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스에서 길러지는 창의력

예루살렘의 올드시티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
예루살렘의 올드시티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

예전에 이스라엘 사람과 일한 적이 있다. 그는 유대교를 독실하게 믿는 사람이었다. 반면 나는 이스라엘이나 유대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평소에는 밤늦게라도 이메일이나 전화에 바로바로 응답을 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이 사람이 금요일 오후부터는 매번 연락두절 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토요일 저녁이 되면 비로소 답장이 왔다. 처음에는 급한 일로 연락했는데 간단한 질문에도 답을 안 해주니 섭섭했다. 그런데 나중에 이유를 알고 보니 그는 유대교의 안식일인 ‘사바스’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 시간 동안은 일을 해서도 안 되고 전화나 컴퓨터를 써도 안 되기 때문에 당연히 이메일을 읽고 답장하는 것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철저하게 쉬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부터는 안식일에는 그를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당시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일주일에 하루 일을 멀리하는 그가 그리 부럽지 않았다. 오히려 쓸데없는 구속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강제로라도 그런 안식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너무나 바쁘게 사는 한국인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산다. 아침 일찍 조찬모임에 가거나 학원에 가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종일 정신없이 일하고 야근도 다반사다. 그리고 또 직장동료나 친구들과 함께 한잔을 한다. 주말은 주말대로 등산·골프 등 취미활동에 바쁘다. 놀러 가는 것도 무슨 전투를 치르듯이 한다. 아이들도 부모와 마찬가지로 바쁜 일정 속에서 산다. 밤늦게까지 학원에 있고, 주말에도 과외활동을 하기에 바쁘다. 한마디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한국을 만든 원동력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이처럼 열심히 사는 한국인들이 요즘 ‘스마트폰’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만났다. 덕분에 예전보다도 더 바쁘게 산다. 머리가 쉴 새가 없다. 남들을 따라가려면 유행하는 게임도 열심히 해야 한다. 쉴새없이 울리는 카톡메시지에도 답을 해야 인간관계가 유지된다. 인기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빠지지 않고 봐줘야 한다. 지하철을 타보면 온 국민이 스마트폰 화면에 머리를 박고 있는 듯싶다. 스마트폰은 바쁜 생활을 더욱 ‘스마트’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다. 이제 우리에게 멍하니 있는 자투리 시간은 허용되지 않는다. 덕분에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은커녕 조용한 아침이나 한가로운 주말도 없는 삶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얼마 전 뉴욕에서 독실한 유대교 신자인 한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컴퓨터프로그래머다. 그런 그도 안식일은 철저히 지킨다고 한다. 전화·컴퓨터는 건드리지도 않는단다. 그럼 주로 뭐 하냐고 물었더니 “그냥 철저하게 쉰다. 독서를 하고, 가족·친구와 대화하고, 사색을 많이 한다. 정말 머리를 식히기에 좋다”고 한다.

삶을 열정적으로 바쁘게 사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처럼 여유롭게 사색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유대인들을 접하면서 그들이 얼마 안 되는 인구인데도 인류에 큰 족적을 남긴 수많은 창의적인 인물을 배출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주일에 한번씩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면서 토론하고 사색하는 습관도 그들의 중요한 성공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우격다짐으로 쥐어짠다고 창의적인 생각이나 혁신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쉬면서 사색하고 대화하는 습관을 익히는 것이 창의력을 키우는 원천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주일에 몇 시간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앞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습관을 만들어보자.

2013년 3월12일자 한겨레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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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무슨 내용으로 한겨레칼럼을 쓸까 고민하다가 유대인의 사밧(Sabbath), 즉 안식일과 관련해 써봤다. (원래 ‘사밧’이라고 써서 칼럼을 보냈는데 ‘사바스’로 고쳐져서 나왔다. 뭐 미국에서는 ‘사밧’이라고 발음하지만…) 어쨌든 이스라엘인과 유대인을 접하면서 이런 안식일을 갖는 전통이 그들의 생각의 깊이와 창의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 것이 아닌가 평소 생각했었다. 물론 일반화는 위험하다. 많은 이스라엘인과 미국의 유대인들은 그다지 ‘종교적’이지 않다. 내가 위에 소개한 사람들처럼 안식일의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안식일에 그냥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민족과 비교할때 유대인은 안식일을 조용히 보내고 특히 사밧의 저녁은 모든 것을 끄고 가족과 함께 대화하는 만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이처럼 쉬면서 사색하고 가족들과,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생각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 같다.

그에 비하면 요즘 한국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모두들 너무 바쁘게 산다. 이제는 조금있는 여유시간도 스마트폰과 보내면서 머리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카톡메시지에 답하느라 바쁜 사람들을 보면 ‘스마트폰의 노예’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나도 마찬가지지만) 그리고 다들 너무 부지런해서 딴 생각을 할 틈이 없어 보인다. 다들 열심히는 사는 것은 좋은데 이야기를 해보면 의외로 생각의 폭이 넓지 않고, ‘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도 많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학창시절 암기식 교육으로 자기 생각을 가질 수가 없었는데 사회에 나와서도 시키는 일만하고 남들 따라가느라 바쁘다보니 ‘내 생각’이 없어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나의 경우 그래도 4년전 미국에 와서 살게 된 것이 나름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보다는 삶의 속도가 한 템포 느린 미국에서 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한국에 계속 있었더라면 과연 지금처럼 블로그를 쓸 마음의 여유가 있었을까 의문이다.

내가 4년전 라이코스CEO로 갈 때 절친한 미국인 CEO분에게 조언을 구한 일이 있다. 그 분이 해준 조언중에 이런 말씀이 있었다. “일주일에 적어도 몇시간은 외부 미팅이나 전화 등을 완전히 블락하고 자신의 시간으로 갖도록 해라. CEO가 너무 바쁘면 안된다. 일주일에 한번은 지금 상황을 냉정히 돌아보고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일부러 그런 시간을 꼭 만들어야 한다.” 참 귀중한 조언이었다.

글 : 에스티마
출처 : http://estima.wordpress.com/2013/03/12/sabb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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