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에 나오는 코브(Cobb,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은 익스트렉터(extractor)이다. 그의 직업은 사람들을 마취시킨 후에 그 사람의 무의식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서 그들의 꿈, 열망, 비밀등을 알아내어서 나온 다음에, 그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거액을 받고 파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익스트렉터 역할 중에서 가장 어려운 고난도의 임무가 있으니, 그것은 사람들의 무의식 안쪽 깊숙히 들어가서 어떤 특정한 생각을 심어놓고 나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사람들의 무의식 깊은 곳에 있는 금고나 비밀의 장소에 어떤 생각을 깊이 인식시켜 놓고 다시 바깥 세상으로 나오는 이 행위를 ‘인셉션’ 이라고 부르며, 이렇게 인셉션이 된 사람은 마취에서 깨어난 다음에는 그냥 꿈을 꾸었다고 생각할 뿐이지만, 사실은 자기도 모르게 일정한 사고방식을 갖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내가 영화 ‘인셉션’에 대해서 이렇게 길게 설명한 이유는 ‘인셉션’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익스트렉터들의 역할이 바로 마케터들의 역할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무의식 깊숙히 있는 그들의 꿈, 열망, 비밀 등을 분석하는 것은 마케터들이 사람들의 선호, 행동, 구매패턴 등을 분석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보다 더 어려운 점은 바로 사람들의 뇌리 속에 내 브랜드의 메시지를 아주 깊숙히 아로새겨 놓는 것이다. 그렇게 특정한 메시지와 내용을 심어 놓으면서도 상대방은 잠시 꿈을 꾼 것처럼 느끼는 것은, 바로 마케터들이 소비자들에게 광고를 통해서 커뮤니케이션 아이디어를 전달하면서 소비자들이 마음을 열도록 하거나 심지어는 광고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작용과 굉장히 유사하다.
영화에서 인셉션은 사람들이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 이뤄진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이렇게 사람들이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드는 시즌은 아마도 연말연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크리스마스와 신년의 첫날을 아우르는 약 열흘 정도의 시즌 뿐 아니라, 그 한참 이전부터 사람들의 마음은 무언가 들뜨고, 꿈꾸는 듯 말랑말랑해져 있다. 이 시기야말로 마케터들에게는 감성적인 광고, 심볼릭한 광고, 따뜻한 광고 등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마케팅하기에 좋은 시즌이다.
이러한 연말시즌을 이용한 소비자 마음속의 ‘인셉션’에 가장 전통적인 사례이자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바로 코카콜라와 산타일 것이다. 서유럽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 있던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 라는 가상의 인물의 전설이 1930년대 코카콜라의 마케터들에 의해서 현대적으로 해석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래는 주로 녹색 옷을 입은 캐릭터였던 산타는 빨간 옷에 덥수룩한 흰 수염을 달게 되었고, 그렇게 붉은 색과 흰 수염이 강조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두 색상이 코카콜라의 대표 색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코카콜라는 이 유쾌하고 넉넉한 캐릭터에 콜라병을 들린 채로 수십년간 꾸준하게 크리스마스 시즌 마케팅에 이용하게 되고, 그 이미지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산타 클로스의 이미지로 고착화 된 것이다. 크리스마스라는 시즌에 새로운 아이콘을 더해서 사람들에게 인식시킴과 동시에 산타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자신의 브랜드와 핏(fit)하게 각색한 코카콜라의 마케터들은 전세계의 사람들의 머릿속에 훌륭한 인셉션을 수행했다고 할만하다.
코카콜라의 캐릭터를 이용한 연말 마케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코카콜라의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하얀색 북극곰을 기억하는가?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종종 등장하다가 이제는 더 이상 나오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꾸준히 코카콜라의 광고에 이 북극곰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 북극곰들만봐도 사람들은 코카콜라를 연상(association) 하며, 특히 하얀 눈이 내리는 연말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 심화된다.
산타와 북극곰 같은 캐릭터에 반드시 의존해야 할 필요는 없다. 크리스마스는 어디까지나 선물 시즌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TV 에는 온통 리테일 업체들의 선물 관련 광고로 가득하다. 조사 기관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미국의 전체 리테일 판매 중에서 약 20-30% 사이의 금액이 크리스마스와 뉴이어 시즌(New year’s season)에 판매되기 때문에, 리테일 업체들은 이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총력을 다한다. 타겟(Target), 월마트(Walmart)같은 저가 리테일부터, Toys R Us 나 Best Buy 같은 카테고리 킬러들도 질세라 엄청난 물량공세의 광고를 집행한다.
하지만 왠일인지 이들의 광고는 매년 바뀌기 때문에 일관성을 찾기 힘들고, 따라서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인셉션이 확실하게 이뤄지지는 않는다. 역시 크리스마스라는 시즌은 일년에 한번밖에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효율성과 효과성을 극대화하는 광고를 하기 위해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브랜드를 대변할 강력한 심볼이 필요하다. 이러한 심볼의 활용을 광고에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브랜드 중에 하나가 바로 티파니(Tiffany & Co)가 아닐까? 티파니의 하늘색 박스는 티파니를 가장 잘 나타내는 심볼이기도 하지만, 선물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참고로 Tiffany Blue는 특허로 보호받는 고유의 색상이다.) 티파니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었다고 해서 별도의 선물 박스 디자인을 제공하거나, 빨간색이나 초록색 같은 크리스마스 컬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오히려 고유의 티파니 블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북돋우며, TV광고를 통해서는 여성에게는 남성에게 이런 선물을 기대할 것을 유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남성에게는 여성에게 티파니의 보석을 선물하라는 메시지를 인셉션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은1년에 한번 뿐이다. 이 시기가 닥쳐올 때 무언가를 준비하려고 하면 늦는다. 혹은 매년 다른 마케팅 캠페인을 전개한다고 해도 효율적으로 마케팅을 전개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정한 마케팅적 실행 요소 ( marketing execution element)를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인셉션 해 두고, 연말 시즌이 되면 단순히 그 요소를 재사용하는 것 만으로도 최고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마케팅이 필요할 것이다.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mbablogger.net/?p=5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