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니게 창업 5년차가 됐다. 정말 솔직히 본의는 아니였다. 그래도 오늘 창업 관한 생각을 좀 풀어볼까한다. 세상 온갖 미사여구를 붙이면 창업에 대해서 거창하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창업은 딱 세 가지 과정으로 요약된다고 본다.
- 아이디어를 만든다
- 만들어진 아이디어를 실제로 만든다
- 성공($$)이나 실패(ㅠㅠ)한다. 경우에 따라, 다시 아이디어를 만든다(goto 1)
그래. 창업은 별게 아니다.
‘아이디어를 만든다’고 표현했지만, 고민해서 나온 결과물일수도 있고, 누군가 알려준 것이기도, 혹은 샤워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 것일수도 있다. 혼자, 둘이나 셋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면 아이디어가 하나 둘 정도 기본이고, 어쩌면 노트에 가득 채울 정도로 마구 생각날지도 모른다. 별 생각 없이 그냥 지나치면 하나도 생각나지 않겠지만. 머리를 맞대서 ‘우리 아이디어를 내보자’라고 해서 나온 아이디어도 딱히 정말 좋을지는 잘 모르겠다. 경험상 보통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사람들을 보면 – 그게 별게 아니다 싶은데도 – 주변사람들에게 자기가 생각해낸 것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한다. 또 일상에서 늘 하는 일 속에서도 불편과 틈새를 발견하고 개선할 부분을 찾아낸다. 이건 정말 큰 재능이라고 본다.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서비스를 만든다고 아이디어를 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했겠나? 몇 명이나 ‘대박인데’라고 생각했겠나? 성공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사실 자기도 예전에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고, 사실 잘 될줄 알았다고 인정(!)하는 경우는 많지만.
만드는 과정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 비해서 좀 더 어렵고 좀 더 중요하다. 왜 그럴까? 아이디어는, 진짜 그게 멋진 생각이라면, 다른 누군가도 같은 생각을 ‘이미’ 했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보통 백 명에서 만 명쯤 같은 생각을 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누군가는 아이디어를 실제로 만들어 성공하고, 누군가는 그냥 생각만한다. 성공하려면 실제 만들어야 하니까 실행할 능력과 용기, 자금이 있어야 하고 – 팀도 모아야 하고 – 잡다한 업무들이 따라 붙는데다 – 세부적인 정책도 짜야 하고 – 홍보도 해야하고 – 혼자할게 아니면 팀원 사이에 의견도 조율해야 한다. 그래서 이 과정이 어렵고 중요한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보다 핵심적으인 부분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1단계(아이디어)에 비해서 2단계(현실화)에 드는 물리적인 시간이 아주 상당히 길다. 아이디어는 1시간만에 내더라도 만드는데 일주일, 한달, 일년 이상이 걸린다. 이 과정 동안 누군가 같은 아이디어로 성공해버릴지도 모르고, 기껏 만들어 놓은 팀 사이에 의견 충돌이 날지도, 버틸 자금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사소한 의사과정에 실수가 더해져서 프로젝트는 산으로 가고 있을지 모르고, 팀을 실컷 모아서 세 달 정도 했더니 팀원들 중 하나가 능력이 과하게 부족해서 빼자니 섭섭해할 것 같고, 같이 하자니 답이 안나오고, 이렇게 열거하기도 무수히 많은 변수들이 기간(t)과 팀원수(n)의 제곱에 곱만큼 생겨난다.
그럼에도 많은 어려움을 뚫고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켰다. 박수 짝짝! 성공과 실패는 아이디어가 좋고 ‘잘’ 만들었다는 가정을 한다면 이제 성공여부는 ‘운’에 좌우된다. 합리적으로 뭔가 설명하는거 같다가 갑자기 ‘운’이라니… 그런데 성공한 사람이 잡지랑 인터뷰해서 나온 기사 말고, 사석에서 물어보면 비슷한 대답을 종종 듣게 된다. 다시 말하면, 만든다고, 잘한다고, 다 성공하는게 아니다. (물론 구조적인, 사회적인 변수도 있다. 그러니까 S대 – 서울대나 스탠포드- 나오면 좋은 회사만 들어가는게 아니라, 창업에서 성공할 확률도 더 높다. 불평등해보이지만 사실 이게 평등한거지)
아이디어가 너무 안좋았거나, 만들긴 했는데 잘못만들었으면 애초에 능력이 없었던거지만 그 경우를 포함해서, 두 가지(아이디어+실행능력)가 잘됐다고 하더라도 성공하는건 쉽지 않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운’을 믿어보자가 아니라, 열심히 잘했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란거. 그러니까 잘못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알고 대비는 어떤 경우에라도 필요하단 것이다. 이해 관계, 경제적인 문제가 당면하게 되면 다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겠지만,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본인 멘탈 문제가 중요하다. 이때 ‘운’의 위력은 성공 뿐 아니라 실패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운이 없어서 좋은 팀을 못 만났다’, ‘운이 없어서 너무 앞서간 탓에 사람들이 별로 필요없는걸 미리 만들었다’ 등등의 방식으로 본인 스스로에게 ‘운’에 더해서 위로를 하는거다. 그리고 여력만 있다면 내가 ‘운이 없었던’ 부분을 보충해서 다시 아이디어를 내고 – 다시 만들고 – 다시 도전하면 된다. 시작할 때도 별게 아니였는데 뭐. 로또 1등 당첨을 높이는 방법 중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딱 한 가지는 로또 복권을 많이 사는 것이다. 성공을 위해서 당신이 선택한게 로또가 아니라, 창업이라면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반복’하기에 더해서 위 두 가지 과정(좋은 아이디어와 실제로 만들 능력)이 필요하다는 차이만 있는거고. (물론 이 과정에서 좋은 팀원을 만나고 신뢰를 맺는 것은 정말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성공에도, 실패에도 운이 필요하다. 요약하자면 창업을 한다면 실패 속에서도 다시 도전해볼 수 있는 수준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필요한데, 이것도 분명한 능력이다. 또 자신이 이룬 결과물에 대해 너무 집착할 필요도 없다. 보통 아예 실패한게 아니라 적당한 성공을 거뒀을 때 집착하게 되는데, 오히려 그러다 수렁에 빠지기도 하니까 주의가 필요하다. 창업해서 모든 구성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으샤으샤해서 몇일 밤을 세어가며 일만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고 일어났더니 성공을 해버렸네’와 같은 멋진 미래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일은 현실에서 잘 안 일어난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창업은 별게 아닌데 잘 생각해보고 창업했으면 좋겠다.
멋진 아이디어를 내는걸 무시하는건 아니지만.. 그건 시간으로 보면 길게봐도 전체 기간의 1/10 정도이다. 좀 더 멀리 – 길게 봐야한다. 대학생이거나 아직 젊다면 정말 좋은 사람들과 창업해서 – 노력하고 – 실패하더라도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면(다시 말해 한 사이클을 제대로 돌려볼 수 있다면), 그것만해도 다른 친구들이 평범하게 회사들어가서 배울 몇년치의 일을 압축해서 배울 수는 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알텐데 이등병 때에는 누군가 시킨 것만 눈에 보이고 – 심지어 고참이 하는 말도 잘 안들리고 – 한마디로 어리버리해진다. 대부분 다 그렇고, 오히려 더 심한 애들 중에는 사회에선 의외로 똑똑하고 엘리트였던 친구들이 많다. 시간이 좀 흘러 일병쯤 되면 대략의 권력관계가 눈에 들어오고. 병장 쯤 되면 훨씬 더 많은 구조, 관계, 틈이 눈에 들어오며 때론 불필요한 것까지 시시콜콜 알게 된다. 경험, 시간, 지위가 만드는 변화이다. 시야가 바뀐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처음 들어가면 딱 그만큼만 보이지만, 창업을 했고 꽤 많은 도전(뿐 아니라 자잘한 일들, 접대자리, 수많은 미팅)을 이끌어왔다면 조직 안의 관계들이 더 넓게 보인다. 그게 말로, 글로 다 설명할 수 없더라도 말이다. 대리가 보기엔 뭔가 잘하는게 하나도 없고 월급만 많이 받아가는 것 같은 부장에게 회사가 굳이 많은 월급을 주는 것도 이런 저런 경험이 쌓여있고, 이를 통해 넓은 시야를 가지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은 짧은 시간에 얻을수도 있지만, 경험은 경험하지 못하면 배울 수 없다. 창업은 이 과정을 훨씬 압축적일 뿐 아니라,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다.
끝으로 꼭 하고 싶은 당부만 하고 끝내자. 하나는 여기가 기업가 정신이 살아 있는 ‘미국’이 아니란 것이다. 창업을 했고 – 실제로 법인까지 만드는 과정을 거쳤고 – 급여를 주겠다고 누군가를 고용까지 했다면. 일은 이미 상당히 커진 것이다. 배수의 진은 내가 굳이 안쳐도 이쯤이면 자동으로 펼쳐져있다. 무언가 잘못되면 당연히 법률적인 책임도 져야하고. 실패가 미국에서는 모르겠는데, 한국에서는 재기불능의 동의어로 종종 사용되기도 한다. 모아놓은 돈이 많거나 부모님이 잘 살거나하면 괜찮다. 그게 아니라면 실패했을 때 얻을 데미지는 처음 예측했던 것(‘안되면 다른 회사 들어가서 월급타서 매꿔야지’ 정도?) 이상일 것이다. 일을 키운 것에 비례해서 복구가 안될 수도 있다. 특히 고정지출(대표적으로 급여와 임대료)은 처음엔 아무것도 아닌 것 같겠지만, 이 지출은 당신이 창업을 한 이후 극단적인 방법을 쓰기 전까지 줄지 않고 점점 커지기만 하는 항목이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부담 또한 점점 커진다(따라서 고정비용을 낮추려는 노력은 계속해야한다. 싸게 사람 쓰란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목적은 아이디어를 빨리 잘 현실화하는거지. 회사를 안 망하고 계속 운영하는게 아니니까. 오래 버티면 사회에는 공헌하긴한다). 다른 것 하나는 꼭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는걸 기억하면 좋겠다. 그럴 듯한 사무실과 법인, 사업자등록증, 4대보험 따위가 꼭 필요한건 아니란거. 미국 성공스토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차고(garage)’는 독립적인 사무공간에 관한 것이 아니라, 단지 집 한켠에서 시작한 것 뿐이다. 우리나라 집에는 차고가 없는게 문제일 뿐. 그리고 시작할거라면 (이건 우리도 잘하진 못했던거지만) 반드시 투자까지 포함해서 한 과정 전체를 거쳐보도록하자. 결국은 성공이든, 사람을 뽑는 일이든 혼자서만 할 수는 없는데 – 투자는 돈도 중요하지만 인맥을 넓히는데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돈 가지고 있는 아저씨들은 (비록 그 돈이 그 아저씨 자기 돈은 아닌 경우가 많지만) 돈을 무기로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뛰어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직업이 그거니까. 그래서 그 아저씨들의 자산은 돈이라기보다 인맥인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창업은 별게 아닌데 잘 생각해보고 창업했으면 좋겠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지만, 창업까진 누구나 할 수 있다쳐도, 창업해서 성공하는 일은 7급 공무원되거나 혹은 대기업 취직하는 것보다는 훨씬 확률적으로 어려운 일은 분명하다.
아무튼 누군가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되고, ‘시간이 흘러서는 그 사람 그때 그런 글도 쓰더니 이제 정말 성공했구나’라고 다시 보여지도록 나도 열심히하고 있다. 이상!
글 : 김봉간
출처 : http://bklove.info/?p=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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