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이란 무엇일까요?
많은 배움이 있어야 하고 재미가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읽는 이의 기대에 부응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기대’라는 것이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좋은 책을 고르는 것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래서 수박을 살 때 조금 맛보는 것처럼 서점에 나가서 책을 미리 살펴보고 사게 됩니다.
최근 논란이 된 책 사재기를 통한 베스트셀러 만들기는 온라인 서점으로 책 유통의 패권이 넘어간 뒤에 출판업계에 소문으로 떠돌던 이야기여서 개인적으로도 가급적이면 베스트셀러는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고 나름 유명한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도 역시 외면을 하다가 최근에야 읽으면서 깊은 공감을 하게된 책입니다.
이 책을 외면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저자인 김정운 교수님이 TV에 자주 나오기 때문입니다. TV 등의 매체에 자주 나오는 교수님 중에 빈수레를 본 적이 너무나 많았기에 이 분 역시도 빈수레구나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김정운 교수님의 학문적인 성과나 깊이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기에 그 분이 빈수레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보다 훨씬 나에게 더 공감이 가는 책이었습니다.
저자는 심리학 전문가답게 남자의 물건에 대해서 남자들을 인터뷰하고 분석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남자의 물건이라고 하면 그 물건을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저자는 남자들의 애장품(?)을 통해서 남자들을 분석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 사회의 문제는 불안한 한국 남자들의 문제다. 존재 확인이 안 되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하면서 ‘ 불확실한 존재로 인한 심리적 불안은 적을 분명히 하면 쉽게 해결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한국 남자들이 존재의 불안을 느끼는 것 중 하나로 자신의 존재의 근거를 확인할 것이 제대로 없이 ‘사회적 지위’와 같이 불안한 것으로 존재확인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사회적 지위는 반드시 사라지기 때문에 ‘그토록 위세 당당하던 이들도 은퇴하는 그 순간부터 바로 헤맨다. 은퇴 후 불과 몇 달 사이에 표정이나 태도가 어쩌면 저렇게 초라해질까 싶은 경우를 자주 본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한국 남자들은 말귀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자신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도대체 뭘 느끼는지 알아야 타인과 정서 공유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자신의 내면에 무지한 이들에게 나타나는 결정적인 문제는 판단력 상실이다. 인지능력은 멀쩡하지만 보통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아주 황당한 결정을 하게 된다. 돌아보면 주위에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라고 합니다.
40대인 저에게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보다 더 이 책이 도움이 되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한국 남자들 특히, 나이 먹은 남자들의 문제와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자의 물건을 통해서 남자들을 분석하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부끄럽고 또 조금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남자들의 물건은 저자 주변의 지인인 시인 김갑수씨의 커피 그라인더, 사진작가 윤광준의 모자, 저자 김정운의 만년필, 이어령의 책상, 신영복의 벼루, 차범근의 계란 받침대, 문재인의 바둑판, 안성기의 스케치북, 조영남의 안경, 김문수의 수첩, 유영구의 지도, 이왈종의 면도기,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 등 입니다.
시인 김갑수의 경우 ‘도구에 헌신하고 도구를 위해 희생하다 보면, 자기 자신의 일상은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게 되어버린다’고 합니다. 또한 이어령씨의 경우 ‘큰 책상에 대한 그의 욕심은 모든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공간 점유의 욕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차범근의 계란 받침대를 통해서 차범근 인생의 절정은 독일에서 가족들과 함께 한 따뜻한 아침식사였다는 것을 부러워합니다. 그리고 안성기의 스케치북에 그려진 자화상을 통해서 ‘상대방을 압도하는 그림 속의 눈빛은 그가 얼마나 자신만만한가를 보여준다. 철저한 자기 절제와 인내로 이뤄낸 오늘날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이야기합니다.
또한 유영구의 지도를 통해서 지도가 가지고 있는 ‘그리는 사람의 의도와 관점이 숨겨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관점이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타인의 관점을 인정할 수 있다.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나 대화와 타협이 가능해진다’는 획일화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한국남자들의 한계를 이야기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물건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내가 집착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는데, 딱히 떠오르는 물건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난 재미없이 사는걸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자는 ‘자기가 하는 일에 어떤 재미도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내가 하는 일을 즐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재미있어야 오래 일할 수 있다. 내가 재미있어야 상대방도 즐거워진다. 결국 자신의 삶이 재미있는 사람들만 다른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이젠 ‘근면’ ‘성실’ ‘고통’ ‘인내’ 같은 지난 시대의 내러티브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차원의 성공 내러티브가 필요하다. ‘재미’ ‘행복’ ‘즐거움’의 내러티브가 진짜 성공한 삶의 조건’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자신의 일이 재미있나요?
한국에서 나이 많은 남자들이 물어보면 안되는 질문 같기는 합니다만…
글 : 마루날
출처 : http://ithelink.net/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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