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스퀘어 윤필구 필진의 ‘썬 마피아‘를 읽으면서 국내에도 크고 작은 벤처 네트워크가 저마다 유기체처럼 그 영향력을 발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문득 스치는 생각, ‘과연 국내에는 어떤 네트워크가 살아숨쉬고 있을까?’
그 중에 네트워크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Bon Angels, VCNC, I&Combine, moglue……. 국내 벤처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회사들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는 V-Forum은 2010년 6월에 시작한 벤처 기업인들의 엘리트 커뮤니티이다. V-Forum은 서울대학교와 KAIST에서 수 년 동안 벤처창업 강의를 하던 배인탁 교수가 학생들이 하나 둘 졸업 후 창업을 하면서 강의만으로 도움을 주는 데에 한계를 느끼고서 제자들에게 지속적인 정보와 협업 기회를 주고자 자연스럽게 탄생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 회원의 폭이 넓어져 크게 3개의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초기 벤처 CEO 및 임원들이 가장 큰 그룹을 이루고 있으며 예비 창업가 그룹(학생이나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직장인)과 전문가 그룹(투자자, 변리사, 컨설턴트, 언론인, 기타)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달 첫 째주 화요일마다 오프라인 모임이 있으며 패널 토론, 데모데이, 워크샵, 특강 등 다양한 방식으로 V-Forum을 진행한다.
무엇보다 V-Forum을 창립한 배인탁 교수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인터뷰를 위해 서울대학교를 찾았다.
이과생으로 서울대 기계설계학과에 입학하여 KAIST 대학원에 진학할 때에도 기계공학과 학생이었는데 흥미롭게도 제일 마지막 학위는 MBA이다. 특별한 계기라도?
■ 경영 지식이 없으면 회사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곤란한 점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
배인탁 교수(V-Forum 창립자, Summit Partners 대표, 서울대학교 객원교수 /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대학원 로봇공학 박사,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 MBA 석사) : 첫 직장인 대우엔지니어링에 근무하면서 당시 회사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펜실베니아주립대학교 로봇공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박사 학위를 수료하고 1989년도에 회사에 복귀하여 시스템자동화 부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KAIST 전기전자학과와 공동으로 오버 헤드 크레인을 무인화하는 신기술을 개발하여 세계 최초로 무인화에 성공하였다. 당시 신기술 프로젝트였던 공장 자동화 사업을 시작하여 포항제철(現 포스코) 공장 자동화 사업 등 큰 프로젝트를 몇 건 진행하면서 회사에 최대의 수익을 안겨주었다.
프로젝트 매니저(PM)로 프로젝트를 하면서 느낀 건 경영 분야의 지식을 쌓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재무제표 하나 볼 줄을 모르니 ‘이건 안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근무가 끝나고 저녁 시간에 틈틈이 MBA 진학 준비를 하였다. 반 년 정도 준비하면서 하버드, 스탠퍼드, 와튼 등 6곳에 원서를 냈고, 에세이를 열심히 쓴 덕분에 6곳 모두에서 입학 허가 통보를 받았다.
어디를 가야 좋을지 고민했다. 박사 학위를 하면서 미국 동부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서부에 살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하버드는 녹록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탠퍼드에 입학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나중에 학교를 다녀보니 스탠퍼드도 녹록지 않기로는 마찬가지더라.(웃음)
얼마나 녹록지 않은 과정이었는지 상상이 잘 안 된다. 좀 더 이야기해달라.
■ 일주일에 1,000 페이지 정도는 읽어야 한다는 말에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아
1993년 8월, 스탠퍼드에 입학하고 보니 ‘내가 여기서 학위를 잘 마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전세계 Top 1%의 학생들이 모여있었고, 난 그들의 평균 연령보다 10살이 더 많았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디렉터가 그러더라. 강의를 따라가려면 교재 등 관련 자료를 일주일에 한 1,000페이지 정도는 읽어야 한다고. 난 처음에 농담인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사실이더라. 수업 전에 누구보다 열심히 읽어갔는데 수업시간 5분이 지나니 내가 준비한 건 모두 끝나버리고 학생들 간의 치열한 토론(debate)에 들어가더라. 황망한 경험이었다.
조직행위, 마케팅 강의의 경우 대부분의 시간이 토론으로 이루어졌고, 얼마나 많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논리적으로 비판하는지가 학점을 좌우하는 학습 시스템이었다. 미국 유학 경험이 있어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토론(debate)은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회계 과목도 절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미 수강생의 4분의 1이 CPA였다. 강의에서는 재무제표 하단에 있는 주석 갖고 이야기하더라. 나는 의미도 모르는. 반대로 재무 과목은 수학에 가까웠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경쟁이 안되었다. 입학 후 일 년동안은 고생을 많이 하였다.
그 일 년이 지난 후에는?
■ 실리콘밸리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눈을 뜨게 돼
실리콘밸리 한복판에 있는 학교에 다니면서 매주 수많은 벤처 기업가들을 만나고 창업자인 급우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느낀 건, ‘지금까지 내 시야가 정말 좁았구나’였다. 공학 박사도 하고, 실제 필드에서 큰 프로젝트를 해내면서 인정을 받았지만 아직도 내 시야가 이렇게 좁고 세상은 넓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생생한 기업가정신을 배우면서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 대기업 경영전략 팀장을 시작으로 벤처캐피탈과 통신사 대표로 활동하며 10여년간 금융과 벤처 분야에 경력을 쌓았다. ‘서밋파트너스(Summit Partners)’ 창업은 그 결실이 되는 것인가?
■ 벤처기업가들에게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는 건 한계가 있어 창업하게 돼
투자금융인으로서, 벤처기업인으로서 활동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코칭을 통해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는 건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 서밋파트너스를 창업하고 본격적으로 컨설팅을 제공하고 2010년도부터는 소규모 투자도 병행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2006년도부터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 벤처를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받아 벤처창업 강의를 시작하였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졸업하고 창업을 하기 시작했다. 날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학생들을 하나로 묶어 네트워킹을 시켜줘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V-Forum은 그렇게 졸업한 제자들을 위주로 결성되었다.
V-Forum이 그동안 서울대학교에서 모임을 갖다 보니 서울대생만 가입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있는데 그건 오해다. 오히려 다양한 구성원이 우리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V-Forum은 유망한 벤처기업가 모두에게 열려 있는 모임이고 좋은 네트워크로 성장하고 있다. 나는 V-Forum 회원 중에서 ‘대박 비즈니스’가 많이 나와야 하고 성공한 벤처기업가들은 V-Forum으로 돌아와 자신이 번 돈의 10분의 1을 후배들에게 투자하라고 늘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벤처 생태계의 작은 선순환이 이뤄진다면 그게 궁극적인 V-Forum의 지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편 매년 3건 정도 투자를 하고 있는 엔젤투자자로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좀 더 많은 투자를 하려고 생각 중이다.
V-Forum을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 억울한 일로 좌절하던 청년에게 또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 작은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
V-Forum 초기에 포럼에 자주 나오던 어떤 청년이 나에게 면담 신청을 했다.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바로 여기서 면담을 했었다. 친형과도 같이 따르던 사람과 같이 힘을 모아 창업을 했던 회사에서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해 법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털어놓는 청년에게서는 배신감, 좌절감, 울분과 분노가 뒤엉켜 묻어나왔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가 그 청년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30 정도 되었다고 했다.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기에는 이 친구, 참 재능이 많고 젊은 친구더라. 그래서 내가 이렇게 조언해주었다.
“기나긴 소송의 과정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과정입니다. 앞 길이 9만리 같은데, 과거에 매몰되어 사느니 미래를 위해 사는 게 낫지 않겠어요?”
청년이 조용히 있더니 한참만에 그러더라. 나를 찾아오기 전에도 변호사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었다고. 그런데 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 대응을 해야 효과적이라고 이야기해준 사람은 많았는데, ‘미래를 보라’라고 이야기 해준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어쩌면 별 거 아닌 이야기이지만, 한 곳만을 바라보던 청년에게 현재 상황을 극복할 ‘또다른 문’이 있다는 걸 알려준 셈이었다.
그 후에도 가끔 연락이 왔다. 그 청년은 지금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 청년 뿐만 아니라 다른 창업가들에게도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을 것 같다.
■ 글로벌 시장을 봐라, 팀빌딩 자체에 공을 들여라
두 가지가 있겠다. 첫 째는 글로벌 시장을 봤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글로벌 시장에 꼭 나가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해외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보면서 시야를 넓히라는 말이다.
둘 째는 팀빌딩 자체에 엄청난 공을 들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팀 구성이 잘못 되어서 결국 갈등이 일어나거나 기업이 성장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 어렵더라도 직무에 가장 적합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아서 협업하는 게 좋다.
‘명문대 경영학과 4명이 모였다’? 같은 시야와 같은 논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팀을 만들면 내부의 만장일치는 잘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다양성이 없다. 벤처의 생명은 다양성에 있다. 다른 전공, 남녀비율과 국적도 섞여 있으면 좋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데 있어 첫 번째 기준이 ‘어떤 팀이냐, 어떤 사람들이냐’이다. 거기서 이미 60%가 결정된다.
투자 기준의 절반 이상이 팀에 있다고 했는데, 사업의 반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사업은 ○○○이다’라고 정의내린다면?
■ 사업의 반은 운이다. 그러나..
사업의 반은 운이다. 솔직히 말해서 운이다. 그렇다고 운만 기다리면 되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이 있다. ‘대천명’이 운에 해당하는데, 그렇다면 ‘진인사’를 먼저 해놓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개 창업자들이 그걸 못한다. 비슷하게 흉내내고, 비슷한 ‘껍데기’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본질을 파고들어가, 끝까지 파고들어가서 본질을 갖고 씨름을 해야 한다.
이런 말이 있다. ‘The game is not over until it’s over’. 사람들은 쉽게 포기한다. 인생을 길게 보고서 하나 하나 쌓아나가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은 한 방이다’, 이런 말은 진짜 나쁜 말이다.
꾸준함을 갖고 지식과 경험을 쌓아나가려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누구나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시련은 온다. 하지만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언젠가는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그 때까지 힘든 상황을 견뎌내기만 한다면,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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