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책을 쓰는 나에게는 ‘보물창고’나 마찬가지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연들을 인터넷에서는 거의 동시에 만날 수 있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면 기대에 부풀어 컴퓨터부터 켠다. 이어 이메일을 확인한 후 답장을 보내고, 뉴스를 읽는다.
인터넷은 또 스스로 진화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인터넷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네티즌들을 단순히 연결해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들이 서로 긴밀하게 교류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인터넷의 새로운 이름이 바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SNS가 작동하는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누구나 블로그와 트위터 등을 이용해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축복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그림자는 드리워진다.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에서도 ‘알짜’ 정보를 찾는 것은 여전히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네티즌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한 소설가는 트위터로 광고 글을 날려 빈축을 샀다. 또 파워 블로거 중에는 불법으로 공동구매를 한 혐의가 들통이 나서 처벌을 받기도 했다. 인터넷을 활용하는 입소문(바이럴) 마케팅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대부분 형무소 담장 위에 걸터앉은 신세라는 것을 눈치를 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보기술(IT)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IT를 활용한 혁신이 저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바다건너 미국에서 IT가 경제는 물론 정치와 문화 등 사회 곳곳을 변화시키는 주역이 되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의 주코티 공원에서 개최한 집회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정보기술(IT) 특히 SNS가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싹을 틔운 공간은 ‘애드버스터(http://www.adbusters.org)’라는 잡지다. 친환경 및 문화를 주로 다루는 이 잡지 편집자가 9월호에 “탐욕스러운 금융기관을 규탄하는 모임을 갖자”는 광고를 게재한 것. 이를 본 시민들이 주코티 공원에 모였다.
9월17일 열린 집회에서 주코티 공원을 방문한 시민은 고작 150여명. 이날 시위대가 준비한 구호는 바로 ‘Occupy(Wall Street)’다. 우리말로 옮기면 ‘(월가를)점령하라’다. 이 짧은 말에는 탐욕스러운 미국 월가(스트리트)의 금융 자본가들을 향한 분노를 읽을 수 있다.
이들이 공원에서 외친 함성이 메아리가 되어 전 세계 네티즌들이 반응했다. SNS는 이들의 분노를 확대 재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첫 집회가 열린 날로부터 불과 한 달여가 지난 10월29일 열린 총행동의 날에는 전 세계 80여개 국가 1,000여 개 도시에서 동시 다발적인 집회와 시위가 열렸다.
전 세계에서, 그것도 다양한 직업을 가진 시민들을 하나로 묶은 가공할만한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주요 신문과 방송들이 이를 분석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보수 언론의 태도는 여전히 편파적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시위대 활동을 애써 무시하다가 그 열기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을 보고, 공포감마저 느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론을 이끌고 있는 것은 시위대 자신들이다. 언론과 작가, 문화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시위대는 처음부터 인터넷에 활동본부를 꾸렸다. 시위대는 밤낮으로 활동하면서 그 내용을 정리해 발표했다. 시위대가 그 동안 활동을 담은 책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국내에 소개된 책만 이미 2권이 발간됐다.
먼저 세계적인 출판사(랜덤하우스) 한국법인인 RHK에서 번역•출간한 책 ‘점령하라: 세계를 뒤흔드는 용기의 외침’은 뉴욕에서 발간되는 정치•문학•문화 비평지 ‘n+1(http://www.nplusonemag.com)’의 편집자들이 주촉이 돼 발간했다. 책의 원 제목은 ’Occupy!: Scenes from Occupied America‘이다.
이 책은 월스트리트에서의 시위뿐만 아니라 보스턴, 오클랜드, 애틀랜타, 필라델피아 등 미국 전역으로 퍼진 ‘점령 투쟁‘의 전개상황 등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슬라보예 지젝이나 주디스 버틀러 같은 이론가들이 주코티 공원을 방문해 시위자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던 연설문도 수록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 마치 한 편의 잘 짜여진 다큐멘터리를 보는듯한 느낌이 든다.
북돋움에서 번역 출간한 책 ‘점령하라: 99% 대 1% 월스트리트 점령 인사이드 스토리’은 시위현장의 분위기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책의 저자도 다름 아닌 시위대 ‘자신들’이다. 이 책은 뉴욕의 주코티 공원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모이고, 생활하고, 시위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묘사하고 있다.
윌스트리트 점령운동을 이끄는 실무그룹에서 이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이야기를 책으로 엮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60여 명이 공동 작업에 참여해 마침내 책이 탄생했다고 뒷이야기를 전한다. 책의 제목은 ‘Occupying Wall Street: The Inside Story of an Action that Changed America’다.
오랫동안 비즈니스 현장을 누볐던 나는 이들 책을 들자마자 흠뻑 빠져들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보다 앞선 나라인 미국의 심층부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책에서 배운 교훈은 크게 2가지였다. 우선 미국 주코티 공원 시위가 전 세계를 뒤흔든 힘의 원천은 탄탄한 콘텐츠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또 이를 전 세계로 실어 나른 것은 역시 인터넷이다. 더 정확하게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시위대가 던지는 구호는 즉각 전 세계에 전달됐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승자와 패자의 운명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시위대와 연대한 독립 언론사 기자와 편집자, 그리고 출판사들이 ‘미디어 빅뱅’ 속에서 새로운 스타로 부각되고 있다.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은 주류 언론사들이다. 이들은 하루아침에 설 땅을 잃었다.
글 : 서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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