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테크크런치에서 읽었던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있다. 전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신뢰하는 정보의 원천인 위키피디아를 만든 회사 위키미디어 파운데이션(Wikimedia Foundation)이 단 9일만에 120만명으로부터 무려 $25 million (약 280억원)의 기부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2011년에는 $20 million을 모으는 데 46일이 걸렸다고 하니,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오직 순수한 기부액으로만 이렇게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운데, 재미있었던 것은 이 기부 캠페인을 다섯 개의 영어권 나라 – 미국, 캐나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 에서만 벌였다는 것이다. 285개의 언어로 쓰여져 있고, 매달 세계 4억 7천 5백만명의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인데, 왜 위 다섯 개의 나라에서만 캠페인을 했을까? 위키피디아에서 영어로 된 정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이 다섯개 영미권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기부를 잘 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번 캠페인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작년 캠페인에 참여해서 1년동안 매달 일정액을 기부했었다. 사실 위키피디아가 나에게 주는 가치를 생각하면 너무 미미한 액수였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살면서 바뀐 것 중 하나가, 이렇게 무형의 가치에 돈을 기꺼이 지불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뭔가 내가 쓰는 것에 대해 가치를 느끼면,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하고 싶어진다. 예전에 크리스마스에 에버노트에 찾아가서 와인을 선물했던 일처럼. 전에는 파일 공유 사이트에서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구해서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드라마나 영화도 그런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해서 무료로 보곤 했는데, 지금은 넷플릭스와 훌루, 그리고 아마존 인스턴트 비디오를 이용하고 있고, 이 셋 모두 월정액이나 건당 요금을 내며 쓰고 있다. 지금도 마음 먹으면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음악을 공짜로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안쓰고 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첫째, 주변 사람들이 다들 돈을 내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 있을 때나 회사에서 일할 때나, 항상 듣는 말은 어떤 소프트웨어를 얼마에 샀다든지, 음악을 사서 듣고 있다든지,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아이튠스에서 구입했거나 넷플릭스에서 보고 있다든지 하는 이야기이다. 파일 공유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해서 쓰고 있거나 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런 것은 ‘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서비스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는’ 팁 문화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미국에 처음 와서 참 귀찮게 느꼈던 것 중 하나가 팁 문화이다 (미국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불평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음식을 먹고 난 후 계산할 때, 발레 파킹을 하고 나서 차 문을 열어줄 때, 세차 하고 나서 키를 넘겨 받을 때, 호텔에서 룸서비스를 시켰을 때, 아니면 심지어 미용실에서 머리를 깍고 나서도 항상 팁을 더해 준다. 안줘도 상관은 없지만, 상대방이 기대한다는 것을 알면서 무시하면 웬지 꺼림직하고 ‘깍쟁이 아시안’ 소리를 들을까봐 팁을 항상 챙기는 편이다. 이제 익숙해지고 나니, 괜찮은 관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음식값을 다 내고 굳이 왜 또 팁을 얹어 줘야 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식당에서는 그 팁을 포함해야만 수익이 나기 때문에 사실은 음식 값의 일부이다. 하지만 이렇게 ‘음식값 + 세금 + 팁’으로 가격을 나누어 놓음으로서, 고객 입장에서 항상 세금을 별도로 생각하게 되고, ‘팁 = 서비스’ 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히고, 어떤 식으로든 서비스를 받으면 거기에 대해 ‘팁’이라는 형태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닐까?
셋째, 돈을 지불했을 때 그 대가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2012년 블로그 결산‘에서 워드프레스 이야기를 잠깐 했었다. 내가 쓰는 블로그 엔진인 워드프레스는 사실 무료로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일년에 100달러 이상씩 돈을 내고 있다는 이야기였는데, 내가 돈을 내기 시작한 이후로 워드프레스가 정말 많이 좋아졌다. 원래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한 블로깅 엔진이었지만, 나처럼 돈을 내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니 제품에 투자를 해서 품질을 크게 개선한 것이다. 이런 사이클을 경험하고 나니 내가 내는 돈이 아깝지가 않다.
넷째, PayPal 등 쉬운 결재 방식 덕분에 지불 과정에 마찰(friction)이 없다. 물건을 사겠다고 결심하는 것과 달리, 기부는 대개 순간적이고 감정적인 결정이다. 기부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나서 버튼을 눌렀는데 엑티브 엑스 깔고, 공인인증서 암호 입력하고, 보안 프로그램 업데이트하고, 휴대폰 인증 하다보면 ‘그냥 안하고 말지’하고 중간에 그만둘 수가 있는데, 페이팔을 이용하면 그런 모든 과정이 없다. 기부 액수를 정한 후 페이팔 아이디와 암호만 입력하면 즉시 지불이 된다. 아래는 위키미디어 파운데이션의 기부 페이지의 일부분이다.
내가 느끼는 한국과 미국의 M&A 문화 차이라는 글에서, 표절을 엄단하고 다른 사람의 지적 재산을 인정하는 문화 때문에 미국에서 M&A가 활발한 것 같다는 주장을 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 점에 있어서는 생각이 다르지 않다. M&A가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M&A가 가진 긍정적 파급 효과가 매우 큰 경우가 많은데, 미국에서 이러한 M&A가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무형의 제품 또는 서비스’에 대해 돈을 기꺼이 지불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국민 소득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기부 문화가 선진국의 척도를 가늠하는 것이 아닐까?
글 : 조성문
출처 : http://sungmooncho.com/2013/01/16/do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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