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를 틈타, 봄비가 내리는 에반스톤의 한 까페에서 잔잔한 웃음이 있는 가벼운 글을 끄적여볼까 한다.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여 좋은 성적으로 국민 영웅으로 발돋움하고 있을 즈음, 한국어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혀가 꼬이는 듯한 한국어 발음을 선사하여 국내 네티즌들의 뭇매를 받은 사건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한참이 지나 박찬호 선수가 착용하고 있던 치아보호기구 때문에 그런 발음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미국에 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발음을 굴리냐는 둥의 비판으로 꽤나 떠들석했다.
맹렬한 추위와 바람으로 가슴을 시리게 했던 겨울이 지나고 이제 바야흐로 이 곳 에반스톤에도 슬슬 봄기운이 다가오고 있다. 물론 3일 전쯤인 4월 중순에 우박을 동반한 눈이 내려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했지만, 이제 차츰 섭씨 10도 이상의 기온을 보이는 듯 하다.
하지만 MBA 2학년생들에게 봄이란 그리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학교에서 졸업과 관련된 메일이 하나 둘씩 날라오고, 1학년들이 Farewell Party 날짜를 잡겠다고 일정을 물어보곤 하고, 이제 몇 주 후면 뒤늦게 맞이했던 학생신분과 영영 작별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시간만 나면 맥주 파티를 하고, 겨우내 보강한 체력을 확인하러 골프장을 드나들고, 한 주가 멀다하고 주말에 동기들끼리 근교로 엠티를 떠나곤 한다.
이렇게 졸업을 앞둔 선배들이 한국에 돌아가 일하는 모습을 가끔 상상할 때면, 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짧은 2년간의 미국생활에서 어느새 몸에 익어버린 습관들을 자신도 모르게 선보일 것 같은 생각 때문이다. 여기서는 미국 유학생들, 특히 나이들어 낯선 나라로 공부하러 떠난 MBA들이 고군분투하며 적응하기 위해 애쓰다가 몸에 익어버린 습관들 5개를 나누어볼까 한다. 물론 한국에 돌아가서 생활하다보면 1년 내에 없어질 습관이겠지만, 혹시나 회사에서 이런 행동을 보이는 갓 졸업한 MBA들을 보면 너무 미워하시지 말라는 의미에서…
1. Sorry… Thanks…
사실 한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몸을 부딪혀도 그냥 한번 뒤돌아보고 끝나기 일쑤고, 식당 같은 곳에서 서빙하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나는 철이 들고나서부터 특히 서비스 업종에 계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드리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럴 경우 자리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어색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생활하자마자 가장 먼저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말들이 Sorry와 Thanks 이기 때문에 막 귀국한 졸업생들의 경우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남발할 가능성이 클 듯한데, 그럴 경우 어색해 하시지 말고 함께 감사합니다를 말씀해주시는 건 어떨까.
2. 과도한 손동작
미국인들이 연설이나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모습을 보면 손을 상당히 많이 이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표현력이 풍부해서이기도 할 것이고,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일 것 같기도 하다.
영어가 편하지 않은 외국인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표현을 빨리 말하지 못해서 답답할 때, 아니면 미국인들처럼 자연스럽게 영어를 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을 때, 과도한 손동작을 해가며 영어로 얘기하곤 한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공으로 저글링을 하는 듯이.
몸으로 익힌 습관은 오래간다고 하지 않았나. 한국어로 얘기할 때도 과도한 손동작을 할 가능성이 다분하니 그냥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3. Quote
제목만 보고 피식 웃을 분들이 있을 듯 하다.
바로 이렇게 양손으로 따옴표를 만드는 듯한 동작인데, 미국인들과 대화할 때 상당히 자주 보이는 제스쳐이다. 외국어를 가장 빨리 배우는 길은 모방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냥 영어를 잘 하고 싶어서 생긴 부작용이니, 한국에서 이런 분을 보시면 그냥 귀엽게 봐주시길 바란다.
4. “Good question”
미국에서 수업/강연을 듣다보면 여지없이 학생들은 수많은 질문을 하고, 교수/강연자들은 그 중 한 두개 질문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Oh, that’s a good question.” 라는 말로 대답을 시작하곤 한다. 진짜로 질문이 좋아서 그럴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냥 한번쯤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하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대답하기 전에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하는 말인 듯도 하다.
문제는 이것을 한국말로 옮기면 “아, 좋은 질문입니다.” 라는 것이다. 질문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한국 문화 때문에 어색한 것일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무엇을 물어보았을 때 이 말을 듣는다면 상당히 웃긴데, 그냥 ‘아.. 이 분이 지금 생각할 시간을 벌고 있구나’ 라고 너그러이 봐주시기 바란다.
5. 어디서든 Selling 하기
겸손이 미덕인 동양문화에서 자신을 셀링하는 것은 참 부담스럽다. 하지만 웬걸. 너도나도 잘났다고 외치는 MBA 동기들과 학기 내내 그룹미팅을 하고, 내가 왜 대단한 사람인지 수도 없이 얘기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리크루팅 시즌을 보내고 나면, 겸손은 악이요, 셀링은 곧 선이 되고만다.
혹시나 주변에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잘난체하는 MBA를 보시거든, ‘당신 MBA에서 고생 좀 하셨군요’ 라고 생각하며 쿨하게 씨익 웃어주시길 바란다.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mbablogger.net/?p=5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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