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닐 때 상당히 진보적인 발언을 많이 한 선배가 있었다. 발언은 진보적이었던 선배였는데, 후배한테 하는 행동이나 특히 여자 후배한테 하는 행동은 상당히 권위적이었다. 발언과 행동 사이에 괴리가 참 큰 셈이었다. 선배한테 농담삼아 발언은 진보적인데 행동은 권위적인 이유를 물었다. 선배는 이렇게 대답했다.
“난 이론가야.”
몇 년 전에 어떤 회사에 강연을 나간 적이 있다. 강연 전에 사장님과 차 한잔을 마셨는데, 이때 사장님이 웃으시면서 혹시 강연 주제가 ‘사장 제대로 일하라’와 관련된 것이냐고 물으셨다. 외부 강연을 요청하면 결론이 ‘사장 제대로 일하라’라는 것이라며 자리에 앉아서 들을 때 곤란할 때가 많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내 주제는 사장님이 걱정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말씀 드렸다.
의식이란 무엇일까? 영혼과 의식은 다르지만, 영혼의 존재 이유는 자신을 인식하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뇌의 존재와 역할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현대에 들어서도 육체와 영혼은 따로 존재한다는 이원론에 대한 믿음이 보편적이다. 이런 이유로 의식 또한 뇌와 동떨어진 고귀한 무엇으로 생각된다. 사람은 다리가 있기 때문에 걸을 수 있다. 우리가 걸을 수 있다고 해서, 걸음을 다리와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움직임이란 다리에서 생기는 작용이다. 따라서 의식이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현상이라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의식이란 무엇인가?는 위에서 말한 몇 문장으로 쉽게 요약되는 주제가 아니다. 철학, 윤리, 뇌과학, 생물학, 진화론 등이 합쳐진 다층적인 주제다. 이 글에서 유물론적인 관점을 유지한다면 의식이란 뇌의 발달에 의해서 생겨난 기능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인간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탄생한 뇌작용이라면, 따라서 의식에 의해 생기는 이론이나 생각은 행동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허망될 뿐이다.
말과 행동은 괴리가 있을 수 있다. 그 둘이 서로 다른 범주의 것이어서 완전히 일치한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행동과 분리된 이론이나 생각은 허황될 뿐이다. 말만 잘하는 이론가나 사장의 역할을 경험하지 못한 강연자의 말이 그다지 가슴에 와닿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이나 글을 쓸 때 누군가의 판단이나 사고를 기준으로 자기검열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열풍으로 많이들 알 고 있는 칸트의 정언명령에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동과 사고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글과 말인지로, 자기 검열을 한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글 : 신승환
출처 : http://www.talk-with-hani.com/archives/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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