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이 단어만큼 우리 스타트업들, IT업계 분들을 설레게 하는 단어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멋진 스타트업들의 성공스토리, 초기부터 멋지게 투자해주는 투자자들, 최고의 인재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설명하기 힘든 막연한 환상과 동경을 갖고 계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스타트업들 중에는 ‘언젠가 내가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을 해야지’라는 막연한 꿈을 갖고 계신분들이 참 많습니다.
다 좋습니다. 뭐, 저도 실리콘밸리 좋아합니다. 그런데 멋진 곳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배울 것은 배우되 한국에 있는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둥둥 떠다니지 않고, 발을 땅에 붙이고 할 일 해야죠.
작년에 정부기관 관계자께서 제게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 스타트업들을 실리콘밸리로 진출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하면 될까요? 우리나라 스타트업들을 미국의 인큐베이터에 보내서 3개월, 6개월 교육을 시키면 될까요?” 그 분께서 듣고 싶으신 대답이 아니었을 것이지만, 저는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미국의 인큐베이터에서 몇 개월 교육을 받는다고 미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정부기관에서 보내줄 수 있는 인큐베이터는 미국에서 top-tier도 아닐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한 국가에서 추천을 해줬다고 Y Combinator가 그냥 받아줄 리 없잖아요?’)
현재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 기업가들을 애매한 교육 과정에 보내느니, 오히려 학생들 혹은 예비창업자들을 교육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실리콘밸리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이 분명 있긴 있으니 그런 친구들을 보내서 ‘기업가정신’을 제고시키고, 그 친구들이 몇 년 후에 한국에서 혹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을 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더 오래걸리겠지만 더 낫지 않을까요?
이미 서비스를 하고 있는 스타트업을 몇 개월 교육시킨다고 해서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괜히 미국에서 시간 보내다가 정작 한국에서 잡을 수 있었던 기회도 놓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작년말에 실리콘밸리에서 VC로 활동하고 계신 트랜스링크의 음재훈 대표께서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실리콘밸리는 초기단계 벤처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한국이라는 홈그라운드를 초토화하지 않고 어웨이에서 승리한다? 백전백패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한번 곱씹어볼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성공하면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할 것인가는 또 다른 얘기입니다. 사실 그것도 쉽지 않죠)
그러면 많은 기관들에서 보내주는 일 주일 정도의 컨퍼런스 혹은 전시회에 대해서 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은 그냥 재충전(refresh) 차원에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기간 동안 견문을 넓히고, 더 열심히 하자고 마음 다잡고, 살짝 휴식하는 시간? 이렇게 기대수준을 낮추고 가면 오히려 더 뜻 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고, 일 주일 이내의 짧은 기간 동안에 미국 시장을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서 이후부터 미국에서 비즈니스가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과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추신: 한국 사람은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뭔가를 제대로 해보려면 차라리 빨리 현지에 가서, 거기서 엣지 있는 현지인들과 함께 시도해보는 것을 권합니다. 제가 우려한 것은, 한국에서도 실리콘밸리에서도 제대로 승부를 걸지 못하고 마음만 왔다 갔다 하면서 가장 귀중한 시간을 소요하는 것입니다.
글 : 임지훈
출처 : http://www.jimmyrim.com/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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