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활성화와 엔젤 투자 활성화는 불가분의 관계다. 실패하더라도 재도전이 가능하려면 창업투자 자금이 원활하게 공급돼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는 엔젤 투자층이 미미한 편이다. 지난달 5일 발표된 창조경제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당장 민간 엔젤 투자가 활성화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의 대안이 없는 것인가. 바로 대기업의 투자가 대안일 것이다.
대기업은 혁신에 약하고 벤처는 시장효율에 취약하다. 시장의 공유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대기업의 벤처 투자를 규제하기보다는 지원해야 하고, 대기업의 벤처 인수합병(M&A)도 비난이 아니라 찬양해야 한다. 이러한 엔젤 투자를 기업 엔젤이라 부른다. 대기업이 다양한 벤처에 투자하는 것을 문어발이라 비난해서는 성장 동력에 물꼬를 트기 어렵다.
결국 창업 활성화 문제의 핵심은 M&A의 활성화다. 창업 활성화는 엔젤 활성화에 달려 있고, 엔젤 활성화는 회수시장 활성화에, 회수시장은 결국 M&A 시장의 활성화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M&A 활성화는 수많은 정책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하다. 그 저변에는 M&A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좋은 M&A’와 ‘나쁜 M&A’를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M&A는 구조조정을 연상시킨다. 연산 1억t의 철강회사와 2억t의 회사가 합병하여 증대되는 이익은 판매 확대보다는 비용 절감에서 비롯된다. 통합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인력 감축을 하고 그 비용이 이익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러한 규모 경제형 M&A는 가치 창출이 아니라 인원 삭감으로 이익을 내므로 사회적으로 나쁜 M&A로 인식된다.
필자는 과거 1000만 달러를 투자해 만든 회사를 GE에 1억 유로를 받고 매각한 경험이 있다. 필자의 회사는 분명히 돈을 벌었다. 그런데 GE도 이익을 보았다. GE의 세계적 시장에 혁신적 기술이 융합되어 판매 규모가 다섯 배 확대됐다. 당연히 고용도 늘었다. 혁신적인 기술이 시장 효율성과 결합하여 글로벌 시장에 확산되므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고 결과적으로 고용이 확대되는 것이다. 대기업은 혁신을 얻고, 벤처기업은 시장을 얻고, 엔젤 투자자는 투자 회수를 하고, 창업 기업에는 엔젤 투자가 확대되는 ‘윈-윈-윈-윈’ 게임이다. 기술·시장 결합형 M&A는 원가 절감이 아니라 가치 창출을 통하여 수익을 증대하게 되는 좋은 M&A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성전자가 기술 벤처를 M&A 하면 수많은 기술 벤처의 창업이 활성화된다. 이제 시장을 가진 대기업이 기술을 가진 벤처 기업을 제값에 사들이고 M&A 하는 것에 손뼉 치는 문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전제 조건이 있다. 공정한 거래다. 사람 빼오기나 이른바 ‘후려치기’와 같은 편법 혹은 불법이 아니라, 정당한 가격을 주고 사오는 대기업의 선순환 전략이 필요하다. 벤처의 사업을 베끼고 부당 경쟁을 통해 창업 생태계를 말라 비틀어지게 하는 대기업의 일부 행태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
글 : 이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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