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
헌팅턴 병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헌팅턴 무도병이라고도 불리는 이 질병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출처: 위키피디아]
운동 증상은 대개 안면 경련과 함께 시작되고, 나중에는 떨림이 신체 다른 부위에까지 퍼져서 환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비틀리는 운동으로 발전한다.(무도병이란 의미의 chorea는 무용술이란 의미의 choreography와 어원이 같다. 무도병의 비틀리는 움직임이 때로는 약간 무용 같아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점차 경련이나 비틀리는 운동이 환자의 걷기, 말하기, 그리고 다른 자발적인 운동을 더욱 더 방해하게 된다. 특히 새로운 운동습관을 형성하는 능력이 쇠퇴한다.이 장애는 광범위한 뇌손상과 관련되는데, (중략) 헌팅턴병 환자들은 또한 여러 가지 심리적 장애를 겪는데, 여기엔 우울증, 기억장애, 불안, 환각과 망상, 판단력의 쇠퇴, 알코올 중독, 약물 남용, 그리고 완전한 무반응성에서부터 분별없는 난잡함에 걸친 성격 장애가 포함된다. 어떤 경우에는 심리적 장애가 운동 장애보다 먼저 발달하기도 한다. 일단 증세가 나타나면, 심리적 증상과 운동 증상이 모두 약 15년에 걸쳐 진행되면서 점차 악화되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헌팅턴병은 유전적 질병으로서 부모님 중 어느 한쪽이 헌팅턴병을 앓았다면 자식도 앓을 확률이 50%라고 한다. 증상은 주로 30-40대에 나타나서, 10년-15년에 걸쳐서 심화되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 참으로 무서운 질병이다.
유전적으로 헌팅턴병이 발병할 것인지를 사전에 진단해 내는 테스트는 있다고 한다. 자기 부모중에 한 사람이 헌팅턴병으로 사망했다면, 그 자식은 ‘혹시 나도 헌팅턴병이 있는 것은 아닐까?’ 라면서 사람들은 불안해 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염색체에 이상이 있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테스트가 존재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검사는 약 $500 정도로, 자신의 수명이 어느 정도 남았는지를 가늠해 보기에는 비교적 싼 가격. 물론 이 테스트를 받을지, 받지 않을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실제로 헌팅턴병에 걸릴 확률이 있는 사람들, 즉 부모세대에서 헌팅턴병을 앓았던 적이 있는 사람들의 자녀들이 이 검사를 받는 경우는 5% 미만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테스트를 통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없애 줄 수 있는데, 고작 5% 밖에 이 테스트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특히 인간의 합리적인 판단을 전제로 하는 경제학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없애주는 이런 테스트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비이성적’으로 보였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30대쯤에 병이 발병할지 알게 된다면, 그 이전에 쓸데없이 교육이나 연금 따위에 투자하지 않고, 죽기 전까지 실컷 먹고 쓰고 즐기다가 죽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혹은 나에게 헌팅턴병의 유전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사람은 평생을 불안에 떨지 않고, 안심하면서 살 수 있다. 그런데 왜 고작 5%의 사람만이 자기 자신이 헌팅턴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싶어하는 것일까? 아니 거꾸로 말해서 다른 95%의 사람은 왜 모르는채 살고 싶어하는 것일까?
참고로 위의 내용은 내가 잘 가는 사이트 괴짜경제학(freakonomics)에 지난주에 실린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전형적으로 진실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과 진실을 모른채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조적인 이야기이다. 즉, 어떤 정보가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은 차라리 그 사실을 모르고 살고 싶어한다. 차라리 언젠가 내가 갑자기 죽는다고 해도, 나의 미래를 모르는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하루를 살더라도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
나는 ‘이영돈 PD의 먹거리 X 파일’을 즐겨 본다. 스스로 미식가라고 자부하고, 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다고 생각하는데, ‘먹거리 X파일’을 볼 때마다 내가 정말 몰랐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알게 되고, 또 분노하게 된다. 그런데 나의 와이프는 내가 먹거리 X파일을 볼 때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보려고 시도할 때마다) 나를 적극적으로 저지한다. 그녀는 이 프로그램이 불편하단다.
뭐가 그렇게 불편할까?
나의 와이프는 언론에서 ‘진실을 밝힌다’라는 명분아래 아무것이나 까발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런 무책임함이 가장 싫단다. 즉,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무시무시한 사실만 공개하고, 그 사실에 대한 뒷감당은 시청자의 몫이라고 말하는 방송이 제일 싫단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가 먹거리 X파일이라고 한다. (먹거리 X파일의 착한식당 정도로는 그녀의 ‘대안’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지금까지 맛있게 먹었던 많은 음식들이 사실은 이상한 방법으로 조리되고 있었거나, 인공조미료 범벅이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서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는 것이 나의 와이프의 기본 자세이다. 나는 이런 ‘사실보도’가 언론의 주된 기능이라고 생각했고, 그 사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방송이 책임질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생각은 좀 달라서 의외였다. 참고로 그녀는 신문 방송학과 출신이다.
나는 호기심이 많아서 일단 알고 보기를 원한다. 무서운 좀비 영화도 꼭 보고 나야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알면 아는 만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고,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의 와이프는 정~반대이다. 어떤 것들은 모르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이미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로 넘쳐나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대해서 굳이 더 알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삶은 심플하고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 수록 더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인것 같다. 설령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의 이면에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라면 그냥 모르고 사는게 더 속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러운 중국집 주방을 굳이 들춰보지 않고, 그냥 맛있게 자장면을 먹겠다는 자세이다.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는 사람들
이번주 한주 내내 연예사병 이야기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몇몇 연예사병이 자유롭게 부대 외부에서 자기들끼리 모텔에서 잠을 자고, 저녁에는 근처 고깃집에서 고기 궈 먹고 술도 마시고, 심지어 성매매를 시도했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나도 뒤늦게 이 방송을 유튜브로 보게 되었는데, 취재한 PD의 집념과 용기에 참으로 놀랐다. 이 PD는 이 사실을 밝히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얼굴과 행동으로 알 수 있었다. PD 스스로는 이 사실을 만천하에 밝히는 것이 단순히 특종을 잡는다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 정의 실현과 국민의 알권리 실현에 있어서 큰 공헌을 하고 있다고 믿는듯 하다. (그게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아마도 이 방송을 본 많은 군인들과, 일반적인 군대를 다녀온 많은 사람들은 허탈감과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억울한 것이다. 만약 사회 정의를 바로 잡는게 목적이었다면, 이 비디오를 국방부에게만 보여주고, 당장 연예사병제도를 폐지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었을 텐데, 이 방송의 PD는 결국 시청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방송국 사람이라서 그런지 어떤지, 아무튼 이 영상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이 방송은 근래 내가 본 영상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영상이었던것 같기는 하다.
단기적으로는 조금 허탈하고 억울하겠지만, 그리고 한 두 사람의 커리어는 말 그대로 개박살이 났지만, 사회 전체를 위해서는 의로운 일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덕분에 연예병사들에 대한 특혜가 잘못된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고, 많은 국군장병들에게 위로보다는 상대적 박탈감만 더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앞으로 사회 정의와 형평성 향상에 더 좋은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필요한 정보만 알려주는 사람들
전략 컨설팅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최근에 일어나는 ‘업’의 변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가장 자주 이야기되는 특징 중에 하나가 바로 전략 컨설팅 회사를 클라이언트들이 리서치 회사 정도로 여긴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대기업들에 대한 브레인 렌탈 산업이자, CEO의 thinking partner 역할로서 컨설팅이 인식되고 있었는데, 최근 한국 기업들이 자신감이 높아지고 퍼포먼스가 좋아짐에 따라서 웬만한 전략적 프레임웍이나 접근법은 스스로 개발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특히 글로벌 기업의 대열에 합류하는 회사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고, 글로벌 전략 컨설팅 회사보다 더 세계시장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풍부한 회사들이 출현하고 있어서 이런 경향이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한 편으로는 막상 전략 컨설팅 회사를 써 봤으나, 원하는 결과가 계속 안나와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아무튼 최근에 전략 컨설팅을 사용하는 클라이언트들의 주된 목적은 컨설턴트들의 전략적 사고라기보다는 그 전략 컨설팅 회사의 글로벌 데이터베이스에 들어있는 사례들, 혹은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알아오는 정보들, 선진사의 벤치마킹 사례들인 경우가 종종 있고, 그 빈도도 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을 전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고객사에게 불필요한 사실이나, 고객사와 무관한 내용들을 철저하게 제거하고, 정말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만 정제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보니, 우리 주변에는 점점 더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알려주는 것에 대한 가치보다는 내가 꼭 필요로 하는 정보에 대한 요약 정리에 대한 가치(value)가 더 커지고 있다. 티앤엠 미디어의 명승은 대표가 강조하는 ‘큐레이션’이 각광받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이다. 산더미같은 정보 속에서 정말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찾아 주는 것 자체가 큰 밸류이다. Summly 같은 서비스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컨설팅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컨설팅의 미래 분과 및 변형 형태중에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기업 탐정(corporate detective)이다. 즉, 고객사에서 어떤 기업에 대한 정보 및 그 회사의 인력에 대한 정보를 좀 빼내 와 달라고 요청하면, 그런 일을 수행해 주는 것이다. 특정 기업에 대한 M&A를 생각하고 있는 기업에서 매물로 나온 기업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거나, global expansion 을 하려는 회사에서 다른 지역으로 진출할 때 로컬 파트너가 될 회사 등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기를 원할 때 등이 주로 이런 기업탐정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주로 형사출신, 검사출신, 컴퓨터천재들 등이 동원되는 모양인데, 인맥과 기업에 대한 분석력을 갖춘 전략 컨설턴트들이 하기에도 꽤나 괜찮은 직업일 수 있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맺음말 – unknown unknown
도널드 럼스펠드가 unknown unknown 에 대해서 언급한 동영상이 있다. 럼스펠드에 따르면 연설의 내용은 정보에는 세가지 카테고리가 있다는 것이다.
- 하나는 known known 이다. 즉, 우리가 알고 있다고 알고 있는 것이다.
- 두번째는 known unknown 이다. 즉, 우리가 모르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 세번째는 unknown unknown 이다. 즉, 우리가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는 모르는 것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동영상을 자주 인용하기도 하지만, 한편 많이 비웃기도 한다. 그 이유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 무기에 대해서 궁색한 변명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한 말이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으면 어떻게 하냐…’ 는 식이다.
예컨대 위에서 말한 헌팅턴병의 사례나 기업 탐장(corporate detective) 사례는 사람들이 알고자 하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내용이다. 내가 얼마나 살 수 있을 것인지,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내가 사려고 하는 그 회사는 믿을 만한 회사인지 등등.
먹거리 X 파일이나 현장 21의 연예병사 사례는 이것저것 섞여 있기는 하지만, unknown unknown 에 대한 내용이 많다.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내용들이 많다는 것이다. 도대체 내가 먹는 냉면 육수는 제대로 만들긴 하는걸까? 연예병사가 제대로 근무는 하고 있는 것인지와 같이 알고 싶었던 부분에 대한 답을 제공해 주기도 하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전혀 상상도 못한 충격적인 ‘요건 몰랐지?’ 와 같은 내용도 꽤나 있다.
Unknown unknown 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entertainment 영역에서는 이렇게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내가 몰랐던 일들’ 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하릴없이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에 빠져들 수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내가 꼭 뭘 알아야겠다는 의도가 있어서 계속 연예뉴스를 클릭하고, 연예뉴스를 보고 있는 것이아니라, 그냥 보는 것 만으로도 즐겁다.
하지만 기업의 영역에서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적어도 known unknown 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판단과 준비를 할 수 있지만, unknown unknown 에 대해서는 surprise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Surprise는 기업의 실무에서는 반갑지 않다. 필요한 사실만 알리거나 알고자 하는 부분만 조사를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전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으로 탐험을 떠나는 기분은 기업의 종업원들에게는 ‘위험’이자 ‘비효율’일 뿐이다. 이렇게 자꾸만 unknown unknown 에 대한 위협이 커지는 회사에서는 업무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즉, 기자 같은 사람들, ‘요건 몰랐지’ 라면서 새로운 정보를 쏟아 내는 사람들이 많아서는,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수는 있지만, 효율적/ 효과적인 업무를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아마도 기업의 CEO나 창업자가 된다면 unknown unknown 이 걱정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이나 막 던져서는 궁금한 부분을 확인하기 어렵거나 부하직원들을 미아로 만들 뿐일 것이다.
‘이런 것도 혹시 있지 않을까? 저런 것도 혹시 있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자꾸만 미지의 영역을 넓혀 가는 업무는 전혀 효율적이지 않다. 이런 식의 커뮤니케이션이나 업무는 방송국에서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딱 어울리지만, 기업의 전략 이나 기획에서는 효율성을 drive하지는 않는다. 업무의 scope은 되도록 작게, 리서치의 목적은 되도록 단순하게, 그리고 질문은 최대한 specific 해야 겨우겨우 얻고자 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결국 기업과 기업의 CEO는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예측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알고 있는 한에서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키울 수 밖에는 없다. 계속 놀라움(surprise)만 지속되는 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힘들 것 같다. unknown unknown 에 대한 탐험은 간혹 즐겁고, 새로운 사업분야를 스터디 할 때에는 불가피하게 필요한 조사 분야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대다수의 업무 영역에서 그런 부분이 주(main)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mbablogger.net/?p=6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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