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5일자 뉴욕타임즈에 다소 선정적인 기사가 난 적이 있다. 제목은 “직업을 원한다면 대학을 가라, 그런데 건축은 전공하지 말라 (Want a Job? Go to College, and Don’t Major in Architecture)” 였다. 기사는 조지타운 대학에서 나온 리포트의 전공과 실업률을 비교한 데이터를 근거로 작성되었는데, 예술이나 사회학 등과 같은 기술기반이 아닌 전공이나 기술기반이라도 건축학의 경우 실업률이 높았다는 것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한 우리나라의 이공계 전공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일견 수긍이 될 수 있는 기사가 아닌가 싶다. 다만 이 기사를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춰서 각색한다면 아마도 “직업을 원한다면 전문직을 얻을 수 있는 대학전공이나 고시를 준비해라. 나머지는 허당이다” 정도가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단기 실업률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생들의 진로와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보편적인 고등교육과 전문적인 고등교육
뉴욕타임즈의 기사에 건축이 언급되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기조는 인문학, 예술, 사회학 등과 같이 보편적이고 넓은 범위의 전공에 비해 명확한 직업의 경로가 있고, 커다란 고민을 하지 않아도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결론을 내리기에는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무척 많다. 일단 사회학, 정치학, 인문학, 예술 등을 전공하고도 여러 전문직이나 기업가 등이 된 사람들도 많다. 아직 우리나라는 대학전공이 곧 직업이라는 등식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에는 인문학적인 기초를 가지고, 자신의 직업을 위해서 새로운 공부를 해서 훌륭한 커리어를 갖춘 사람들이 굉장히 많고, 그들에 대한 평가도 좋거니와 인생에서의 만족도도 무척이나 높다. 역사와 철학을 이해하고, 아름다움과 행복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며, 남의 말과 글을 듣고 읽어서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풀어내는 가장 기본적인 소양을 닦은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전문분야에서 더욱 큰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은 굳이 데이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에 비해 과학과 공학, 의학 등을 전공하면 아무래도 특정한 직업군에서 처음 일자리를 얻는데에는 유리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면허’라는 규제에 의해 보호를 받는 일무 전문직을 제외하면 (그 면허라는 규제도 앞으로 솔직히 어떻게 될지 모른다), 기술직의 경우 오늘날과 같이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에 있어 대학에서 전공하고, 현업에서 일부 경력을 쌓았다고 해서 길고 긴 인생의 장기레이스에서 자신만의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의과대학의 예를 들면 졸업하면 일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보수는 어떤지 등을 따져서 전문의를 딸 전공과목을 선택하는데, 보통 제일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이 당시 가장 소위 잘 나가는 과에 가게 된다. 그런데, 10년이 지나지 않아서 당시 제일 인기가 좋았던 과목이 막상 일을 시작하려니 가장 박봉에 근무환경이 열악한 과목으로 바뀌는 일이 부지기수다. 하물며 20~30년을 놓고 봐야하는 인생은 오죽 하겠는가? 간혹 블로그에 직업의 미래에 대해서 포스팅을 했지만, 과거 100년을 놓고 보면 아예 없던 직업이 생겨난 것이 전체의 50%를 넘고, 많은 사람들이 일했던 여러 직업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들이 또한 50%가 넘는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무슨 직업을 바로 가질 수 있는 그런 전공이 유리해 보이지만, 넓은 영역을 커버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추가적인 공부를 통해 자신의 인생경로를 마음대로 디자인할 수 있고, 인간으로서 보편타당한 다양한 학식을 쌓고, 이를 남들과 나눌 수 있는 인간적인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이런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더 유리한 것이 아닐까?
고등교육은 어째서 필요한가?
워낙 대학과 같은 고등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많이 쓰다보니 최근들어 이에 대한 반론을 듣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약간의 해명도 필요한 듯하다. 개인적으로 고등교육의 위기와 혁신을 이야기한 이유는 대학과 같은 고등교육이 필요가 없어서가 아니다. 다만 주객전도가 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대학과 고등교육이 먼저 존재하고 학생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사회적 필요가 있어야 그 존재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 문제를 파악하려면 어째서 고등교육이 필요한 지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언제나 그렇듯이, 연구를 위한 대학의 역할은 또 다른 이야기다).
고등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답을 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교육받는 내용 그 자체와 학생 및 동문, 그리고 교수 등과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공식적으로 만들어 지는 점, 그리고 권위 등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중에서 교육의 컨텐츠 부분은 이제 정말 고등교육의 존재이유로 말하기에는 어려운 시기로 가는 듯하다. 그렇지만, 아마도 일류대학이 가지고 있는 공식적 사회적 네트워크와 권위라는 것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고등교육의 필요성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소수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대학들은 앞으로 더욱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약간 오늘의 주제에서 벗어났는데, 중요한 것은 일부의 통계와 자료가 사람들에게 그릇된 생각과 믿음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그것이 자신의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특정 전공을 선택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오만한 것도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굉장히 다채롭고 예측하기 어렵지만, 자신만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고, 행복을 찾아나선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주고 행복을 선사하는 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삶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우리의 의/식/주, 그리고 즐거움과 연관된 산업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그런 길을 걸어가기 위해 소통의 능력을 연마하고, 지식을 꾸준히 습득하기 위해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사랑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고,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가 원하는 것을 결합시키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한다면 언젠가 그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참고자료:
Want a Job? Go to College, and Don’t Major in Architecture
글 : 정지훈
출처 : http://health20.kr/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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