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에서 일하다보니 스타트업 밸류에이션 (valuation)을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종종 있다 . 물어보시는 분들은 잔뜩 호기심 어린 눈으로 뭔가 멋진 대답을 기대하시는데 사실 속시원한 대답이 없어서 은근 미안할 때가 많다. 밸류에이션이라는게 무슨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정답도 없으며, 경우에 따라 천차 만별이니 뭐라 말하기 어렵다. 내가 산정한 밸류에이션이 맞는다는 보장도 없고, 경험있는 사람이 한게 꼭 더 정확하다는 보장도 없다. 하나의 상품 가치를 매기고 적정 가격을 정하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여러 상품, 서비스, 사람이 엮여 있는 하나의 기업은 어떻겠는가. 큰 기업을 밸류에이션 하는 것은 MBA에 한 과목으로 있을 정도다. 스타트업 밸류에이션은 그보다는 좀 더 간단하겠지만, 이것도 꽤 여러가지 요소가 있어서 일일이 나열할려면 블로그를 몇번 정도는 써야 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한가지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최종 밸류에이션은 사람들간의 네고라는 점이다. 즉, 주식을 팔고 사는 사람이 특정 밸류에이션에 만족하고 거래가 이루어지면 그게 그 회사의 현재 가치다. 예를 들어, 펀드 레이징을 하는 사람이 다급해서 낮은 가격에 주식을 팔면 회사 매출이 지금 얼마이건 간에 그 낮은 가격이 현재 밸류에이션이다. 사람들간의 네고이니 전혀 정량적이지 않은 ‘감정’이라는 놈도 종종 작용하게 된다. 그러니 얼마나 ‘과학적’이겠는가?
위 제목에는 “밸류에이션은 어떻게 하는가?”로 썼지만, 실제로는 “밸류에이션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가 좀 더 현실성 있는 질문이다. 밸류에이션은 혼자 책상에 앉아 엑셀돌려서 값을 산출해 내는 것이 아니고 투자를 하는 사람과 투자를 받는 사람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밸류에이션이 결정되는 방법은 좀 경우마다 다른데 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방법 몇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헌데 명심하시라 – 이런 저런 방법이 있지만 결국은 네고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돈주고 지분 먹기
마땅한 용어가 없어 이렇게 불러봤다. 회사의 아주 초창기에는 사람과 아이디어만 있고 아직 상품도 매출도 없다. 그러니 뭔가 밸류에이션의 근거로 삼을 만한 껀덕지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를 한번 보자. 3명으로 구성된 창업자 팀이 있는데 그들이 가진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지고 첫 상품을 만들어내는데까지 필요한 돈이 20억이다. 여기에 관심을 보이며 투자하려는 한 VC가 찾아와서는 “우리가 20억을 투자해 줄 수 있고 그 댓가로 지분 40%를 원한다”며 제안을 해왔다. 주식을 파는 입장인 창업자들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여기서 바로 밸류에이션이 결정이 난다 (이경우, 포스트 머니 기준으로 20억 나누기 0.4 해서 50억 밸류에이션). 이렇게 초기 (Series A) 투자를 할때 실리콘밸리 VC들은 보통 요구하는 지분율이 대충 있다. 이 회사가 잘 되었을 때 의미있는 exit을 하려면 보통 20% 안팎으로 지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들이 있어서, 나중에 희석될 것을 감안, 초기에 30~40% 정도 요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감이 오는가? 전혀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 물론 창업자가 과거에 성공 경험이 있다거나, 업계에서 아주 잘나가는 사람이거나 하면 당연히 밸류에이션이 높아지겠지만, 많은 경우에는 초창기에 필요한 자금과, 투자자가 요구하는 지분율 이 두가지로 거의 대충 결정나버린다. 그럼 혹자는 밸류에이션을 높이기 위해서 “우리 팀은 초기 자금이 1000억이 필요합니다”라고 하면 되지 않냐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그런데 VC들은 어떤 산업/사업이 돈이 얼만큼 들어가는지를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뻥은 잘 통하지도 않을 뿐더러 VC들이 초기에 그렇게 큰 돈을 투자하지도 않는다. 모바일 앱만드는 신생 회사가 처음부터 1000억을 펀드레이징 한다고 하면 VC들은 아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대부분 도망갈 것이다.
사용자 수 기준
인터넷 기업들이 많이 생기면서 사용자 수를 기준으로 삼는 밸류에이션 방법도 흔히 본다. 즉, 펀딩을 받으려는 회사가 이미 제품을 출시하여서 사용자가 어느정도 있을 경우, 이를 기준으로 가치를 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월간 사용자가 50만명이고, 1인당 가치를 2만원으로 친다면, 50만 곱하기 2만원 = 100억원으로 계산 할 수 있다. 내가 2만원으로 예를 든 숫자는 ‘user multiple’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 숫자는 업종에 따라 다르고 같은 업종이라도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르며, 또 회사가 성장 중이면 더 쳐 줄 수 밖에 없는 변동이 심한 숫자다. User multiple을 가늠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동종 업계 상장 회사의 시가 총액과 그 회사의 사용자 수를 조사하면 된다. 예를 들어, 현재 페이스북의 시총이 $64B 이고 월간 사용자가 대략 1B (10억) 정도이니, 페이스북의 user multiple은 $64불이다. 상당히 과학적인 것 같지만 실제는 초등학교 수준의 산수 밖에 안된다 (실토하자면 VC 생활 5년 하는 동안 엑셀 돌려서 복잡한 모델로 밸류에이션을 도출해 낸 적이 한번도 없다). User multiple이 도입된 계기는 인터넷 기업들이 초기에 하도 돈을 못벌어서 였다. 돈을 벌고 있다면 수익에 근거해서 기업 가치 산정을 할텐데, 사용자는 많아도 비지니스 모델이 없어서 돈을 못벌고 있으니 수익이나 매출 대신 사용자 수를 그 대안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한 예로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에 인수 발표가 나던 시점에 월 사용자가 약 3천만 정도로 알려져 있었고, 매출은 하나도 없었다. 인수 가격을 $1B 이라고 가정하면 (나중에 페이스북 주식이 떨어져서 실제는 이보다 낮음) 대략 인스타그램 사용자 1명의 가치를 33불로 보는 것이다. 매출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매출액 기준
스타트업이 만약 어느정도의 안정적인 매출이 있다면, 이걸 밸류에이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소위 revenue multiple로 불리는 게 있는데 현 연간 매출액에 몇배를 쳐주는 가 하는 것이다. Revenue multiple도 인더스트리마다 다르고, 경기 상황따라 변동을 타는 등 늘상 변하는 숫자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 보자. 현재 애플의 매출은 연간 약 $165B 이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시가 총액은 $391B 인데 이중 현금 보유액 $137B을 빼고 나면 순수 enterprise value는 $254B이다. 이것을 매출액으로 나누면 애플의 revenue multiple은 1.54 정도의 숫자가 나온다 (현금 보유액을 빼는게 맞냐는 논외에서 일단 제외한다). 애플의 주식이 저평가네 고평가네 말이 많지만, 1.5 정도의 revenue multiple은 다른 인더스트리에 비해서 낮은 편이다. 그렇다고 애플 주식이 지금 싸니 많이들 사두시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마시길. 암튼 매출액이 있는 스타트업은 일단 revenue multiple로 한번 대충 밸류에이션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도 매출이 생긴지 얼마 안되어서 고정적이지 않다든지 하면 별 의미 없는 게 되고 만다.
이익 기준
스타트업이 운좋게도(!) 이익을 내고 있다면 밸류에이션에 좀 더 객관적인 자료가 생기는 셈이다. 주식 시장에서 P/E Ratio 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게 별게 아니고 현재 회사의 가치를 순익으로 나눈 값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profit multiple 같은 것이다. 이 녀석도 위와 마찬가지로 나라마다 다르고, 경제 상황마다 다르며, 당연히 인더스트리마다 다르다. 하지만 주식시장등을 통해서 P/E ratio 들에 대한 자료는 많아서 참고할 만한게 많다. 지금 찾아보니 구글은 약 24, 인텔은 11.7 정도이다. 이익을 기준으로 밸류에이션을 하는 방법이 그나마 좀 객관적이긴 한데, 실용성이 떨어진다는게 문제다. 왜냐하면 스타트업중에 이익을 내는 회사가 별로 없고, 이익을 내는 스타트업은 펀드레이징을 할 필요가 별로 없으니 밸류에이션을 할 일이 없다 (상장되거나 M&A가 아닌한).
저번 밸류에이션으로 퉁치기
우리 속담중에 ‘첫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스타트업도 첫투자가 그만큼 중요하다. 스타트업이 재투자 (Series B)를 받게 될 경우, 항상 저번 1차 투자 (Series A) 밸류에이션이 커다란 기준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Series A에서 50억원의 밸류에이션으로 투자를 받은지 2년 후에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고 제품을 출시해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기 시작할 경우, Series B에서는 당연히 50억원 이상의 밸류에이션으로 투자 받을 가능성이 크다 (‘up round’라 불림). 반대로 상황이 악화되었다면 이전보다 더 낮은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받는 소위 ‘down round’ 라는 것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혹은 그 중간쯤이여서 그럭저럭 버텨온 경우에는 지난 번과 같은 밸류에이션으로 퉁치는 ‘flat round’를 하기도 한다. 보시다시피 모든게 저번 밸류에이션 기준이다. 저번에 투자 받은 돈으로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느냐, 그만한 가치를 창출해 냈느냐가 주요 관건이다. 그럼 첫 밸류에이션이 높으면 사업가에게 무조건 유리한 것이냐? 그것도 아니다. Series A 밸류에이션이 너무 높으면 Series B 투자를 검토하는 VC는 굉장히 부담된다. ‘저 회사 처음부터 저렇게 높은 가격이였는데 지금은 얼마나 높게 부를까?’ 하며 지레 짐작하고 꺼리기 때문이다. 가격을 낮추는 down round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 있지만, 업계의 관례상 기존 투자자들이 down round는 대부분 꺼려한다. 그러니까 첫단추가 중요한데, 요는 너무 낮게 꿰지도 말고, 높게 꿰지도 말고, 적당한 위치에 꿰는게 최고다.
기타
이밖에도 몇가지 더 언급할 수 있는게 있다. 나의 계산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제 3의 투자자가 나타나서 높은 밸류에이션을 부르며 물을 흐려 버리면 경우에 따라 울며 겨자먹기로 거기에 따라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소위 ‘핫 딜’일 경우 투자자들끼리 이렇게 bidding이 붙어버리면 밸류에이션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다. 전혀 과학적이지 않고, 그냥 부르는게 값이다. 또 한가지 방법은 최근에 펀딩을 받았던 동종 업계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을 참고하는 것이다. ‘내친구가 창업한 모 게임회사가 저정도 가격에 펀딩 받았으니, 우리 회사도 그쯤은 되겠지’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도 그 한 예이다. 뭐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회사마다 속사정은 다 다르니 단순비교는 항상 위험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마쳐야 겠다. 요는 밸류에이션을 대충 가늠해 보기 위해서 참조할만한 방법은 이런 저런 것들이 있지만, 정확한 방법은 아무것도 없으며 결국은 쌍방간에 네고 하기 나름이라는 거다. 그리고 펀딩 받을때 밸류에이션이 높다고 지금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되려 높은 밸류에이션이 위에선 말한대로 나중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사업가 입장에서 밸류에이션이 크면 클수록 무조건 좋은 때는 회사가 상장되거나 M&A 될 때이다. 그 전에는 현금화가 안되는 그저 장부상의 가치일 뿐이다.
심화학습
칸 아카데미에 Pre-money, Post-money 같은 개념을 예를 들어서 아주 쉽게 설명한 비디오가 있다. 밸류에이션의 기본을 10분만에 터득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강의이다.
글 : 윤필구
출처 : http://liveandventure.com/2013/04/27/valuation1/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