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디펜던스 선언
“나는 한창 자라는 아이에요. 오후 수업에 집중하려면 크로켓 하나로는 부족해요”
지난 2012년 여름. 런던 올림픽과 함께 영국을 가장 뜨겁게 달궜던 뉴스는 9살 짜리 어린 학생의 블로그였다.
스코틀랜드의 소녀 마사 페인(Martha Payne)양. 페인 양은 지난해 4월 30일부터 블로그(http://neverseconds.blogspot.co.uk/)를 만들어서 학교에서 매일 제공하는 2파운드 급식 사진을 올렸다.
학교에서 미니 치즈버거, 크로켓, 오이 3조각 등을 제공한 사진을 올렸고 그 이후에도 케첩과 소시지만 덜렁 든 핫도그, 인스턴트 식품이 주를 이룬 점심 사진도 계속 올렸다. 점수도 매겼다. 치즈버거 같지 않은 치즈버거엔 2점을 줬다. 순수한 소녀적 감성으로 올린 것이다.
하지만 이 사진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페인 양의 블로그가 언론을 통해 이슈화되고 결국 영국 초등학교의 급식 문제로까지 확산됐다. 미국, 일본의 초등학생들도 마사 페인의 이메일로 자신의 급식 사진을 보내고 페인양의 학교의 것과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페인 양은 실제로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일본 초등학교 급식 사진과 자신의 학교 급식 사진을 비교해 올리기도 했다.
언론에 보도가 나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후 이 학교를 관리하는 스코틀랜드 지방의회의 결정은 어땠을까? 식단을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더이상 블로그에 학교 급식 사진을 올리는 것을 금지한다”는 결정이었다.
결국 이 학교는 된서리를 맞았다. 영국의 유명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도 마사 페인을 거들었고 결국 스코틀랜드 교육 장관도 지방 의회의 결정을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스코틀랜드 지방의회 의장은 사진 금지 결정을 철회하고 의회가 부실 급식을 시정하기로 했다.
여기서 끝일까? 마사 페인 양의 놀라운 행보는 계속됐다. 아프리카 말라위 등의 자신과 비슷한 나이또래 학생들이 점심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인터넷과 블로그를 모금을 시작, 10만파운드 모금에 성공했다. 영국에서는 학교에서 정크푸드를 몰아내자는 운동이 생겨나고 아프리카 말라위 뿐만 아니라 케냐, 라이베리아 아이티를 포함한 16개국 60만명의 어린이에게 급식하자는 운동이 시작되기도 했다. 블로그에 재미로 급식 사진을 올려본 마사 페인양은 6개월도 안돼 세계 어린이를 위한 학교 급식 운동의 상징이 됐다.
페인 양의 부모가 시켜서인가? 페인양이 애초에 그렇게 영향을 주는 인물이 되고 싶었을까? 아닐 것이다. 페인 양은 급식에 점수를 메기는 ‘재미’로 올렸다. 페인 양은 블로그를 이용했고 영국 언론이 페인 양을 발견했으며 전세계 어린이들이 페인양에게 급식 사진을 담은 이메일을 보내 페인 양을 격려했다.
마사 페인양의 스토리는 큰 시사점을 주고 있다. 9살(2013년은 10살) 짜리 소녀의 조그만 행동이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줬다. 이 같은 현상은 전세계가 연결되지 않았다면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현상이다. 더구나 6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안에 10만파운드 모금도 이뤄냈다. 재미로 사진을 올린 마사 페인이 발견된 것도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발견된 과정과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처음부터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파급력은 어느 나라 대통령 못지 않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됐을까?
새 기준, 새로운 현실(New Normal, New Reality)
아이폰 등 초연결 기술(제품)의 등장과 이로 인한 포스트 산업화 시대로의 전환(디지털 전환)은 새로운 현실이다. 삶의 기준이 바뀌었다.
새 기준(New Normal)은 ‘연결(Connected)’이다. 연결되지 못한 것이 비정상이다. 연결된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당연하며 연결되지 못한 사회(Disconnected)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연결된 세상은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낸다. 인류는 상호의존하고 살아간다는 당연한 현실이다.
그동안 인류는 독립을 지향했다. 민족의 독립, 국가의 해방, 독립적 회사의 구성, 개인의 독립 등이다. 하지만 21세기 초연결 기술에 의한 연결 사회는 상생의 가치가 독립의 가치를 넘어선다. 서로 연결된 세상에서는 독립의 가치보다 서로 기대고 의지하고 나누는 가치가 더 크다는 것이다. 인터디펜던스(Interdependence)는 21세기 포스트 산업화 시대의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다.
한국의 8월 15일은 광복절. 미국의 7월 4일은 독립기념일이다.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는 날이다. 한국에서 광복절은 건국이래 역사적,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날이고 미국의 독립기념일도 한국의 광복절 만큼 중요한 날이다.
인디펜던스 데이. 압제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된 날을 의미한다. 하지만 바뀐 세상에서는 인디펜던스 데이보다 ‘인터디펜던스 데이’가 중요할 날로 기록될 것이다. 물론 8월 15일, 7월 4일처럼 특정한 날은 없다. 하지만 매일이 인터디펜던스 데이다.
초연결 기술로 인해 인류는 독립된 존재들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의존하는 사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기 시작했다.
1776년 7월 4일 미국이 독립 선언문을 선포, 영국으로 부터 독립을 선언한 이후 세계는 ‘독립(Independent)의 시대’였다. 특히 1940년~1950년대 무수한 독립을 이뤘다. 제국주의의 속박으로부터 해방, 많은 제 3세계 국가들이 민족과 국가를 찾아 독립했다. 한국도 이 시기 독립해 근대적 의미의 국가를 만든 나라 중 하나다. 이 시대 압제로부터 해방(Free From)되는 것이 핵심 가치였다.
정치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서도 ‘해방’ 또는 ‘민주화’가 핵심 가치가 됐다. 광고 없는 DVD기록 장치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광고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다. 이동통신사가 쳐놓은 갇힌 정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잠김없는 휴대폰이 인기를 끌었으며 결국 아이폰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연결된 세상에서는 인간, 사회, 국가는 서로 의존하고 의지한다.
개인이 페이스북에 올리는 행복한 메시지는 친구들에게 전염되고 친구의 친구들에게 까지 영향을 준다. 국가와 국가도 서로 크게 의존하고 즉각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페이스북에 올린 우울한 메시지는 ‘페친’들도 우울하게 만든다. 페이스북은 글과 사진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감정’도 뉴스피드된다.
미국 경제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미국내 대기업의 파산이 아니라 그리스, 포르투갈, 키프로스의 유로존 탈퇴 여부다. 그리스나 포르투갈, 키프로스 국민들이 유로존을 탈퇴하겠다고 국민투표를 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그들의 결정은 유료화 안정을 해치고 유럽 경제를 뒤흔들며 결국 미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미국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고스란히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에도 주게 된다. 미국 대통령이 자국내 실업률보다 그리스 등 유럽의 재정 불안정 국가의 경제적 안정을 더 걱정해야하는 시기인 것이다.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것은 한국 경제 정책 당국의 통화율이나 이자율 조정, 또는 코스피나 코스닥의 진폭이 아니라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 양적완화 조치 지속 여부다.버냉키 연준 의장의 한마디가 한국 대통령의 정책보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더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한국 경제가 미국 경제에 의존하고 있으며 미국과 한국 경제가 동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강남 집값 못지 않게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 집값에 대해 관심이 많고 중국 상하이 지역 부동산 가격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 지역에 직접 투자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중국 상하이 집값이 강남 집값, 넓게는 서울 부동산 가격에도 즉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미국 소비자 경기는 삼성의 스마트폰 갤럭시S 시리즈 판매에도 직결된다. 한국인들은 자국 경기 못지 않게 미국 소비자 경기에도 민감하다.
미국의 최대 쇼핑 시즌인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는 한국에도 ‘명절’과 같다. 공동구매(공구)나 직구를 통해 블랙프라이데이 때 미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한국 소비자들이 사재기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을 파악한 미국의 일부 인터넷 쇼핑몰들은 서서히 한국, 일본 등 소비자들에게도 손짓하며 한국어, 일본어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했다(물론 GAP 같은 브랜드는 ‘사재기’를 우려 한국 접속을 차단했다).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에만 있는 날이다. 하지만 연결된 세상에서 한국, 일본 소비자들에게도 중요한 날이 됐으며 매출에도 직결된다. 이는 과거에는 없던 현상이다.
Free to what?
회사에서. 혼자 독립적인 공간에서 조용히 일하는 것(생산성 중심 사고)보다 함께 아이디어를 나누고 일하는(협업, Collaboration) 것의 가치가 높아졌다. 혁신 아이디어는 혼자 골방에 앉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사람과 섞을 때 나오기 때문이다. 교실에서는 선생님(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의를 통해 배우는 것보다 학생들끼리 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선생님은 지도하는 방식의 협습(Co-learning)의 가치가 높아졌다.
학생들이 서로의 눈높이에 맞게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학습 효율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재화를 개인이 소유해서 사용하는 것보다 집과 차를 나눠 소유하고 개인은 접속권한을 가지는 공유 경제(Sharing Economy)는 빠르게 대중화되고 있다.
이렇게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세계는 더 많은 문제를 ‘같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 AIDS, 해킹, 이민법, 테러리즘, 인종 차별 등 인류가 공동으로 해결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같은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자는 ‘인터디펜던스 데이’ 운동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하야한 후 아직도 이집트가 혼란에 빠져 있는 것은 그들은 독재로부터(Free from dictator)의 해방을 원했지만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Free to what)에 대한 합의가 없기 때문이다. Free From 보다 Free to가 더 지속가능한 생각이다. 우리는 세상을 다시 생각하고 다시 정의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초연결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혼자 잘할 수 없으며 어느 국가도 혼자만 잘 살 수는 없다. 어느 회사도 혼자만 잘나갈 수는 없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롭게(Free From)’ 독립적으로 잘 살겠다는 개인이나 조직, 회사, 국가는 더이상 존재할 수가 없다.
이제는 무엇을 향한 자유(Free to what)인가를 고민해야 할때다. 이 것이 인터디펜던스의 핵심 가치다.
글 : 손재권
출처 : http://goo.gl/mms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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