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미국에 있는 한 인터넷 기업에 다니는 MBA 친구가 연말을 맞아서 한국에 왔다.
우리는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강남역에서 만났다. 강남역의 한 일본 라멘집에서 라멘을 앞에 두고 눈이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자연스럽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다니는 기업은 미국에서도 가장 큰 인터넷 기업으로 꼽히는 곳이고, 많은 MBA 졸업생이 가고 싶어하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는 토종 한국인으로서 MBA 유학을 가기 전까지 외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는 친구이지만 미국 현지취업에, 그것도 일류기업 취직에 성공한 예이다. 그는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일한지 2년 가까이 되었고, 처음에는 자기가 전혀 문화와 언어가 다른 회사에서 오래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해서 스스로도 반신반의 했는데, 지금은 꽤 자신이 있다고 했다.
체계적이지 않은 평가 시스템의 좋은점
그러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 회사에서 그가 받은 평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고, 그리고 그 회사의 평가 시스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점은 그 회사는 외부에는 엄청나게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갖고 있기로 유명한 회사인데, 생각보다 인사고과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미국 기업의 인사 시스템을 벤치마킹 할 때, 미국의 일류 기업들은 인사 평가 시스템이 매우 체계적으로 되어 있어서, 마치 수학 공식처럼 필요한 정보를 뚝딱뚝딱 입력하면 그 사람의 인사고과 점수가가 나오는 시스템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과는 반대되는 예라서 흥미로웠다.
물론 미국의 기업들 중에서도 체계적이고 시스템적으로 인사고과를 관리하는 곳이 많다. 내가 다니던 예전 직장이나 그 친구가 다니던 예전 직장도 그런 곳들이었다. 참고로 두 회사 모두 1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전통적인 미국의 기업들이다. 그리고 그 기업들에서는 연초에 자신이 추진해야 할 업무 추진과제(initiative) 들을 정하고, 그 추진과제들을 달성했을 경우에 대한 측정치(measurement, KPI)등을 명확하게 설정한다. 그리고 분기별, 혹은 반기별로 그러한 측정치와 목표치에 대해서 현실적인 상황을 반영한 조정을 가하기도 하며, 자신의 매니저/관리자와 면담을 통해서 무엇이 잘 되고 있는지, 등에 대한 피드백을 받게 된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그동안의 자료를 토대로 인사고과가 나오게 되고, 보통 인사고과는 등급(rating)에 따라서 많게는 10 단계, 적게는 3-4 단계 정도로 되어 있어서, 이는 승진과 보너스 등의 지표로 활용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위에 내가 묘사한 과정이 대부분의 한국 회사에서도 도입된 일반적인 인사평가 시스템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들이 지난 20여년간 우리가 열심히 미국의 일류기업들을 벤치마킹한 결과이다.
그런데 내 친구가 다니는 회사의 시스템은 조금 달랐다. 연초에 자신이 추진해야 할 업무추진과제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정을 하지도 않고, 자신의 업무 성과를 명확하게 측정해야 하는 KPI에 대해서도 느슨하게 정의하는 수준이란다. 그 대신에 매니저가 자신의 부하직원에게 훨씬 더 자주,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피드백을 준다고 한다. 그래야만 부하직원이 자신이 잘 하고 있는지, 아닌지 등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업무 성과가 좋지 못한 직원에 대해서는 이와는 달리 조금은 엄격한 문서화와 행동 가이드라인이 주어진다고 한다. 즉, 업무성과가 좋은 직원에게는 굳이 타이트한 문서화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지 않고, 본인 스스로의 스타일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며, 그 과정은 각각의 매니저들의 재량권에 많이 맡겨지는 반면, 업무 성과 좋지 않은 직원들에게는 국내외의 대기업들이 하는 것과 같은 체계적인 평가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미국의 실리콘밸리의 기업들 사이에서는 비교적 흔한 시스템이라고 한다. 한치 앞도 알 수 없이 급변하는 IT 기업들의 환경 아래서는 1년에 한번 정하는 추진과제나 KPI 들이 크게 유의미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개인들이 자신의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더 보장해 주고, 자연스럽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새로운 추진과제로 추가할 수 있도록 하거나, 이에 대해서 자신의 보스와 더 자주, 더 캐주얼하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좋은 평가를 위한 프레임웍 – PIE 이론
나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내가 지금까지 보고 경험한 국내외의 기업들에서는 명확한 목표 설정이나, KPI에 대한 트랙킹, 그리고 그런 과정을 잘 관리해서 나중에 인사상의 불공평함이나 문제의 소지가 없게 하는 것이 매주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친구의 회사는 웬만한 국내 대기업보다도 큰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외부 환경에 대한 유연성(agility)를 강조해서 잘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사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고, 이런 사실이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주변의 많은 평가/보상 시스템이라는 것들은 사람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서 좌우된다. 아무리 체계적인 척 추진과제를 정의하고, 명확한 숫자를 박아 넣는다고 해도, 결국에는 그 사람에 대한 다면적인 평가와 태도, 인성, 팀웍 등에 대해서 함께 고려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잘 표현하는 프레임 중에서는 PIE(파이) 이론이 있다. 인사/보상 시스템이라는 것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든지 간에 세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 세가지는 성과(Performance), 인상(Impression), 노출(Exposure) 이렇게 세 가지이다.
먼저 성과 (performance)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비즈니스 성과의 대부분이다. 매출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이익은 얼마나 증가했는지, 이익률은 개선이 되었는지, 점유율은 향상되었는지 등등 우리 회사가 비즈니스를 잘 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활동들에 사원 각자가 공헌한 바를 나타낸다.
인상(Impression)은 그가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는가? 라는 점이다. 인식(Perception) 혹은 브랜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 그에 대해서 일을 잘 하고, 팀워크에 기여하는 사람이고, 또 스마트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출(Exposure)은 그 사람의 업무나 존재가 얼마나 회사의 내부 및 외부에서 노출되었는지를 나타낸다. 일을 잘 못하고, 전체적인 임프레션이 좋지 못한 사람 중에서 CEO에게 잘 보였거나 아니면 회사 밖에서 유명세를 얻어서 회사 내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팀 내에서 일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CEO의 눈에 잘 들어서 성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의 기업문화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자기가 한 일을 잘 마케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 일을 잘 패키징할 줄도 알아야 하고, 마케팅할 줄도 알아야 한다. 동양의 문화에서 낳고 자란 사람들이 참으로 부족한 스킬이 바로 이런 노출 (exposure) 부분일 것이다.
국내의 기업에서는 이 세가지 요소 가운데 한가지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무조건 성과를 강조하는 기업, 성과와 관계없이 인간관계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기업, 혹은 그 두가지 모두 상관 없이 누가 더 사장님과 골프를 많이 쳤는지에 따라서 승진과 권한이 주어지는 기업. 모두 PIE의 밸런스가 필요한 기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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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공감경영 6회에 소개된 글의 일부입니다.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mbablogger.net/?p=5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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