우유업계에는 더 이상 100% 우유만으로 우유를 만드는 제조업체는 남지 않았다. 그러면 설사 새로운 어떤 업체가 나타나서 100% 우유만으로 맛 좋은 우유를 판다고 하더라도 가격 경쟁력이 없어서 사람들은 그 우유를 사지 않는다.

위의 케이스는 전형적으로 경제학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실제로 있겠냐고?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맥주 산업이 딱 위의 케이스이다. 우리나라 맥주는 물을 탄다. 그래서 맛이 없다. 하지만 제대로 만드는 맥주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이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 맥주는 수십년째 발전이 없고, 서서히 수입 맥주들에게 시장이 잠식당하고 있다.

나가며…

요즘 우리 주변에는 ‘할인’, ‘반값’을 좋아하는 문화가 팽배하다. 대학 등록금마저 반값으로 하고 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나는 등록금이 왜 하필 50% 할인이 되어야 하는지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할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보이지 않는 측면에서 치르고 있는 대가는 과연 없는가? 라는 점이다.

이미 많은 소상공인들이 할인점에서 누리는 소비자들의 혜택으로 인해서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치르는 또 다른 측면의 ‘비용’ 에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분배의 문제에서 이러한 현상을 접근하고 싶지는 않다. 과연 할인이라는 문화 자체가 주는 혼란은 없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

이 책은 쉬운 책은 아니다. 내 블로그의 독자들은 잘 알겠지만, 나는 리테일 산업에 관심이 많아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재미 없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당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할인 문화에 대해서 색다른 시각을 갖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볼 것을 권한다.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mbablogger.net/?p=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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