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주역에서 괘를 뽑듯이, ‘주역강의’라는 책에서 손에 잡히는 페이지를 찾아서 읽는다. 마치 신년 운세풀이처럼 한 해를 어떤 마음 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 키워드를 뽑아 보려는 이유다. 새해가 되고 며칠이 지나고 나서, 주역강의를 펼쳤다. 펼친 페이지에 나온 괘는 이(頤, 턱의 원리)였다. 이(頤)에 대한 ‘주역강의’의 해설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속세에서 도를 찾는 이(頤,턱의 원리)의 길을 추구하면 그 끝이 길하다.
관의 도를 먼저 깨달아 이(頤)의 도에 이르러야
스스로 언행을 일치시킬 수 있다.
이(頤)의 도는 위턱과 아래턱이 서로 정확하게 맞아 들어갈 때 발현된다.
욕심으로 판단력이 흐려지니 영적인 능력이 사라지고,
위와 아래가 맞지 않으니 흉하다.
이상과 경륜이 현실에 맞지 않는 고관이 정치를 하는 것은
턱이 이마에 있는 꼴이니 흉하다.
마지막까지 이(頤)의 세계에 이르지 못하니 흉하고,
지혜를 쓰지 못하니 유익함이 없다.
만인을 위한 순수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듯
집요하고 독단적으로 이(頤)를 추구해도 길하며 허물이 없다.
자신의 경륜이 시류에 맞지 않는다면 은거하는 것이 길하고
큰 도전은 불가하다.
이(頤)의 경륜을 펼칠 인연이 도래하면 위함한 도전을 해도 길하다.…
(저자의 해석을 요약하자면) 주역에서 말하는 이(頤)는 다분히 속세적인 개념의 도다. 이에 반해 도는 탈속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頤)와 도는 모두 같은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역에서는 속세를 사는 사람의 도를 이야기하면서 이(頤)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뭘까?
턱은 개인의 생존을 위해서 꼭 필요한 기관이다. 턱이 위와 아래가 맞지 않으면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 즉 모든 게 조화를 이뤄야 작동하는 기관이다. 주역에서 말하는 도는 바로 조화를 이루는 턱처럼 발현되는 것이다. 나와 너, 형이상학적인 깨달음과 형이학적인 현실 생활이 조화. 이런 조화를 설명하는 데 턱만큼 좋은 비유가 어디 있을까?
도란 무엇일까? 도를 닦는다고 하면서 가족을 내팽개치고 홀로 산중에 틀어박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진실로 도를 모르는 소치다. 자신의 가야 할 길을 정확히 알고, 가족을 천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부양하며, 자기 분야에서 최고를 추구하는 사람이 진정한 도인이다.
‘주역강의’에서 발췌 요약
이 괘를 다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주역의 심오함을 느꼈다. 이 괘가 나온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올해를 살아가는데 확실한 지침이 될 것 같다.
글 : 신승환
출처 : http://www.talk-with-hani.com/archives/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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