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퍼스의 주민영 기자(@ezoomin)가 얼마 전 애플의 포스트-PC(post-PC)와 마이크로소프트의 PC+ 전략에 관한 기사를 냈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기사를 마무리했었죠.
과연 PC와 태블릿은 한 몸이 되어 PC+로 진화하게 될 운명일까요, 아니면 서로 다른 폼팩터와 가격대를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포스트PC 시대로 넘어갈까요? 소비자들은 과연 노트북 따로 태블릿 따로 구입할까요, 윈도우8을 탑재한 하이브리드 제품을 선택하게 될까요? 윈도우8의 PC+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과연 조만간 애플이 터치스크린 맥북을 출시하게 될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볼까 합니다.
포스트-PC는 애플이 혁신한 소비자 컴퓨팅 패러다임
포스트-PC라는 말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사용하면서 일반화된 말입니다만, 사실은 월스트리트저널의 월트 모스버그 기자가 먼저 사용을 했었습니다. 모스버그는 포스트-PC 개념을 기존의 마이크로소프트식 컴포넌트 모델 PC에 대비한 애플식 엔드-투-엔드 모델의 디바이스로 정의했습니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웹서비스가 단단히 연결된” 아이팟의 성공을 지칭하는 용어였지요. 잡스와 모스버그가 어떤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2007년 D5 컨퍼런스에서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당신이 포스트-PC 디바이스라 부르는 것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폭발이 있습니다, 그렇죠? … 아주 더 특정 기능에 집중된, 범용이 아닌 디바이스 카테고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그 카테고리의 디바이스는 매우 혁신적으로 지속할 것이며 많이 보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There’s an explosion that’s starting to happen in what you call post-PC devices, right? … I think there’s just a category of devices that aren’t as general purpose, that are really more focused on specific functions, … And I think that category of devices is going to continue to be very innovative and we’re going to see lots of them.
2007년이면 애플이 막 아이폰과 애플 TV를 발표하고 난 시점입니다. 사람들이 포스트-PC라는 개념을 그리 쉽게 체감할 수 있던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때 애플이 생각하는 포스트-PC 개념은 아마도 애플의 역사이래 가장 진지한 전략이었을 것입니다. 애플 TV와 아이폰을 차례로 소개하고 난 스티브 잡스는 키노트의 끝에 애플컴퓨터라는 회사명에서 컴퓨터라는 말을 없앤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이 당시에는 사람들이 아직 잘 인식조차 못 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본격적인 포스트-PC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선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패드가 나오고 큰 성공을 하면서, PC 시장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면서부터였을 것입니다. 2011년 아이패드 2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스티브 잡스는 포스트-PC 개념을 총정리해줍니다.
애플 포스트-PC의 1세대는 아이팟, 2세대는 아이폰, 3세대는 아이패드이고, 모두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그러면서 끝에 이렇게 정리를 합니다.
기술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애플의 DNA에 있습니다. 기술이 인문학과 결혼하는 것, 그것이 우리 마음을 울리는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포스트-PC 디바이스에서보다 이 말이 더 잘 맞는 데가 없습니다. 이 태블릿 시장에 많은 사람이 뛰어들고 있고 차세대 PC로 이걸 바라봅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다른 회사들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단지 PC에서 했던 것처럼 성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 경험과 우리 안의 모든 직관은 그건 올바른 접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포스트-PC 디바이스란 이런 것입니다. PC보다 사용이 더 쉬워야 합니다. PC보다 더 직관적이어야 합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와 애플리케이션이 PC에서보다 더 이음새 없는 방법으로 엮여야 합니다.
It’s in Apple’s DNA that technology alone is not enough. That it’s technology married with liberal arts, married with the humanities, that yields us the result that makes our hearts sing.
And nowhere is that more true than in these post-PC devices. And a lot of folks in this tablet market are rushing in and they’re looking at this as the next PC. The hardware and the software are done by different companies. And they’re talking about speeds and feeds just like they did with PCs.
And our experience and every bone in our body says that that is not the right approach to this. That these are post-PC devices that need to be even easier to use than a PC. That need to be even more intuitive than a PC. And where the software and the hardware and the applications need to intertwine in an even more seamless way than they do on a PC.
그러니까 스티브 잡스의 포스트-PC란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특정 기능에 특화되고 사용자의 인문학적 소비 경험에 더 집중하려는 디바이스” 그리고 이 개념은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의 3연타석 홈런으로 입증을 해 보인 것이죠.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랫폼병, PC+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의 COO인 케빈 터너가 “애플이 틀렸다”고 딴죽을 걸면서, 갑자기 포스트-PC 대 PC+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었습니다. 주민영 기자의 글도 그런 맥락에서 읽히고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애플의 포스트-PC는 성공적으로 떠오르는 개념이고, 마이크로소프트의 PC+는 한번 실패한 개념입니다. 왜 그런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궤적을 보시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모스버그도 지적한바, 마이크로소프트의 PC 개념은 컴포넌트 모델입니다.
컴포넌트 모델에서는, 많은 회사가 하나의 표준 플랫폼에서 돌아가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항상 같이 완벽히 돌아가진 않지만, 작업을 끝내기는 하는 저렴한 일용품 디바이스를 생산한다.
In the component model, many companies make hardware and software that run on a standard platform, creating inexpensive commodity devices that don’t always work perfectly together, but get the job done.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 플랫폼을 모든 디바이스에 이식하는 것이 지상 과제였습니다. 이미 1999년도에 빌 게이츠가 제시한 PC+ 개념도 모든 것을 다하는 PC가 중심이고, 다른 디바이스에서도 PC에서 하던 것을 언제 어디서든 똑같이 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의 궤적을 보시죠. 태블릿PC도 있었고, PDA도 있었습니다. 처절히 실패하고 사라진 카테고리들입니다. PC+ 개념은 성공한 예가 없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태블릿이나 PDA 시장에 애플이 뛰어드는 것에 대해 항상 부정해왔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내놓게 된 것을 두고 시장을 속이려는 전술의 예로 자주 언급이 됩니다만, 저는 그것이 무슨 고도의 언론 플레이가 아니라 PC+ 개념에 대한 부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PC와 포스트-PC는 생산성과 소비성을 양분하여 공존
그럼 모두 PC를 부정하게 되고 포스트-PC 천하가 되는 걸까요? 주민영 기자도 인용했던 스티브 잡스의 트럭과 승용차 비유를 보시죠.
우리가 농업국가였을 때, 모든 차는 트럭이었습니다. 농장에는 그게 필요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차량이 도심에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승용차들이 더 보편화 되었습니다. 자동 변속기나 파워 스티어링과 같은 혁신, 그리고 트럭에선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것들이 승용차에겐 중요한 것이 되었죠. PC도 트럭과 같은 존재가 될 겁니다. 그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며 여전히 가치가 있겠지만, 훨씬 적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될 겁니다.
When we were an agrarian nation, all cars were trucks, because that’s what you needed on the farm. But as vehicles started to be used in the urban centers, cars got more popular. Innovations like automatic transmission and power steering and things that you didn’t care about in a truck as much started to become paramount in cars. … PCs are going to be like trucks. They’re still going to be around, they’re still going to have a lot of value, but they’re going to be used by one out of X people.
다시 말해, PC는 지금까지 생산성의 시대에 갇혀 있었습니다. PC는 만능 범용 기계였고, 따라서 언제나 고성능을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스펙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죠. 더 많이 싣고 힘이 좋은 트럭인 거죠. 하지만 포스트-PC는 소비성의 카테고리가 독립해 나온 것입니다. 드라이브를 즐기는 승차감이 중요한 승용차가 나온 거죠. 여기에선 중요한 요소가 경험입니다. 바로 기술과 인문학이 결합하는 지점이죠.
이 둘은 공존하게 될 것입니다. 고성능의 생산성 PC, 효율화의 소비성 포스트-PC로 각자의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 더 커질 것이냐는 예측하긴 힘듭니다만, PC가 범용이었기 때문에 잉여 자원으로 소비자가 떠안아야 했던 거품이 빠질 때까지는 조정될 것이라는 예상은 됩니다. 그리고 기술이 발전하면 태블릿과 PC의 경계가 없어질 것이라는 예측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소비성의 태블릿은 효율화를 생산성의 PC는 고성능을 지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효율화와 고성능은 수렴하지 않습니다. 평행선이죠. 물론 컴팩트한 형태는 닮아갈 수도 있겠지만.
스마트, 모바일, 플랫폼은 핵심을 빗나간 키워드 함정
그런 의미에서 서피스나 윈도 8의 전략은 맥을 전혀 잘못 짚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포스트-PC도 아니고, 그렇다고 PC+도 아닙니다. 과거의 실패를 통감하고 포스트-PC에서 힌트를 얻은 것까지는 괜찮은데, 여전히 생산성의 시대에 갇혀있습니다. 서피스는 마치 트럭을 승용차 모양으로 만들어놨는데, 승용차로 사기엔 부담스럽고 트럭으로 쓰기엔 모자라죠. 윈도 8에 터치 인터페이스도 정말 기형적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제품 포지셔닝 전략에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과거에 했던 실패를 답습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회사가 또 구글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과거 플랫폼 전략과 같은 전형적인 컴포넌트 모델이죠. 그리고 생산성의 코드에 많이 맞춰져 있습니다. 물론 그 시장에 자리를 차지할 수는 있겠지만, 포스트-PC와의 대결 구도로는 한참 부족해 보입니다. OS 점유율로 승리를 선언하는 자만함도 닮았습니다. 점유율은 그렇게 높은데 인터넷 사용량이나 앱 매출 등에선 압도적으로 열세라는 것은 미스터리가 아닙니다. 그런 범용 PC+가 필요하지 않은 소비자에게 잉여 자원으로 뿌려져 있을 뿐이죠.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분야가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취미라고 했던 TV입니다. 여기도 당연히 포스트-PC의 개념이 유효합니다. PC+의 개념으로는 이미 실패한 분야이기도 하죠. 2000년대 초부터 불붙었던 스마트홈, 디지털홈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플랫폼 천하에서 PC를 중심으로 다양한 기기에서 끊김 없는 서비스를 언제 어디서나 제공한다는 PC+의 개념은 결국 유비쿼터스 컴퓨팅과 동의어입니다. 이제 포스트-PC 시대를 맞아 TV에서도 다양한 실험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것들을 많이 놓치고 있습니다. 실패를 해봤으면 교훈을 얻어야죠.
포스트-PC의 시대. 물론 컴퓨팅 기술과 네트워크 성능, 클라우드의 발전이 이런 미래가 다가오게 했습니다만, 부싯돌이 된 것은 소비자의 경험 중심의 사상입니다. 그 경험은 좀 더 ‘퍼스널’하고 좀 더 ‘소비적’인 것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인 ’스마트’, ‘모바일’, ‘플랫폼’은 그런 의미를 전혀 담고 있지 못합니다. 핵심은 보지 못하고, 여전히 주변만 맴돌고 있습니다. 핵심을 찌르는 애플의 진짜 대적자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그때가 포스트-PC 시대의 완성이 될 것입니다.
글 : 게몽
출처 : http://bit.ly/VKrS5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