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은 기본적으로 환원주의다(reductionism). 말하자면 아이폰을 분해하고 그 부품을 분해하고 분자 수준으로 분해한 뒤 원자수준으로 그리고 입자수준으로 분해한다. 그렇게 분해된 입자수준에서 입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고 그렇게 이해한 이론을 바탕으로 분자수준으로 다시 부품수준으로 아이폰 수준으로 관점을 바꾸다며 보면, 아이폰이 작동하는 원리를 입자수준에서 이해한 방식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게, 환원주의에 대한 대략적인 비유다.
환원주의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이 세상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원리를 모두 알아낼 수 있다면, 빅뱅 이후 우주가 탄생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상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런 원리를 파악하고 있다면, 김태희와 비가 사귀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도 이런 근본 원리로 파악할 수 있다는 안드로메다로 가는 결론을 얻을 수도 있다. 과도한 비유지만, 이런 이유로 환원주의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환원주의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게 이 세상에 많다. 흔히 이 이야기하는 창발성이 환원주의로 설명되지 않는다. 즉 개인이 어떻게 행동할지 모두 파악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어떤 흐름이나 방향이 생기는 집단의 움직임은, 환원주의로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언젠가 이런 창발성조차도 명료한 이론으로 설명될 날이 오겠지만, 아직은 요원하다. 말하자면 과학이 많이 발달했지만, 과학만으로 비현실적인 사건이 날마다 일어나는 이 갑갑한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단 뜻이다. “사느냐 죽느냐 뭐가 정답이냐?”란 실존적인 물음을 던지는 인간 앞에서, 환원주의로 설명할 수 없는 과학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과학에서 답을 찾지 못해 좌절하는 인간은 무엇에 의지해야 할까? 미숙하긴 해도, 괴롭고 힘든 현실을 파헤쳐 나갈 힘을 주는 건, 바로 ‘인문학’이다.
“왜 살지?”란 질문에 철학, 종교, 문화를 포괄하는 인문학은 정말로 다양한 답을 내놓는다. 다만 그 답이 서로 모순적이고 이런 경우엔 이 경우가 맞고 저런 경우엔 저런 경우가 맞아서 문제일뿐이다. 예를 들자면서 누군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고 하고, 누군가 원래 선하게 태어나서 나쁘게 변한다고 말한다. 문맥에 따라서 다르다는 옹색한 변명을 붙이면서 사용하지만, 우린 아는 게 힘이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고도 한다. 말하자면 인문학이란,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답을 찾아서 공부하고 믿고 살면, 그나마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원동력이 된다는 뜻이다.
과학처럼 딱 떨어지는 원리는 아니지만, 인류가 오랫동안 축적한 삶의 지혜로 인간의 존재론적인 고민에 답을 던지고 살아가게 하는 것, 이게 바로 인문학의 힘이다. 그래서 답답한 이 시대에, 사람들은 인문학에게 길을 묻고 길을 알려달라고 하나 보다.
이 글을 쓰고 나니 스티브 잡스가 생가났다. 애플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있다고, 잡스가 말했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잡스가 이 말을 했을 때, 그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잘 았알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잡스는 자신의 제품이 단순히 돈벌이용이 아니길 바라지 않았을까?
그는 사람들이 애플 제품을 사용하면서 조금 더 인간적인 삶, 예를 들자면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이 교감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더 쉽게 채우길 바랬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잡스는 자신이 기술이라는 도로를 만들었다면, 그 길을 통해서 사람들이 삶이라는 세상으로 가는 인문학의 길과 만나길 바라지 않았을까,란 추측을 해본다.
글 : 신승환
출처 : http://www.talk-with-hani.com/archives/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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