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UHDTV에 대한 비판을 했었습니다. UHDTV의 개념은 극장 수준의 경험을 댁내에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극장 경험을 위한 현장감, 사실감의 표현력은 결국, ‘몰입’ 환경을 얼마나 잘 만들어 주느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이를 위해 디스플레이가 갖추어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시야각[field of view]과 해상도[resolution]입니다. 그래서 UHDTV는 시야각을 60도, 100도로, 해상도를 4K, 8K로 늘렸습니다. 하지만 TV 비용면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니, 경제성은 달나라 얘기가 돼버렸습니다. 몰입을 위해 TV 사이즈를 늘리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다른 대안이 필요합니다.
사실, 몰입을 위한 가장 큰 결정 요인은 시야각입니다. 해상도는 시야각을 넓혀줘야 하므로 덩달아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시야각을 얼마로 해야 제대로 ‘몰입’이 되는 것일까요.
일단 정면만 바라보고 있다는 전제로 정답은 180도입니다. 그런데 머리가 좌우로 돌아가는 상황을 가정하면 정말 사실적인 시야각은 360도입니다. 하지만 일단 영화에서 카메라가 적절한 몰입 타이밍에 카메라 앵글을 돌려준다고 생각하고 그냥 180도 시야각만 생각해 봅시다.
지난 글에서도 밝혔듯이, 아이맥스(IMAX) 극장의 설계 목표 기준이 최대 120도(맨 앞자리)입니다. 하지만 평면 스크린은 화면 가장자리로 갈수록 왜곡이 심해집니다. 그래서 아이맥스는 스크린에 굴곡이 있습니다. 아이맥스의 다른 버전으로 옴니맥스(OMNIMAX)라는 것도 있는데, 이건 스크린을 돔형으로 만들어 시야각을 어느 자리건 평균 180도를 만들어줍니다.
TV에서도 이런 굴곡 스크린의 시도가 있습니다. 이번 CES에서 삼성과 LG가 선보인 굴곡 OLED TV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아직 기술도 그렇고 경제성도 그렇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논란이 많습니다. 그냥 평면인 UHDTV도 비경제성의 문제가 있는데, 85인치, 110인치나 되는 스크린을 OLED에 굴곡으로 만들어 내놓는다면, 그게 과연 얼마짜리가 될까요. 비현실적인 얘깁니다.
그런데 이번 CES 삼성 키노트 행사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아주 매력적인 컨셉을 선보였습니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의 일루미룸(IllumiRoom)이라는 프로젝트입니다.
엑스박스(XBOX) 키넥트를 통해 방의 구조와 생김새를 캡처하여 프로젝터로 TV 화면의 확장된 이미지를 벽면에 연동하여 뿌려주는 기술입니다. 물론 벽면에 뿌려지는 이미지가 TV 화면처럼 정확한 표현력을 전달해주진 않겠죠. 하지만 포커스해야 할 화면은 중앙에 몰려있으면 되지, 주변의 아웃 포커스 부분까지 세세한 라인을 표현해주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몰입은 정확도가 아니라 무드, 경험이죠. 그런 의미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실험이 효율적인 측면에서 UHDTV보다 훨씬 더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설마 이 설비를 위한 추가적인 비용이 4천만원까진 아닐 테니까요.
TV 스크린에서의 몰입 환경을 가만 생각하다 보면, 이게 정말 TV 스크린에 맞는 얘기일까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TV는 아무래도 가족 공동의 스크린이고, 몰입은 극히 개인화된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스크린의 추세는 점점 개인화되어 갑니다. 이제 TV도 TV 스크린이 아닌 다른 퍼스널 스크린을 통해 온디멘드로 시청을 하는 시대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20대의 극장 관람 비율도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하지요.
이런 추세에, 몰입 환경의 방향을 굳이 TV로 고집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상용화되어 있는 예가 있습니다.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ead-mounted display; HMD)가 대표적입니다. 최근 출시된 소니의 HMZ-T2라는 제품은 양안에 각각 720p의 OLED 디스플레이를 장착하여, 시야각 45도, 시청거리 20미터, 디스플레이 750인치의 시청 효과를 제공합니다. (45도 시야각에 720p 해상도는 문제가 좀 있습니다. 720p의 시야각은 훨씬 좁은데 이걸 억지로 벌려놨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럼 해상도 문제가 생기죠. 자세한 검증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119만 원이라는 소비자가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몰입을 위한 효과 측면에선 UHDTV의 비용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HMD에 자이로스코프를 달고 고개를 돌리면 화면을 고개에 따라 돌아가게 해주는 겁니다. 그럼 진짜 현장감이 극대화되겠죠. 서두에 얘기했던 고개 돌림에 반응하는 360도 시야각이 확보되는 셈이죠.
물론 증강 현실 솔루션엔 이미 이런 시도들이 많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증강 현실이 아니라, 영화 컨텐트도 그런 식으로 제공되면 몰입도가 정말 높아지겠죠. 컨디션 원(Condition One)의 솔루션이 그런 종류의 것입니다. 비디오를 좁은 시야각으로 고정된 하나의 앵글로 찍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시야각으로 찍은 것을 편집하고 재생하는 솔루션입니다. 데모 비디오를 아이패드 앱으로 제공 중인데, 비디오 재생중에 아이패드를 이리저리 움직이면, 그 움직임에 따라 앵글을 바꾼 화면을 보여줍니다. 마치 시선을 쫓아가듯 말입니다.
예를 들어 HMD에 컨디션 원의 솔루션이 들어가 있다면, 좀비 영화를 보다가 오른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보면 좀비가 다가 오는 게 보이는 거죠. (으~)
결국 UMDTV가 지향하는 몰입 경험은 그저 값비싼 빅스크린을 만드는 데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게 제가 말하고 싶은 요점입니다.
글 : 게몽
출처 : http://bit.ly/V914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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