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내로 인간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기업’을 꼽으라면 난 주저 없이 ‘구글(Google)’이라 답할 것이다. 구글은 너무나도 훌륭한 서비스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뛰어남이 구글에는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소비자와 각국 정부가 구글을 위협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의 탁월함
스마트폰에서 시작하여 노트북, TV로까지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안드로이드 OS, 무인 자동차, 혁명적인 구글 글래스, 구글 스마트폰, 구글 태블릿, 애플 스토어를 모방한 구글 스토어, 방송사업자이자 음악사업자로 성장하는 유튜브, 이메일, 구글 드라이브, 그리고 멋진 구글 검색 서비스와 전 세계 광고시장을 집어삼키고 있는 구글 광고까지.
구글은 다양한 사업 영역에서 혁신을 이끌고 있으며, 사업 영역 확장과정에서도 집중력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NHN이 검색과 게임으로 확보한 소비자 집단에서 직접 그리고 간접 네트워크 효과를 만끽하고 있듯, 구글은 전 세계 시장에서 확보한 탄탄한 소비자 네트워크 효과에 기초하여 성장과 변환의 길 위에서 부침 없이 질주하고 있다. 주식시장도 구글의 질주에 주당 800달러라는 경이적인 가격으로 화답하고 있다.
2011년 구글+ 를 시작한 이래로 구글은 검색중심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통합시키는 쪽으로 서비스 전략 방향을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참조: 구글의 전략전환, “구글 플러스가 구글 자체다”). 서비스 통합과정을 통해 구글의 광고 수익은 결과적으로 그리고 예상 밖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구글은 (1) 서비스 혁신, (2) 통합 그리고 (3) 매출 증대라는 삼박자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다.
한국 소비자 다수에게 “인터넷(월드와이드웹) = 네이버”라는 등식이 성립하듯, 전 세계 다수 소비자에게 구글은 웹과 인터넷의 상징이며 생활 곳곳을 파고든지 오래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지배력이 구글에 마냥 좋은 일은 아니다. 시장경제에서 한 개 기업의 점유율이 과도하게 높을 때 사회는 불안에 빠지게 되고, 정치와 법은 해당 기업을 ‘시장지배적 사업자’ 또는 ‘독점기업’으로 규정하기 시작한다.
한국에선 네이버가, 전 세계적으로는 구글이 검색 등 일부 시장에서뿐 아니라 디지털 사회 곳곳에서 비대하게 몸집을 불려 가고 있다. 더욱이 디지털화가 전통적 영역을 넘어, 자동차와 자동차를 연결하고, 교육의 패러다임을 뒤집으며, 정치적 참여와 소통구조를 바꾸면서 점차 인간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라. 디지털 사회 전체에 대한 ‘단 한 개 기업의 독점적 지배력’은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뛰어난 것도 문제다
물론 꼭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구글의 지배력이 확정되고 있는 과정은 흔히 볼 수 있는 독점사업자의 지위 악용과는 관련 없다. 지치지 않는 기술 혁신과 뛰어난 경영능력이 오늘의 구글을 만들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소비자의 선택비용 또는 소비비용이 발생하는 전통 시장에서는 ‘시장점유율’이 ‘시장지배적 사업자’와 ‘독점 기업’을 규정하는 주요 기준이라면, 클릭 한 두 번으로 서비스 제공자를 바꿀 수 있는 디지털 시장에서는 ‘독점’에 대한 정의가 바뀔 수 있다. 네이버가 싫다면 다음이 있고, 구글이 미우면 빙(Bing)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소비자 모두에게 가까이 놓여 있다. 유튜브가 쿨하지 않다면 비메오(vimeo)를 사용하면 그만이다. 구글의 시장 지배력을 쉽게 비판할 수 없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구글 서비스가 경쟁사의 그것보다 훌륭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혁신의 땀방울을 통해서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서비스 기업으로 구글이 성장했는지 또는 검색 시장에서 확보한 시장 지위를 악용하여 이메일, 뉴스, 일정 등의 여타 자사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강요했는지는 결과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아날로그 경제에 기초한 현행법으로 구글을 ‘독점 기업’을 정의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논쟁도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점은 거대한 구글 앞에서, 아직은 일부지만, 소비자가 구글 종속성을 걱정하고 두려워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치권이 이러한 사회적 공기를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에 의해 무인자동차가 대중성을 얻을 때, 구글에 의해 남몰래 세상의 모든 것을 촬영할 수 있는 구글 글래스가 유행할 때, 그리고 전 세계 자동차와 글래스에서 생산되는 연관 데이터가 구글의 서버로 흘러들어갈 때 구글에 대한 인류의 종속성은 증대할 수밖에 없다.
구글의 악한 의도 때문이 아니라, 다른 기업이 쫓아갈 수 없는 기술과 경영 혁신으로 구글이 디지털 사회의 견인차가 될 때, 소비자가 원해서, 소비자가 유익을 얻기 때문에 구글이 디지털 사회의 지배자가 될 때 구글은 역설적으로 사회적 위기 그 자체가 된다. 구글의 이러한 딜레마가 한국사회에서는, 부분적으로, 네이버에게도 작동할 수 있다.
단일 고장점(SINGLE POINT OF FAILURE)으로서의 구글
잠시 상상해 보자. 특정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약 1억 명이다. 이를 대상으로 하는 구글검색 시장 점유율은 90퍼센트를 넘은 지 오래다. 이 언어 사용자는 안드로이드 OS가 작동하는 스마트폰의 자명종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난다. 그들은 구글 G-메일을 사용하고, 구글 드라이브로 문서작업을 하며, 구글 북스에 담겨있는 책을 읽고, 여느 방송사보다 유튜브의 다채로운 채널의 프로그램을 소비하며, 유튜브 음악을 들으면서 구글+를 통해 소통한다.
경영 실수에 의해서건 또는 기술적 오류에 기인해서건 구글이 멈출 때 사회가 붕괴하며 개인의 삶이 무너질 수 있다. 이른바 한 사회의 단일 고장점(Single Point of Failure)으로 구글이 기능하는 순간이다. (주: 단일 고장점은 그 요소가 동작하지 않으면 전체 시스템이 중단되는 요소를 가리킴)
그렇다면 ‘단일 고장점’으로 단일 기업이 발전한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한 개 기업의 서비스만 사용하는 소비자의 우둔함 때문인가? 소속 직원과 주주들을 위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잘못인가? 훌륭하고 멋진 다양한 구글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막대한 유익은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그런데 정치는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소비자와 기업이 함께 처한 이러한 딜레마에 정치는 얼마나 진지하고 치열하게 답변하고 있는가? 최근 프랑스, 독일 등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구글의 모습은 우려스럽다(참조: 구글과 프랑스, 독일의 갈등. 강 건너 불?).
결국, 해답은 소비자, 즉, 이용자에게 있다. 디지털 사회에서 다양한 기업 또는 주체가 생산한 서비스를 사용하며 단일 고장점을 피하고자 하는 소비자 개인의 노력, 그리고 이러한 미디어 능력(Literacy)을 지원하는 정책, 그리고 인류가 곧 직면하게 될 단일 고장점에 대한 구글 (그리고 네이버)의 책임 있는 자세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모두의 선택이 중요한 때이다.
글 : 강정수
출처 : http://www.berlinlog.com/?p=1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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