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공학적 시청 환경에 대하여

1TV 시청 환경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스크린은 얼마나 커야 하나’, ‘얼마나 떨어져 봐야 하는가’ 등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하여 많은 결론을 내리고 글로 정리를 해왔었습니다. 이번 CES에 UHDTV가 가장 큰 키워드로 등장했죠. 그동안 내린 결론으로는 풀 HD 이상의 해상도는 TV 환경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분석의 글을 쓰기 위해 그간의 글들을 훑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자료도 더 찾아보고 고민을 더 해보니, 그간의 결론에 다소 오해도 있었고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이 필요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인간공학적 시청 환경이라는 차원에서 스크린 해상도, 사이즈, 시청 각도, 시청 거리 등에 대해 다시 한번 새롭게 정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상도 기준은 레티나 PPI(pixels per inch)

시력[visual acuity]은 각해상도[angular resolution]능력을 말합니다. 1도 범위에서 검은색/흰색 줄을 몇 쌍까지 분별할 수 있느냐는 의미입니다. 이를 CPD(cycles per degree)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이클은 검은색/흰색 줄 한 쌍을 말합니다. 즉, 픽셀로 치자면 한 사이클은 2개의 픽셀에 해당합니다. (지난 글에서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 설명드린 부분이 있습니다.)

시력의 측정은 20피트(약 6미터) 떨어진 곳에서 잽니다. 여기서 30CPD, 즉 1도당 60개의 픽셀을 구분해 낼 수 있으면 ’20/20′,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시력 1.0이 됩니다. ’20/20′의 의미는 보통 사람이 20피트에서 분별하는 것을 20피트에서 분별한다는 것으로 정상 시력의 기준입니다. 시력 측정의 한계는 ’20/10′, 즉 시력 2.0의 의미는 보통 사람이 10피트에서 분별하는 것을 20피트에서 분별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 분별할 수 있는 각해상도가 기준의 2배인 60CPD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건강한 눈의 시력은 20/16에서 20/12라고 합니다. CPD값으로 따지면 37.5에서 50까지입니다. 아이폰이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처음 소개하면서 망막의 한계가 12인치 정도 시청 거리에서 300PPI(pixels per inch)라고 했었죠. 그런데 이 기준이 잘못되었다며 477PPI가 진짜 레티나 수준이라는 주장이 있었고, 이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 쟁점은 바로 시력을 정의하는 기준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의 문제였습니다. 20/20 기준으로 보면 30CPD에 해당하고 이걸 12인치에서 본다고 가정하면 286PPI가 나옵니다. 그런데, 건강한 눈의 시력 한계인 20/12를 기준으로 보면 50CPD에 해당하는데, 이때는 477PPI가 나옵니다.

사실 가정 사항이 많아서 뭐가 옳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사람마다 시력 편차가 있는데다, 시청 거리도 딱 12인치로 고정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제 생각에는 30CPD에서 50CPD의 범위를 레티나 구간으로 정의하고, 이 범위에 적절히 들어오는 스크린을 레티나 스크린으로 분류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적정 PPI에 대한 글에서 그렸던 그래프를 아래와 같이 업그레이드를 해봤습니다.

CPD에 따른 퍼스널 스크린의 레티나 수준 PPI
CPD에 따른 퍼스널 스크린의 레티나 수준 PPI

우선 퍼스널 스크린의 시청 거리를 12인치~24인치 구간으로 정의를 했습니다. 편하게 손에 들고 보는 자세가 약 12인치(30센티미터)이고, 책상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서 손을 뻗을 수 있는 거리가 약 24인치(60센티미터)입니다. 스크린의 크기에 따라, 그리고 용도에 따라 조금씩 그 사이에서 변화가 있다고 보고 태블릿은 16인치(40센티미터), 그리고 키보드와 화면을 같이 당겨서 사용하는 노트북은 20인치(50센티미터), 그리고 데스크탑은 24인치로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편차를 ±4인치(10센티미터)로 해서 레티나 PPI 범위에 배치하였습니다.

최근에 출시되는 대부분의 디바이스는 거의 레티나 범주에 들어옵니다. 이런 추세로 보자면 아직 레티나 수준 미달인 아이패드 미니, 맥북 에어, 아이맥 등도 경제성이 허락하는 대로 레티나 업그레이드를 예고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위의 그래프에서 레티나 수준 범위를 정상 시력 범위와 건강한 눈의 시력 범위로 색깔을 나눠 봤습니다. 효율적 엔지니어링으로 보자면 정상 시력(>30CPD)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맞겠으나, 시력이 상대적으로 좋은 젊은 층을 타겟으로 하는 스크린이라면 최소한 37.5CPD 이상의 시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이제 TV 스크린도 생각해보죠.

CPD에 따른 TV 스크린의 레티나 수준 PPI
CPD에 따른 TV 스크린의 레티나 수준 PPI

TV의 시청 거리 범위는 80인치(2미터)에서 120인치(3미터)로 정의했습니다. 왜 TV 시청 거리를 이렇게 정했는지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이 범위 내에서 이번 CES에서 발표되었던 UHDTV의 대표적 모델을 배치해 봤습니다. 4K의 85인치/110인치가 적절한 레티나 수준의 TV로 판단됩니다만, 65인치 이하의 상대적으로 작은 스크린의 4K는 과한 수준의 해상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110인치 모델로 선보였던 8K는 큰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해상도가 너무 높은 수준입니다. 거의 1미터 앞에 가서 봐야 그 차이를 알 수 있는 정도입니다. UHDTV의 거품에 대해선 따로 글을 쓰려고 하니 그 때 다시 논의 하도록 하고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시야각 기준

지난 글에서 시청 각도 기준으로 보통 20도, 30도, 40도가 사용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시청 각도는 시야[field of view; FOV]라는 용어를 씁니다. 이 시야의 범위는 수평 각도와 수직 각도로 나타냅니다. 특히 수평 각도가 중요하죠. 이것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한 뚜렷한 기준은 없습니다. 다만 몇 가지 참고할 사례가 있습니다.

보통 시야 범위는 시청 몰입, 또는 현장감[sense of presence]을 기준으로 합니다. 하지만 몰입이라는 감정이 상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보통 피조사자 다수를 실험에 참가시켜 시야 범위별 몰입도에 대한 주관적 점수를 받아 참고하게 됩니다.

인간의 시야는 거의 180도라고 하죠. 하지만 특수한 설계-돔형 같은-의 스크린이 아닌 평면 스크린으로는 이 조건을 만족하게 할 수 없습니다. 참고로 1920 x 1080의 HDTV는 정상 시력 기준(30CPD)으로 시야각 30도 기준입니다.

하지만 소위 극장의 명당자리는 대략 35도~55도 시야각을 갖는 자리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아이맥스(IMAX) 설계 기준에 의하면, 최소 60도(객석 맨 뒷자리)에서 최대 120도(객석 맨 앞자리)를 목표치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연구 자료에 의하면, 몰입도는 시야 범위 20도에서 증가하기 시작하여 80도~120도 정도에서 포화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환경을 고려하여 4K, 8K가 설계되었습니다. 해상도 3840 x 2160의 4K UHDTV는 약 60도의 시야각을, 7680 x 4320의 8K는 약 100도의 시야각으로 맞춰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기준으로 시청 거리 80~120인치(2~3미터)를 고려하면, 필요한 스크린의 사이즈가 어마어마해집니다.

시야각(FOV)별 시청 거리에 따른 스크린 사이즈
시야각(FOV)별 시청 거리에 따른 스크린 사이즈

HDTV는 그렇다 치고, 4K나 8K의 경우는 100~300인치의 스크린이 필요합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얘깁니다. 그렇다고 현재 4K 주력인 85인치로 하자면 너무 멀어서 60도 시야각이 나오질 않습니다. 시야각을 맞추려면 화면 앞으로 더 다가가야죠. UHDTV의 적정 시청거리는 8K를 예로 들자면 0.75 * 스크린 수직 크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기준으로 하자면 110인치는 적정 시청거리가 40인치(약 1미터)입니다. 이게 의미가 있는 말일까요?

우선 시청 거리부터 얘기하고, 시청각과 스크린 크기에 대한 결론을 내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눈 피로를 줄이기 위해선 시청 거리는 최대한 멀리

시야각과 스크린 사이즈가 정해지면 시청 거리도 결정이 됩니다. 이 시청 거리에 맞게 PPI를 결정해 스크린의 해상도를 정해주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청 거리를 결정하는 또 다른 요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눈의 건강입니다. 시청 거리가 짧을수록 눈의 피로도가 증가합니다. 눈에 피로도가 증가하는 것은 초점을 맞추기 위해 눈 근육을 움직이기 때문이죠. 인간의 눈에는 RPV(resting point of vergence)라는 것이 있는데,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을 때 초점이 맞춰지는 거리입니다. 약 35~45인치 정도 됩니다. 이 거리보다 멀면 멀수록 사물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피로도가 줄어듭니다.

말하자면 12~24인치 범위에서 사용되는 퍼스널 스크린은 눈의 피로도를 증가시키는 요인입니다. 일하다가 가끔 먼 곳을 쳐다보라는 조언도 이런 이유에서 나오는 것이죠. TV도 시청 거리를 늘리면 늘렸지 더 줄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보통 한국 아파트 거실 구조까지 고려하자면 대략 2~3미터 정도가 가장 현실적인 시청 거리가 됩니다.

시청 거리를 멀리하려면 시야각을 줄여야

두 번째 요인은 지난 글에도 언급했던 내용입니다. 이것은 제가 제안하는 가설입니다. 바로 사선 시청에 따른 수평 왜곡입니다. 즉, TV라는 스크린이 가족 공동 시청 환경을 가정할 수 밖에 없으므로 여럿이 볼 때 스크린 중심에서 비켜난 위치에서 시청할 경우, 화면의 100% 완전한 상을 감상하기 어렵죠. 게다가 시청 거리가 너무 가까워지면, 중앙에서 보는 사람도 화면 끝의 경우엔 똑같은 왜곡 현상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번 CES에서도 나왔던 곡면 스크린을 사용하면 이 왜곡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4K 수율 맞추는 것도 어려운 사정에 곡면 스크린이 언제쯤 일반화될지 기약하기 힘드니, 일단 배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글에선 전체 수평 길이 대비로 어림잡아 계산했었습니다만, 이번엔 시청 위치로부터 화면 지점별로 얼마나 왜곡이 생기는지 계산을 해보았습니다. 위에서 8K 110인치의 적정 시청거리가 40인치라고 했는데, 이 조건으로 그림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청 위치에 따른 스크린 각 지점에서의 수평 왜곡
시청 위치에 따른 스크린 각 지점에서의 수평 왜곡

먼저 화면 중앙에서 보더라도 화면 끝에서는 왜곡률(원래 대비 실제 인지되는 수평 화면 길이)이 64%에 불과합니다. 중앙에서 40인치 떨어진 옆자리에서 시청하는 경우는 더 낮아져서 반대쪽 화면 끝의 왜곡률이 무려 41%입니다. 중앙에 앉은 사람과 비켜 앉은 사람과를 비교하자면, 중앙 대비 약 85% 정도의 화면 크기밖에는 시청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이 왜곡률을 개선하려면 시청 거리를 더 멀리 가져가면 됩니다. 그런데 시야각이 변하지 않으면, 스크린 중앙에서 끝으로의 왜곡률은 개선되지 않습니다. 항상 같은 각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멀리 가면 화면 크기도 비례해서 커집니다.) 그럼 시야각을 줄이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시야각 FOV에 따른 화면 중앙으로부터 끝으로의 왜곡률 변화 그래프는 다음과 같습니다.

시야각(FOV)에 따른 화면 중앙으로부터의 수평 왜곡률
시야각(FOV)에 따른 화면 중앙으로부터의 수평 왜곡률

화면 중앙에서 있다는 것은 가장 좋은 조건에서 시청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가장 좋은 조건에서 화면 끝 지점의 왜곡률 기준을 90% 정도로 가져간다고 정의해 보겠습니다. 이 조건을 만족하는 FOV는 50도 이하가 됩니다.

그럼 중앙에서 1미터(40인치) 정도 옆으로 비켜 앉은 조건도 살펴 보겠습니다.

시야각(FOV)에 따른 중앙에서 비켜난 위치로부터의 수평 왜곡률
시야각(FOV)에 따른 중앙에서 비켜난 위치로부터의 수평 왜곡률

중앙으로부터의 왜곡률과는 달리, 옆으로 비켜난 위치에서의 왜곡률은 시야각이 줄이는 것 뿐 아니라, 스크린 사이즈를 늘리는 것으로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이번엔 화면 반대쪽 끝의 왜곡률 커트 라인을 80%로 가져가겠습니다. 중앙보다는 안 좋은 조건의 시청 환경이므로 감안을 해야겠죠. 이 조건에 만족하는 시야각도 역시 50도 이하로 아까의 경우와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스크린 사이즈를 늘리는 것, 즉 특정 시야각에서 시청 거리를 더 뒤로 가져가는 것도 왜곡률 향상에 도움을 줍니다. 위 그래프에서 왜곡률을 80% 이상 가져가려면, 시야각 30도에서는 스크린이 51인치, 40도에서는 87인치, 50도에서는 151인치 이상이 되도록 시청 거리를 더 뒤로 가져가면 됩니다.

자, 이를 위해서 위에서 그렸던 그래프 “시야각(FOV)별 시청 거리에 따른 스크린 사이즈”를 FOV=30~50도로 다시 구성해 보겠습니다.

수평왜곡률 조건을 만족하기 위한 시야각(FOV)별 시청 거리와 스크린 사이즈
수평왜곡률 조건을 만족하기 위한 시야각(FOV)별 시청 거리와 스크린 사이즈

원래 제가 제시했던 시청 거리 2~3미터(80~120인치)의 조건을 같이 보시죠. 시야각 30도 기준에서는 스크린 사이즈 51~74인치가 거의 정확히 해당 시청 거리를 커버하고 있습니다. 시야각 40도에서는 시청거리 2.5미터(100인치) 이상이고, 시야각 50도에서는 시청거리 3.5미터(140인치) 이상입니다.

그런데 시야각 50도에서 스크린 사이즈가 151인치 이상이 되어야하므로 현실적으로 경제성의 문제가 있지요. 대략 현재 나오는 모델들을 기준으로 보면 시야각 30도에 55인치, 65인치, 75인치가 가장 현실적인 사이즈가 되겠습니다. 시야각 40도에선 이번 CES에서 많이 나왔던 85인치, 110인치가 (경제성을 무시하면) 가장 적당한 크기의 모델이 되겠습니다.

다만, 위 조건들은 가설일 뿐입니다. 역시 어떤 근거로 사용을 하려면, 일반 시청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해봐야겠죠.

다시 해상도 문제로

아직 안 끝났습니다. 시야각이 정해졌다는 것은 최종 해상도를 결정할 수 있는 팩터가 산출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1도당 픽셀이 몇인가는 이미 결정(CPD)이 되어 있으니, 그 픽셀을 시야각만큼 깔아주면 스크린의 최종 해상도가 됩니다.

시야각(FOV)별 적정 해상도
시야각(FOV)별 적정 해상도

그런데 당초에 시야각 30도는 HDTV의 설계 기준이었습니다. 바로 해상도 1920 x 1080의 시스템 기준과 같습니다. 시야각 40도 기준은 TV 쪽에선 별로 일반화되지 못한 쿼드(Quad) HD, 2560 x 1440 기준이 됩니다. 시야각 50도는 다소 높은 CPD에 치우쳐 있기는 하나 4K 울트라(Ultra) HD인 3840 x 2160 기준이 되겠습니다.

문제가 좀 있죠? HDTV는 현재의 기술이고, 쿼드 HD는 HD에 비해 크게 차별화가 안 되고, 4K는 최소한 150인치 이상의 스크린이 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시야각이 50도 이하가 되어야 한다니, 그렇다면 UHDTV가 주장하는 시야각 100도의 극장 수준의 박진감 넘치는 TV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글이 제법 길어졌으니 이 문제는 조금 있다가 올해 CES의 키워드인 4K에 대한 비평으로 다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글 : 게몽
출처 : http://bit.ly/11u4C3y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