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삭스 교수의 문명의 대가를 읽었다. 책 내용의 대부분이 미국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내용이지만,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는 책이었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한국의 지식인층이 미국 교과서를 가지고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미국에 유학을 가서 공부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미국의 것 = 선진화된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가정을 하게 마련인 것 같은데, 사실 미국의 지금의 정치/경제적 현실은 그다지 좋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이 책에서 지적하듯이 미국의 양당제의 기반은 흔들리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나뉘어져 있다고 하지만, 금융계와 벤처 업계의 돈을 받느냐, 정유회사나 제조업의 돈을 받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미국의 정치 역시 자본 앞에 무릎을 꿇은지 오래이다. 분배 위주의 정책은 좀처럼 중요시되지 않고, 오히려 지금까지 미국의 성장은 레이거노믹스 이후 꾸준히 추구되어 온 감세와 자유방임주의 쪽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는 듯 하다. 미국에서는 더 많이 벌고, 더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누리는 것이 세계 다른 어느 나라보다 당연시되고 있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그런 것을 american dream이라는 이름 아래 더 존중하고 칭송하는 경향도 있다. 과거 카네기나 록펠러가 보여준 기부와 공유의 정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퇴색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북유럽의 일부 국가들에서 보이는 복지국가의 형태는 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미국에 한번이라도 살아 본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미국의 풍요와 자유의 정도는 미국인들로 하여금 굳이 미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 1위’로 랭크되지 않아도 충분히 쿨함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이다. 그만큼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세계 경제의 중심에서 세계 경제를 이끌어 온 것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으며,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풍요와 번영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는 듯 하다. 사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풍요와 부가 소수의 상위 몇퍼센트 정도에게 심각하게 집중되어 있음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으나, 대다수 미국의 국민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소수의 천재들과 기업가들, 그리고 능력자들에 의해서 서서히 건립되어 왔다고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리라.
이따금 중국의 부상에 대한 뉴스가 들려오기는 하지만, 중국의 정치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미국이 중국에 대해서 갖고 있는 안도감(?)은 어느 정도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즉, 많은 미국인들은 중국의 공산주의 체제는 미국의 자유경제 시스템을 앞지를 수 없는 체계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시장 사이즈나 고용규모나, 수출액 등의 측면에서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중국이 미국을 앞서가겠지만, 그래도 미국이 계속해서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을 것이라고 안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미국은 5-6가지 산업/분야에 미래를 걸고 있는 것 같고, 그 선택은 아주 탁월하다. 그 산업은
- Biotech
- Energy(오일 포함)
- Education(특히 대학원 이상의 교육)
- Entertainment
- Financial service
- Tech(특히 Software 분야)
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이 아무리 기를 쓰고 뒤집으려고 해도 불가능할 정도의 헤게모니를 이미 미국은 이 분야에서 취득하였고, 세계는 지금 이러한 분야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분야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것들을 중국에 내어준다고 해도 미국이라는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는데에는 큰 이슈가 없다는 말이다. 우선순위화(prioritization)가 정말 확실한 것 같다.
하지만 경제적인 분배의 문제와 사회 불균형의 문제, 그리고 환경적인 측면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불거지는 목소리들에 대해서 미국정부와 시민들도 계속 무시하고 있을 수 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제프리 삭스 교수가 생각하는 것만큼 미국의 지금 상황이 심각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급하다고 (urgent) 생각하지는 않는다. 즉, 아직은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지막 부분에 그가 어떤 식으로 대안을 제시할지가 궁금했는데, 사실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은 내용이라서 좀 실망하기는 했다. 즉,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좀 더 많이 공유하고 기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측면에서는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미국보다는 보다 과격하고 급진적인것 같다는 생각이다. 고소득층에 대한 추가징세 문제 등에 있어서도 우리나라의 경우가 훨씬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이 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왜 ‘자산’이 아닌 ’소득’에 분배의 촛점을 맞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부모에서 자식으로의 부의 세습이 너무나 쉽게 일어나는 것이 우리사회의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낮은 소득으로 살다가 임금 상승이나 재교육 등을 통해서 돈을 점점 많이 벌어서 잘 살게 되는 사람들에게, 왜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면 저소득자에서 고소득자로의 이동은 더 막겠다(discourage)는 것인지… 오히려 소득보다는 자산에 형평성의 촛점을 더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암튼 )
이 책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개인적으로 이 책은 전반적으로는 너무 거시적이고, high level 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경제적인 위기와 풍요에 대한 대가(이 책의 제목이 말하는 것 처럼)에 대해서 이해하고 생각을 정리하기에 충분히 좋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분이 예전에 하버드에서 제프리삭스의 강의를 들으셨다고 하던데, 정말 정말 정말 천재라고 한다. 이 책이 다소 두루뭉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사람의 커다란 뜻을 알기에, 나같은 시골 선비는 아직 깜냥이 부족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mbablogger.net/?p=6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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