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사회적 기업’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는 90년대 중반이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당시에 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시중 은행이나 대기업들이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는 것을 꼽는 것을 보고 나서는 나는 이러한 사회적 기업들에 대해서 흥미를 잃었다.
시중은행이 1년에 2-3번씩 몸놀림이 자유롭지 않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자원봉사를 하며, 그들에게 시설을 제공해주거나 도서관을 지어준다… 물론 매우 의미 있는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일에 종사하는 분들에게는 무한한 존경심을 표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스스로 그런 일을 계속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너무 이기적인 사람이고, 주변의 소외 받는 이웃들에게 무관심하다고 비난한다면 나는 그 비난이 옳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대학시절부터 지체부자유 어린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이나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단체 등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나는 그런 활동들을 계속적으로(sustain) 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생각해보건대 내가 그런 활동들을 계속 할 수 없었던 이유는 3가지가 있는 것 같았다.
첫째는 나 스스로 다른 중요한 일들 (주로 먹고 사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식구들을 먼저 챙겨야 할 일들이 있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내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우선순위를 낮출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초등학생 도덕책에나 나올법한 역할갈등(conflicts of roles) 이야기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렇게 계속 관심을 갖지 않을 때, 상대방이 얼마나 실망하는지, 혹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이 곤경에 처하게 되는지 겪게 된다면, 당신도 이 문제를 가볍게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두 번째는 위의 일들이 내 자신의 미래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의 일들을 한다고 해서 내 스스로가 금방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사회가 더 밝아지고 발전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 당장 내가 끝내야 하는 나의 회사 일이 있으면, 나도 어쩔 수 없다.
세 번째 이유는 위의 일들을 하는데 있어서 내가 가진 기술이나 능력이 큰 도움이 안될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즉, 나보다 이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도 너무 많지만, 그러한 일들을 하는데 있어서 내가 지금까지 학교나 직장에서 배운 기술들이 별반 도움이 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위의 조건들이 만족되는 일이 있다면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즉 사회적 활동(social activity)를 계속적으로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나 자신과 내 가족의 이익에도 연관이 있고, 나의 기술과 능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 활동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CSV와 사회적 기업
이런 어려운 개념을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사회적 레벨에서 참 멋지게 정의했다. Creating Shared Value(SCV)라는 것이 바로 그 개념이다. (자세한 내용은 리디북스에 연재중인 공감경영 2 참조)
CSV(Creating Shared Value)는 공유가치창출이라고 번역된다. 이 개념은 최근 5-10년간 뜨거운 토픽이었던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기존의 CSR이 기부 중심의 개념이었다면 CSV는 이를 넘어서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CSV는 기업들이 자신이 비즈니스를 하는 환경과 커뮤니티에서 가지고 있는 특정 문제에 대해서 그 기업이 가장 잘 풀 수 있는 이슈를 파악해서 그 이슈해결의 매커니즘을 자신의 핵심비즈니스에 연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예컨대 미국의 TOMS 라는 신발회사는 고객이 한 켤레의 신발을 살 때마다 아르헨티나의 불우한어린이들에게 한 켤레의 신발을 기부하는 형태이다. 이 신발의 디자인이 아르헨티나 고산지대의 전통 신발을 본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기업의 창업주인 TOMS가 신발이 없어서 학교를 못 가는 이 지역 어린이들을 돕고자 처음으로 이 회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One-for-one 이라는 이러한 개념은 이제는 다양한 산업에서 모방되고 있다. TOMS도 이제는 신발 뿐만 아니라, 안경이나 옷과 같은 다른 분야에까지도 이 모델을 확대해서 적용하고 있다.
어려운 어린이들을 도울수록 TOMS의 매출은 올라가고, TOMS의 매출이 올라갈수록 도울 수 있는 어린이는 더 많아진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는 단순한 1회성 기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회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포터 교수는 CSV가 바로 경영의 미래라고 말한다. 기업들이 일부러라도 자신의 커뮤니티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업영역에 이 문제를 끌어안지 않으면, 우리 기업들이 중소기업에서 몸집이 커진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바로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가 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음을 스스로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를 통한 비판 (Criticizing by Creating)
미국의 유기농 슈퍼마켓 체인점인 홀푸드 마켓(Whole Foods Market)의 CEO인 John Mackey 는 흥미로운 사람이다. 그는 자유로운 정신이 피어나던 60년대에 텍사스에 살고 있던 히피였다. 그는 채식주의, 동양의 선(zen) 사상, 유기농 농업 등,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새로운 것들 것들을 몸소 실천하면서 살다가 급기야 그의 여자친구와 슈퍼마켓을 차리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홀푸드는 미국 내에서 월마트보다도 더 수익성이 좋고, 더 높은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는 초우량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젊은 시절에 가지고 있던 진보적인 사상을 버리고, 훨씬 더 친시장적이고, 자유방임주의에 가까운 관점을 취하게 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가 젊은 시절에 믿었던 진보적인 사상과 비판의식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사회에 대한 비판만 하고, 누군가가 나서서 세상을 바꿔주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자기 자신이 몸소 실천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내는 모습을 보여주겠노라고 결심하게 된다.
그런 그의 생각은 책 ‘Be the Solution’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에서 John Mackey 는 자기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다른 사람들 중에서 사회적 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과 함께 사회적 기업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논지는 창조를 통한 비판(criticize by creation)인데, 즉 현재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 내에서 우리는 사회적 기업활동(Social Entrepreneurship)을 통해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깨어있는 자본주의 (conscious capitalism)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실제로 Conscious Capitalism은 John Mackey가 쓴 또 다른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원제목: Conscious Capitalism: Liberating the Heroic Spirit of Business)
나 또한 John Mackey의 창조를 통한 비판 (Criticize by Creation) 과 깨어있는 자본주의(Conscious Capitalism)에 대해서 깊이 공감하고, 감히 앞으로는 한국에서도 이러한 사회적 기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 지리라고 확신한다.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가장 관심이 있는 분야이며, 내가 서 있는 내 자리에서부터, 보잘것 없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기술을 활용해서 무언가 시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늘 생각하고 있다.
최근에 ‘Conscious Capitalism, 확신범인가? 또 다른 가능성인가?’라는 포스팅을 통해서Ross 2014님께서 올려주신 ‘깨어있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잘 정리해주신 글을 재인용하면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Conscious Capitalism, 확신범인가? 또 다른 가능성인가?
- 자본주의 아버지인 아담스미스는 ‘국부론’에서 ‘invisible hand’를 이야기하기 전에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라는 책에서 자본주의 운영에 있어서 ‘윤리’와 ‘책임’의 문제를 강력히 주장했지만,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인용되지 않았다
-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체제로 그 어떤 체제보다 빨리 효율적으로 가난구제, 생명연장, 평화정착, 공동선 추구 등을 이루어 왔다
- 기업의 목적은 ‘주주의 이익 추구’가 아닌 ‘이해관계자’ 1 의 공동의 이익 추구이며, 자본주의는 zero-sum 게임이 아닌 positive-sum 게임이다
- 깨어있는(conscious) 자본주의는 세상에 영향(impact)를 주는 것을 목적으로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그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 깨어있는 자본주의 하에서 기업은 ‘어쩔 수 없이’ 이익 외의 것을 의무적으로 추구하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이해관계자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 기업은 직원을 소비되고 대체가능한 ‘Resource’가 아닌 필수불가결한 ‘Source’로 보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양성해야 한다
- 기업 경영에서 ‘이익’이란 개인의 삶에서 ‘행복’과 같이, 그것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지 않을 때 가장 빨리 쉽게 달성된다
- 기업의 성과를 결정 짓는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이면서도 기업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잊혀지고 있는 집단은 ‘공급자’와 ‘소비자’이다
- ‘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지 않고 ‘이해관계자’ 공동의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면서도 초과 성장을 하는 깨어있는 자본주의를 실천하는 많은 기업들이 현존한다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mbablogger.net/?p=5868
- 이해관계자 : 주주, 종업원, 소비자, 제품공급자, Community, 정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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