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타트업 월드에서 ‘피벗(Pivot)’처럼 자주 들을 수 있는 단어도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피벗, 피버팅을 얘기하고 있고, 피벗한 것을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이라는 바이블을 따른 것으로 이해하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래는 제가 자주 접하는 상황입니다. (과장을 좀 한 가상의 대화임을 말씀드립니다) 스타트업: “임대표님, 그간 잘 지내셨어요? 한 6개월 정도 된 것 같네요”
지미림: “그러게요. 어떻게 전에 하신다던 교육 서비스는 어떻게 되었나요?”
스타트업: “아… 저희 피벗(Pivot) 했습니다! 교육 서비스보다 훨씬 매력적인 서비스요”
지미림: “!@#$$@$@#$”… “새로 하시는 것은 교육 관련이 아닌가보네요? 그럼 무엇인가요?”
스타트업: “저희는 애완동물 서비스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애완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1인 가구도 증가하고, 그러다 보니 애완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급증했습니다”
지미림: “맞아요. 그런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교육이랑, 애완동물 서비스랑은 좀 거리가 있지 않나요?”
스타트업: “원래 스타트업은 피벗을 하는 것이잖아요. 유명한 리빙소셜도 수십번 피벗해서 지금의 모델이 나왔잖아요. 린스타트업에서도 피벗의 중요성에 대해서 얘기하고”
지미림: “네… 그나저나 교육 서비스는 런칭 하셨던가요?”
스타트업: “아뇨… 준비하다가 아닌 것 같아서 피벗했습니다”
지미림: “@#$@%%!$!%!$#…. 근데 대표님, 애완 동물 키우세요?”
스타트업: “아뇨… ”
지미림: “!@#!@$@#%#$^#%^#”
생각보다 자주 있는 대화패턴입니다. 그래서 불편합니다. 뭔가가 피벗이 유행처럼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자, 그럼 피벗의 정의부터 한번 찾아봅시다.
웹스터(Merriam-Webster) 사전에 따르면 피벗은 “어떤 점을 중심으로 도는 행동(the action of turning around a point)”라고 정의되어 있으면 피버팅(pivoting)은 “특히나 농구에서 자주 사용되는데 한 발은 땅에 붙인 채로 다른 발을 움직이는 행동” (especially the action in basketball of stepping with one foot while keeping the other foot at its point of contact with the floor)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사전적 정의 말고, 피벗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린스타트업의 저자인 에릭 리스(Eric Ries)도 피벗에 대해서 명확하게 “A change in strategy WITHOUT a change in VISION” 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사전적 정의에서도, 피벗이라는 단어의 창시자도 피벗을 ‘완전히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많은 스타트업들이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피벗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뭔가 피벗이라는 개념을 잘못 이해하다 보면 시간을 낭비할 수 있기 때문에, 피벗하기 전에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어떨까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리고 싶은 3가지.
1. 어떤 문제(problem)을 풀고 싶은지를 많이 고민해서, 정말로 내가 풀고 싶은 문제이고, 우리 팀이 가장 잘 풀 수 있는 문제를 푸세요. 그냥 커피숍에서 브레인스토밍하다가 떠오른 섹시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갖고 몇 개월 기획만 해보다가 ‘이 산이 아닌가벼’하고 접으면 그것은 피벗도 아니고, 배우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2. 1번에서 제대로된 문제를 선택했으면 최대한 빨리 서비스를 출시하세요. 꼭 출시하세요. 그 전에 접지 마세요. 서비스를 출시하지도 않고 계속 논의만 하다가 그만두는 것은 심하게 얘기하면, 대학교에서 PPT로 발표하는 프로젝트 하나 하다가 접은 것이랑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접으면 배우는 것이 없습니다. 유저들이 문제에 대한 ‘이런 해결책’을 좋아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으면 빨리 테스트 해봐야죠. 실제 유저들이 사용하는지, 사용한다면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봐야지만 인사이트(insight)가 생기는 것입니다. PPT 사업계획서 수십번 고쳐봐야 내공이 생기지 않습니다.
3. 서비스 런칭한 다음에 예상대로 지표들이 급상승하지 않는다고 바로 접지 마세요. (이런 경우 많이 봤습니다) 서비스만 오픈하면 몇 만명, 몇 십만명, 아니 몇 백만명이 내 서비스를 사랑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몇 천명의 유저만 있다? 그래서 분야도 다른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한다? 99.9%의 확률로 새롭게 하시는 서비스도 비슷할 것입니다. 서비스를 런칭했으면 최대한 유저들의 반응을 분석해서 처음에 생각했던 가설들이 맞는지 확인하세요.
다운로드, 재방문률, 리텐션, 체류시간, 덧글/쪽지 남기는 숫자 등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정량적인 지표들은 모두 꼼꼼히 살펴보고, 유저들의 정성적인 반응도 꼼꼼히 살펴보세요.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유저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직접 얘기해보세요. 모수가 너무 적으면 정량 분석이 잘 안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디테일하게 봤는데도 서비스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판단이 들면 접는 것이 맞겠지만, 충분히 좋은 문제를 골랐고 고객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전달하지 않았을 뿐이라면 빨리 튜닝(tuning)을 하면서 업그레이드를 시켜야겠죠. 물론, 튜닝의 폭이 클 수도 있고. 이럴 때 튜닝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피벗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겠죠.
글 : 임지훈
출처 : http://goo.gl/pwIZ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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