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새로운 결심[resolution]을 합니다. 오래가지 못하죠. 항상 새해 결심은 그렇게 실패하고 맙니다. 말장난입니다만, 새해 CES의 가장 큰 화두도 해상도[resolution]인 것 같습니다. UHDTV라 불리는 HD 4배 해상도의 4K 얘깁니다. TV의 새해 결심[해상도], 성공할까요.
작년 CES에선 ‘스마트 TV’ 마케팅이 어마어마했죠. 마치 TV에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라도 할 듯, 모두 TV에 ‘스마트’를 외쳐대던 한 해였죠. 그런데 인터넷에 연결되는 TV 사용자의 60%는 비디오 OTT 서비스를 사용하고, 나머지 기능들의 사용량은 미미합니다. 도대체 그 뛰어난 ‘스마트’한 구석은 어디에 있는 거죠?
아, 그리고 그 스타일리쉬까지한 멋진 안경을 쓰고 본다던 ’3D’ 어디 갔습니까? 사실 최첨단 3D TV라고 막 제품을 들고 나왔을 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몇십 년 전이나 똑같은, 뭘 써야만 볼 수 있는 그 3D를 최첨단이라고 들고 나오다니. 소비자들이 3D를 안 사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인 줄 정말 모르셨을까.
마케팅 허풍쟁이거나, 정말로 독자적인 비전이 없어서 업계가 똘똘 뭉쳐 의싸의쌰 하는 것이 거나.
자, 그럼 올해의 화두로 넘어가 보죠. 4K. 넘어가기 전에, 우선 아래 링크의 글을 찬찬히 읽어주십시오. TV 시청 환경의 인간공학적 제약 사항에 대해 정리를 해놓았습니다.
[ 인간공학적 시청 환경에 대하여 ]
미리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4K는 3D나 스마트 TV와 다를 것 없습니다. 소비자 니즈와 무관한 마케팅 허풍입니다. 왜냐하면, 4K는 명백한 고비용의 잉여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풀 HD(1,920 x 1,080) 4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해상도(3,840 x 2,160). 주력 스크린 사이즈도 실로 엄청난 85인치. 초당 프레임수 120Hz. 컬러 데이터 포맷의 개선으로 더 사실적인 컬러 표현. 5.1 채널이 우스운 10.2~22.2 채널의 입체적 음향! 마치 극장을 집안에 옮겨 놓은 것과 같은 효과!
여기까지가 커뮤니케이션 포인트이고, 그 뒤에 감춰진 진실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죠.
우선 경제성과 타겟의 문제. 놀라운 가격, 4천만 원! 3D도 이렇진 않았습니다. 스마트 TV도 아무 문제 없었죠. 해상도와 사이즈를 건드리니 이렇게 됩니다. 그게 사실 TV 비용의 핵심이니까.
이 TV의 타겟 소비자층은 누구일까요? 연봉 4천만 원 직장인이 설마 눈독 들이진 않겠죠. 40대 이상의 고소득자에 적어도 30~40평대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아닐겁니다.
4천만원짜리 타겟이 무슨 문제냐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고가품을 누가 사느냐를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고, 그 고가품이 그 타겟에게 정말 맞는 제품이냐는 말씀입니다. 다음 얘기를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이 타겟의 가정 사항이 2가지가 있거든요.
- 시력 1.0 이하의 상대적 노안 계층일 가능성이 많다. 각해상도 기준의 상한은 30CPD.
- 더 넓은 시청 환경일 가능성이 많다. 시청 거리는 최소 3미터 이상.
그럼 다음 얘기를 해보죠. 4K 85인치 TV의 시야각은 60도입니다. 이때, 시력 30CPD 기준의 적정 시청 거리는 64인치, 약 1.6미터입니다. 정말 이 정도 거리에서 보도록 TV를 설치할 집이 있을까요? 위 사진처럼요. 집이 그렇게 넓은데? 그렇다고 뒤로 물러나면 4K라는 해상도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85인치면 3~3.5미터 시청 거리에서 해상도는 HDTV면 충분합니다. 게다가 시력이 1.0 이하라면 85인치에 2~3미터라도 UHDTV라는 해상도는 그냥 잉여 자원일 뿐입니다.
어쨌든 고해상도의 값어치를 느끼려면 1.6미터로 바짝 당겨 앉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정도 거리에서 정중앙으로부터 85인치 TV를 보면 화면 끝쪽의 수평 왜곡률은 87%, 중앙으로부터 옆에 1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또 한 명이 보고 있다면 이 위치로부터 반대쪽 화면 끝쪽의 수평 왜곡률은 64%입니다. 상당히 왜곡된 화면을 보게 됩니다.
시야각 60~120도의 아이맥스 극장 같은 경험을 주겠다는 의도인데, 시야각은 60도로 어떻게 맞췄으나 평면 스크린의 가장자리 왜곡은 극복할 수가 없죠. 그래서 곡면 스크린이 필요합니다. 실제 아이맥스도 곡면으로 설계되어 있죠. 이번 CES에서도 삼성과 LG가 나란히 약속이라도 한 듯 곡면 OLED TV를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곡면 스크린은 아직 기술이 성숙하지도 않았고, 보여주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전시를 강행했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아무튼, 현재의 조건으론 수평 왜곡률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왜곡률을 줄이려고 시청 거리를 멀리하면 해상도가 뭉개지니 4K라는 스펙이 무색해지고, 가까이 가자니 좀 불편하고, 진퇴양난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다르니, 실제 소비자의 평가를 두고 볼 일입니다.
결국, 왜 이런 기능적 무리수를 두었을까요. 극장 경험이라는 그럴듯한 커뮤니케이션 키워드가 있습니다. 현장감이나 사실감은 TV를 홍보하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런데 정말 극장 경험이라는 것이 홈 환경에 어울릴까요?
제가 생각하는 극장 경험은 감각적 극대화를 도모합니다. 말 그대로 현장감과 사실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설계를 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흥분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그런데 돈을 주고도 즐긴다는 그런 자극적 감정은 일시적인 겁니다. 집에서의 TV는 일상적인 겁니다. 내용도 그리 자극적 시청각을 요하지 않습니다. 뉴스도 보고, 드라마도 보고, 무한도전도 봅니다. 그런 것들이 과연 극장 같은 현장감이나 사실감을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일까요? 물론 가끔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그렇겠죠. 그런 감각적 극대화를 위해 스크린 앞에 바짝 앉고 무려 10.1~22.2 채널의 스피커 시스템을 온 거실 구석구석 설치를 해야 할까요?
그런 감각적 시청 환경은 피로도를 증가시킬 뿐입니다. 온종일 극장에서 살거나 놀이 공원에만 있을 순 없죠. 쓰러집니다. 집에서 극장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마케팅에 소비자가 넘어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그 멋진 해상도를 확인하는 때는, 제품을 구입하고 들뜬 마음에 제일 먼저 화면 앞에 다가가 촘촘한 픽셀 모양에 감탄할 때뿐일 겁니다. 하루만 지나면 적정 시청 거리의 두 배나 떨어진 3미터 뒤 소파에 누워, 무한도전에서 싸이가 미국 공연한 얘기에만 폭 빠져 있겠죠. 도대체 해상도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UHDTV 컨텐트가 없다는 얘기, 데이터량이 커져서 트래픽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소비자의 니즈와 동떨어진 얘긴데, 그걸 어떻게 운영할지를 걱정하는 단계까지 과연 도달하게 될까요?
TV가 매년 새해 결심을 하는데, 잘 안 풀렸죠. 3D도 그랬고, 스마트 TV도 그랬고. 올해는 진짜 결심[resolution]을 가져왔는데, 그리 잘 될 것 같지 않습니다.
글 : 게몽
출처 : http://bit.ly/TWxn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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