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인 2009년 11월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오픈 모바일 서밋(Open Mobile Summit)이라는 행사가 있었다. 스마트폰 혁명이 시작된 시기였고, 아이폰 앱스토어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앞으로의 이통사와 제조사가 담당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우리 회사에서 스폰서를 한 덕분에 티켓이 생겨 이 행사에 참석했다. AT&T, 스프린트 등의 이통사에서 임원들이 나와 향후 전략을 이야기했고, 한국에서는 LG 전자를 대표해 최진성 현 SKT 기술전략실장이 스피커로 참석했었다. 앞으로 위치 정보를 비롯한 고객 정보를 이동통신사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등을 이야기하는 한 세션에 참석했는데, 세션이 끝날 즈음 뒤에 앉은 한 사람이 질문을 했다.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자신을 전에 구글에 일했던 엔지니어라고 소개하며, 현재 건강에 관련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세션이 끝나고 나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떤 앱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좀 보여줄 수 있겠냐고 했더니, 아직은 완성이 안 되었지만 기능은 대부분 갖추었다며 보여주었다. 당시엔 아직 인기가 많지 않았던 안드로이드 기반의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손에 받아 이것 저것 눌러보며 살펴보았다. ‘카디오 트레이너‘. 조깅할 때 이 앱을 켜고 달리면 GPS로 위치를 추척해서 기록하고, 그 기록들을 비교할 수 있게 해주어 동기부여가 되도록 하는 앱이었다. 게임빌에서 있을 때 7년간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본 터라, 보자마자 관심이 갔다. 아주 괜찮아 보였다. 조금 더 이야기하고, 명함을 주고 받았다.
Artem Petakov (아텀 페타코프)
CTO/Founder
Worksmart Labs, Inc (주식회사 워크스마트랩)
워크스마트랩이라, 더 똑똑하게 일하는 법을 연구하는 회사? 재미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슨 기업 연구소도 아닌데 회사 이름을 왜 ‘Lab’이라고 지었을까?
집에 도착해서 컨퍼런스 때 받았던 명함을 쭉 정리하다가 Artem의 명함이 눈에 들어왔다. Worksmart Labs. 더 알고 싶어져 회사 웹사이트를 찾아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About Us‘ 페이지를 살펴보았다. 제일 첫 줄에 CEO로 소개된 Saeju Jeong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어랏, 한국 사람이네? 프로필을 읽어보니 홍익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고 되어 있었다. 이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Artem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만나서 반갑다는 말과 함께, 정세주씨를 소개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서 링크드인(LinkedIn)에서 정세주씨 프로필을 찾아보았다. 간략한 내 소개를 하며 연결을 요청했다.
불과 몇 시간만에 그로부터 답장이 왔다.
안녕하십니까? 조성문님
먼저 찾아주시고 또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Artem과 WorkSmart를 공동 창업한 “정세주”라고 합니다. Artem이 내일 뉴욕으로 돌아오면 더 자세한 소식을 듣겠습니다만 반가운 인연입니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창업을 했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혹시 뉴욕이나 동부에 오실 일정이 있으시면 저희 연구소를 들려주세요, 요리사가 준비해주시는 음식이 제법 맛있습니다. 게임빌의 성공사례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더 넓은 길을 향해 가시는 조성문님을 더욱 알고 싶습니다. 현재 우리 연구소에서는 멋진 연구원들을 리쿠르팅 하고 있습니다. 혹시 추천 해주실만한 분이 계시면 말씀 주십시오.
우리 연구소에서는 건강관련(피트니스, 웰니스, 무선 헬스정보망)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조언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 편히 주십시오. 모든 인연을 감사히 여기며 인재에 정성을 기울이려 노력합니다. 아래는 제 연락처 정보 입니다.
말씀 주셔서 감사하며 또 만나뵙기를 기대합니다.
건강하십시오!
뉴욕에서 정세주 올림
WorkSmart Labs, Inc.
그리고 나서 몇 번 더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마침 뉴욕에서 장기 출장중이던 김현유(미키김)씨와 만나보면 어떻겠냐고 소개를 했고, 또 투자를 유치중이라면 아는 투자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다고, 그리고 나도 투자에 관심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곧 다시 답장이 왔다.
실례가 안된다면 전화상으로 제 소개를 함은 어떨런지요, 많이 바쁘신 분이라 제가 괜히 부담이 되는 질문을 하나 싶습니다만 저희의 순수한 열정을 보신 것 같아 저 또한 조성문님을 가까이 알고 지내고 싶습니다. 제 핸드폰은 000-000-0000 입니다. 이번 Open Mobile Summit에서 Artem이 꽤나 즐거운 일들을 만든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 제가 픽업을 하고나면 더 자세한 소식을 듣겠습니다만 잘하면 실리콘 벨리쪽에 있는 회사와도 연계 업무가 가능해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전화로 처음 만났다. 1시간 정도 통화를 하며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다. 미국 서부와 동부에 떨어져 있기에 만날 수는 없었지만, 언젠가 꼭 만나 이야기를 하자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약 한 달 뒤인 12월, 서울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난 휴가를 내어 서울의 가족을 방문하러 갔고, 그도 마침 출장으로 서울에 있을 때였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무척 강한 인상을 받았다. 상대방의 말에 최대한 집중하고, 그 시간에 최선을 다 하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달이 다시 지난 2010년 2월 말, 샌프란시스코의 투자자를 만나러 출장 온 그를 다시 만났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브릿지 근처를 걷고, 샌프란시스코 서쪽의 Cliff House에서 만나 식사를 하며 와인과 함께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뉴욕에 가서 사업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출발한 이야기는 신문 기사를 통해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암으로 일찍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 아버지와의 추억을 자세히 듣게 된 것은 이 때였다.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지혜를 작은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해주셨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와닿았다.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 그는 감상에 젖는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지난 1월 11일, 강연 100도씨에 출연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하던 그는 또 다시 아버지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세 달이 지난 2010년 5월, 이번에는 뉴욕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할렘가에 있는 한 아파트를 개조해서 쓰고 있는 사무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일하던 Artem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고, Vera, Charlie, Mark, Ketill을 만나 인사를 했다. 모두 정세주를 마음 깊이 좋아하고 신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해 10월, 그는 나에게 회사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나는 당연히 참여했다. 그 후, 카디오 트레이너(Cardio Trainer) Pro 버전($9.99)이 출시되며 매출이 크게 성장했고, 제품이 포브스(Forbes) 지에 언급되었고, 2010년 말에는 뉴욕타임즈에서 Top 10 안드로이드 앱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고, Google Health와 파트너십을 맺었고, 뉴욕 첼시(Chelsea)로 사무실을 옮겼다.
2011년 4월에는 클라너 퍼킨스(KPBC)에서 투자를 받았고, 5월에는 눔 다이어트 코치(Noom Weight Loss)를 출시했으며, 출시 한 달만에 백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SBS 스페셜에서 그가 일하는 모습을 취재한 방송이 나갔다. 그리고 그 해 11월, 회사 이름을 WorkSmartLabs에서 Noom으로 바꾸었다.
2012년에는 눔 다이어트 코치가 크게 개선되었으며, 한국 본격 진출을 위해 모든 컨텐트의 한글화 작업을 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 퀄컴 벤처스, 하버 퍼시픽 캐피털 등으로부터 3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2013년 1월에는 눔(Noom) 다이어트 코치 한글 버전이 출시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긍정적인 리뷰를 보니 순조로운 출발로 보인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행운을 얻었다.
아쉽게도 아직 아이폰 버전이 없어 나는 자주 사용하고 있지는 못하지만(이것 때문에 안드로이드 폰을 하나 사기는 했다), 그동안 내가 써본 트래킹 앱 중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카카오톡이나 모바일게임과 같이 바이럴한 제품도, 1분 후에 점수가 나오는 것처럼 결과를 빨리 볼 수 있는 제품도 아닙니다. 애플리케이션의 완성도에 집중하는 이유입니다.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이다. 참으로, 눔 다이어트 코치와 카디오 트레이너를 써보면 세심함과 완성도에 감탄하게 된다. 청년 사업가 정세주, 그리고 그의 회사 눔(Noom)이 앞으로 만들어갈 이야기가 기대된다.
참고 기사
- 임원기의 인터넷 인사이드 – 정세주 워크스마트랩 대표의 미국 시장 도전기
- BeSUCCESS 인터뷰 – 그의 세 번째 회사 Noom이 있기까지 Part I, Part II
글 : 조성문
출처 : http://sungmooncho.com/2013/01/21/n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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