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기업들이 기업 인수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며칠 전 구글이 메신저 앱의 원조격인 왓츠앱(WhatsApp)을 $1B에 인수하기 위해 협상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왓츠앱은 AllThingsD를 통해 매각 계획이 없음을 밝혔지만, techNeedle의 분석대로 더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미디어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왓츠앱의 거둔 인상적인 성공을 생각하면 구글뿐 아니라 페이스북, 야후 등 많은 인터넷 회사들이 탐을 내는 것이 당연하다.

실리콘밸리의 기업 인수 문화

실리콘밸리에서 자리를 잡고 일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것 중 하나가 기업 인수 문화이다. 인수합병이 매일같이 일어나는데다, 7조~10조원 단위의 굉장히 굵직한 건도 많았고,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인수와 같이 충격적인(shocking) 건들도 많았다. 왜 이렇게 한국과 달리 활발할까 궁금해서 생각해봤고, 그래서 깨달은 것을 2009년 말에 블로그에 한 번 정리한 적이 있다. 당시에 미국에서 기업 인수가 활발한 이유를 1) 표절을 죄악시하는 문화, 2) 비싼 인건비, 3) 발전된 금융 시스템으로 설명했었다. 이 글을 쓴 지 3년이 넘었지만, 지금 생각도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라클은 지금까지 100개에 달하는 회사들을 인수했으며, 그 중에는 조단위 규모의 굵직한 건들도 많다.
오라클은 지금까지 100개에 달하는 회사들을 인수했으며, 그 중에는 조단위 규모의 굵직한 건들도 많다.

HP, Microsoft, 시스코, 애플, 페이스북, 구글, .. 거의 예외 없이 미국의 대형 소프트웨어/하드웨어 회사들은 기업 인수를 통해 성장해 왔고, 지금도 끊임 없이 다른 기업을 사들이고 있다. 내가 속한 회사 오라클도 마찬가지이다. 2012년 한 해동안만 11개의 회사를 인수했으며 그 중에는 인수가가 $1.9B (약 2조원)에 달하는 것도 있다. 지난 2월에도 Acme Packet이라는 회사를 $1.7B라는 거액에 인수했다. 오라클이 지금까지 했던 인수 중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Peoplesoft로서, 액수가 무려 $10.3B(11조원)에 달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다. 오라클은 이 회사 인수를 통해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함으로서 ‘데이터베이스 회사’에서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회사로 탈바꿈했고, 11조원이라는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해당 시장에서 지금까지 큰 이익을 거두고 있다. 그 이후로도, Siebel Systems ($5.9B), BEA Systems ($8.5B), Sun Microsystems ($7.4B)와 같은 큰 회사들을 인수했고, 1994년부터 지금까지 인수한 회사는 총 100개에 이른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마찬가지이다. 작년에 $8.5B에 사들인 Skype를 포함해서 지금까지 150개가 넘는 회사들을 인수했다. 시스코의 인수 리스트 역시 150개가 족히 넘는다. 구글은 앞서 예로 든 회사들보다 역사가 짧지만 2001년부터 지금까지 124개의 회사를 인수했다. (이런 자료를 조사할 때 깔끔하게 정보가 정리된 위키피디아가 참 고맙다.)

오라클이 2012년부터 지금까지 인수한 회사 목록 (출처: 위키피디아)
오라클이 2012년부터 지금까지 인수한 회사 목록 (출처: 위키피디아)

대기업이 기업 인수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오라클’이라는 대기업이 계속해서 회사를 인수해서 흡수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왜 대기업이 기업 인수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지 알 것 같다. 이전에 썼던 글에서 들었던 세 가지 이유도 있지만, 또 한가지 큰 이유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이다. 경쟁이 없는 회사는 없다. 오라클이 진출해 있는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IBM, 그리고 SAP라는 강력한 경쟁자들이 있다. 바로 이전 블로그에서 설명했던 대로 이러한 거대한 기업들이 싸우는 곳은 흡사 전쟁터와 같다. 내가 지금 속한 팀에서는 세일즈포스닷컴(Salesforce.com), 워크데이(Workday)와 같은 회사들과 경쟁하고 있는데, 세 회사 모두 강력한 세일즈 조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엄청나게 치열하다.

바로 이러한 경쟁 때문에 기업 인수가 끝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상황을 전쟁 장면에 빗대에서 생각해봤다.

두 나라가 한창 전쟁중이라고 하자. 적은 매일 새로운 전략으로 공격을 하고, 그 때마다 병사들이 죽어간다. 본부에서는 상대방의 공격에 대처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공격을 해야 한다.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무기의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매일 군인들이 죽는 마당에 밑바닥부터 무기를 연구하고 개발하고 주조할 시간이 없다. 어떻게 해서든 강력한 무기를 사서 빨리 전쟁터로 배송해야 한다. 즉,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제품, 그리고 새로운 회사를 ‘인수’해야 한다.

이렇게 두 나라가 싸우고 있는 동안 먼 곳에 제 3의 국가가 등장했다. 처음엔 무시할만한 수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강해져 이제 두 나라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전에는 본 적도 없는 현대적인 무기를 가지고 나타났다. 전쟁터가 바뀌자, 지형도 변형되었다. 기존에 잘 통했던 무기가 이제는 잘 통하지 않는다. 그런 경우엔 새로운 적이 가진 무기와 비슷한 것을 만들거나, 사 와야 한다.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무기를 처음부터 주조할 시간이 없거나 비용이 너무 많이 들면 빨리 무기를 사 와서 병사들의 죽음을 막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앞서 예로 들었던, 구글의 왓츠앱 인수설이 이에 해당한다. 구글은 검색과 이메일, 그리고 모바일 OS를 장악했지만 메신저 분야에서는 영역이 거의 전무하다. 카카오톡의 성공도 인상적고, 라인이 2년만에 무려 1억 3천명의 유저를 확보한 사례를 보면, 누구나 이 시장이 매우 빠르게 커지고 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메일 대신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글은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의 정보를 이용해서 광고 수입을 올리는 회사이다. 사람들이 이메일과 웹 검색, 그리고 구글 플러스를 떠나 메신저에서 대화를 주고 받고, 메신저를 통해 공유하기 시작하면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는 페이스북도 마찬가지이고, 야후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기존의 인터넷 회사들은 메신저를 직접 만들거나, 이미 인기를 끌고 있는 메신저를 인수해야만 한다.

구글, 페이스북 등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 스마트폰 메신저, 왓츠앱(Whatsapp)
구글, 페이스북 등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 스마트폰 메신저, 왓츠앱(Whatsapp)

한편으로, 자원을 먼저 차지해서 상대방의 자원을 고갈시키기 위한 인수도 있다. 스타크래프트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아무도 차지하지 않은 땅이 있는데, 이 자원을 누가 먼저 차지해서 방어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만큼 적절한 시기의 자원 확보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자원의 선점과 확보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자원의 선점과 확보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ValleyInside에서 언급했던 인스타그램(Instagram)이 그 예이다. 페이스북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소셜 행위’에서 사진 공유가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특히 젊은 세대들이 페이스북이 아닌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스타그램의 규모가 커지자, 페이스북 뿐 아니라 구글과 트위터가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실을 인스타그램 창업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주 현명하게 협상했고, 회사 가치를 일주일만에 5천억원에서 1조원으로 올렸다. 한 발 늦었다가는 구글이나 트위터에 빼앗길 것을 우려했는지, 마크 저커버그는 주말동안 모든 결정을 다 내리고 인수 협상을 맺은 후에 이사회에 이 사실을 알렸다.

기업 인수가 회사의 이미지를 크게 개선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야후는 17세 소년이 만든 Summly라는 서비스를 $30 million이라는 거액에 인수했다. 매출도 없고, 사용자도 많지 않은 앱을, 그리고 무엇보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학생이 만든 앱을 인수했다는 점에서 전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진짜 인수 이유는 아이폰의 시리(Siri)와 비슷한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SRI International이라는 원천 기술을 가진 회사와 계약하는 과정에서 Summly를 같이 딸려온 것으로 밝혀졌는데, 어쨌거나, 임정욱님이 블로그에서 쓴 대로 야후는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고, 기업 이미지도 크게 향상되었다.

Yahoo에 $30 million (약 300억원)에 인수된 회사, Summly
Yahoo에 $30 million (약 300억원)에 인수된 회사, Summly

한편, 어떤 회사를 인수할 것인가 자체가 회사의 성장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세일즈포스닷컴이라는, 창업때부터 눈부신 성장을 반복해 클라우드 CRM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회사가 있는데, 아래는 세일즈포스닷컴이 했던 가장 최근의 Earnings Call (분기 투자 설명회)에서 노무라 증권의 Rick Sherlund와 Marc Benioff가 주고 받은 내용이다.

Rick Sherlund – Nomura Securities

Mark, just a follow-up on the Marketing Cloud. If we look at Oracle’s acquisition of Eloqua, I’m wondering if you could just touch on what the holes are you may see in your marketing strategy based on that and is this something that you can fill with just some small acquisitions or does it require something bigger? (마케팅 클라우드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해 보죠. 오라클이 Eloqua를 인수했습니다. 이를 고려했을 때, 세일즈포스닷컴이 구멍을 메우기 위해 크고 작은 인수를 할 계획이 있는지요?)

Marc Benioff – Chairman and Chief Executive Officer

Well, I really think that we’re going to buy small and big. We’re going to be aggressive. We need to look at everything and I think that we made some smart moves by buying the two leaders and we’ve bought other companies too. You probably saw we bought this incredible start up as well last year in this area called GoInstant and we have our first customers now onboard in the beta of that, which is this amazing co-browsing technology which has the ability to instantly share my website across devices. We’ve purchased a lot of different types of companies. (예 물론 크고 작은 회사들을 인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공격적인 성장을 하고 싶습니다. 최근 두 개의 큰 회사를 인수한 것은 올바른 결정이었습니다. 작년에도 GoInstant라는 스타트업을 인수한 적이 있지요. 지금까지 많은 회사들을 인수했습니다.)

한편, 세일즈포스닷컴을 가장 혁신적인 회사로 선정한 포브스(Forbes)지는, 그동안은 세일즈포스닷컴이 내부 개발에 의존했으나 이제 Radian6와 Buddy Media를 사기 위해 $1 billion (약 1조원)을 썼다고 밝혔다.

His rationale: “We couldn’t afford to wait.” The initial spark was a video Benioff watched on YouTube showing Dell‘s “social media command center” where the computer maker used Radian6 to watch its torrent of social mentions. Dell is a big Salesforce customer and Benioff is close with CEO Michael Dell. “Game over, I thought. This company is doing exactly what we should do,” says Benioff.” (베니오프는 델 컴퓨터의 소셜 미디어 센터에서 Radian6 기술이 활용되고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이거야. 이 회사가 우리가 하려는 그것을 하고 있어”라고 이야기했다.) – Forbes

만드는 게 더 싸고 쉽더라도 인수를 하는 편이 유리한 경우가 있다. 사실,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꼭 인수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소프트웨어라는 게 워낙 특허로 보호하기가 어렵고 과학기술 분야에 비해 특허를 피해가기가 쉽기 때문에, 그냥 베껴서 만드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미국처럼 ‘창의적’인 제품에 큰 점수를 주고 베끼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나라에서는, 섣불리 따라 만들었다가는 망신만 당하고 별로 재미를 못 볼 가능성이 크다. 페이스북이 10대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한 스냅챗(Snapchat)을 보고 그대로 베껴 12일만에 포크(Poke)라는 앱을 만든 사례가 그렇다.

Poke vs. Snapchat: 두 앱의 기능은 놀랄 만큼 똑같다.
Poke vs. Snapchat: 두 앱의 기능은 놀랄 만큼 똑같다.

페이스북씩이나 되는 회사가 만든 앱이니 스냅챗을 죽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포크와 스냅챗의 차이가 별로 크지 않다고 했고, 시간이 지난 지금, 결국 페이스북은 별로 재미를 못 거두고 오히려 스냅챗의 광고만 해준 셈이 되어버렸다. 돈이 들더라도 스냅챗을 인수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려운 점들(Challenges)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하고 기업 인수 소식이 발표되지만, 야심찬 의도와 달리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참 많다. 역사상 최악의 합병으로 언급되는 AOL과 타임 워너의 딜이 그러했으며, 가장 최근에 있었던 대 참사는 HP의 Autonomy 인수였다. HP의 CEO였던 마크 허드(Mark Hurd)가 이사회로부터 불명예스럽게 해고된 이후 새 CEO를 맡은 SAP 출신의 독일계 임원 리오 아포테커(Leo Apotheker)는, 회사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싶었는지, 컴퓨터와 프린터 제조업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회사를 돌려놓기 위해 무려 $10.3 billion (11조원)을 주고 영국계 ‘빅 데이터’ 회사인 Autonomy를 인수했다. 1년이 좀 지나, HP는 그 중 $8.8 billion (9조원)을 손실 처리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리오 아포테커가 해고되고 이베이 출신의 여성 임원인 맥 휘트먼(Meg Whitman)이 CEO가 된 이후였다.

인재 유출 문제도 있다. 피인수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창업가들과 임원들이다. 이들은 인수 후 가장 큰 돈을 버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때로는 말단 직원들까지도 백만장자가 된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돈방석에 앉으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겠는가. 세계 일주를 한 후 자신의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인수 계약서에 2년 또는 4년이 지난 후에야 주식을 모두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재 유출을 막기는 힘들다. 설사 회사에 속해 있더라도 이미 마음이 떠났을 가능성이 크다.

문화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나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가 오라클에 인수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는데, 엔지니어에게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하는 썬과는 달리, 항상 사업 타당성을 검토한 후 결정을 내리는 오라클의 문화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러한 문화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조심을 하기는 하지만, 결국은 한 방향으로 통합해야 하므로 막을 수는 없다.

또한, 기업의 성장을 인수에 의존할 경우 내부 혁신이 더디어질 수 있다. 직접 팔 걷고 나서 밤을 세워 신제품을 개발하는 대신, 혁신적인 회사들을 인수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 방식이 오래 가기는 힘들겠지만, 사실 꽤 많은 회사들이 돈을 이용해서 수명을 연장하고 있다.

한국은?

한국에서도 물론 기업 인수가 활발하게 일어난다. 블룸버그는 2013년 한국의 M&A 시장 규모가 7% 증가한 63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2013년 1분기에는 코웨이, 아르셀로미탈광산, 네파(NEPA), 인천터미널부지, STX OSV 등의 회사가 6000억원 ~ 1초 2000억원 사이의 규모로 인수되었다. 한국 기업이 외국 기업을 인수하는 사례도 많다. 필라코리아가 컨소시엄을 만들어 타이틀리스트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투자은행측에서는 ‘먹잇감’만 많아보이지 실속이 없어 한국은 M&A의 레드 오션이라고도 한다.

여전히 한국의 경제 규모에 비해 M&A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들이 많고 규모가 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 그럴까? 지난 블로그에서 언급했던 대로 인건비가 미국에 비해 낮고, 제품 표절에 대해 보다 관대하며, 금융 시스템이 미국만큼 발전하지 않았다는 점 등도 분명 이유이겠지만, 또 한 가지 이유는 한국의 대기업들이 대부분 재벌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재벌’은 그 정의대로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 활동을 한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삼성 그룹이 쓰는 기업용 소프트웨어는 삼성 SDS에서, LG 그룹의 소프트웨어는 LG CNS에서, SK 그룹의 소프트웨어는 SK C&C에서 만들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의 사내 메신저인 ‘삼성메신저’, 인트라넷인 ‘마이 싱글’, 지식 관리 시스템인 ‘아리샘’은 모두 삼성 SDS에서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SK C&C의 소프트웨어가 품질이 좋다고 해서 삼성에서 그것을 도입해서 쓰는 경우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다른 회사들이 재벌의 산하 기업이라고 하면 문화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그 기업을 인수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직접 만들어서 쓰는’것에 익숙하다보니 다른 기업을 사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한편, K Cube 벤처스의 이동표 심사역은 ‘한국 소프트웨어 벤처시장에는 왜 M&A가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글에서 대기업이 인수를 해주지 않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애초에 M&A 할만한 기술 기반 기업의 수가 적고 대기업의 주목을 받을 만큼 스타트업이 성장하기에는 한국 시장의 크기가 작은 것이 이유라고 했는데, 그 관점도 충분히 공감이 된다.

어쨌거나, 경제 규모가 커지고 기업 문화가 선진화됨에 따라 한국에서 기업 인수 합병 시장이 더 커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글 : 조성문
출처 : http://bit.ly/17ux2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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