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18) – 많아진 네트워크, 이름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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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들어 네트워크 사용이 가능한 PC와 워크스테이션의 보급이 확대되었는데, 이 때만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네트워크는 밥 멧칼프가 개발한 유선 네트워크 기술인 이더넷이었다. 원래 ARPANET이 설계될 때만 하더라도 각각의 네트워크 노드에 32비트(4바이트)가 할당되었는데, 그 중에서 상위의 1바이트만 네트워크를 대표하는데 이용하였다.

이는 256개의 네트워크가 존재하고, 그 아래에 많은 컴퓨터 등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깔았던 것인데, 이더넷이 크게 보급되면서 독자적인 네트워크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자 이 체계에 변화를 줄 수 밖에 없게 된다.

일단 네트워크를 클래스에 따라 3가지로 구분을 하기로 하였는데, 클래스 A에는 국가 수준의 네트워크로 소수의 네트워크와 각각의 네트워크에 수 많은 호스트가 붙는 경우이고, 클래스 B는 지역수준의 네트워크, 클래스 C는 수많은 네트워크에 비교적 소수의 호스트가 붙는 형태로 정의하였다.

또 하나의 이슈는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호스트의 수가 많아지면서 주소를 4바이트의 수(예를 들어 108.92.35.4)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이다. 네트워크 호스트에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름을 붙이고, 이름으로 네트워크에 접근을 시도할 때 원래 주어진 숫자로 만들어진 주소로 변경하는 서비스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DNS 서비스의 등장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DNS(Domain Name System)이다. DNS는 UCLA의 LA지역 최대의 라이벌 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USC의 ISI 연구소의 존 포스텔(John Postel), 폴 모카페트리스(Paul Mockapetris)에 의해 1983년 제안되었는데, 이름으로 이루어진 주소를 가진 분산된 서버가 네트워크 상에 여럿 존재하면 계층화된 호스트의 이름(예를 들어 www.health20.kr)을 숫자로 이루어진 인터넷 주소로 변경해 주도록 한 것이다.

1984년 버클리의 4명의 학생들이 여기에 기반한 DNS를 실제로 유닉스에 처음으로 구현하고, 이 서버를 BIND(Berkeley Internet Name Domain) 서버라고 불렀다. BIND는 이후 윈도 NT를 비롯하여 다양한 플랫폼에 업그레이드와 함께 이식이 되었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PC에서 네트워크 주소를 이름으로 입력하면 이런 서버를 가진 곳에 먼저 접근해서 입력한 이름을 숫자로 된 인터넷 주소로 먼저 변경하고, 해당 주소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이런 서버를 DNS 서버라고 하며, 종종 DNS 서버가 공격 등을 당해서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경우에는 인터넷 브라우저에 아무리 주소를 입력해도 이름을 숫자로 된 주소로 변경하지 못하므로 인터넷이 먹통이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만약 숫자로 된 주소를 모두 기억하고 있다면, DNS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더라도 각각의 웹사이트 호스트에 접근이 가능하다.

DNS 구조는 또 다른 장점도 있다. 이름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만약의 경우 웹사이트 등의 호스트를 다양한 이유로 확장하거나 변경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DNS에 등록만 변경하면 많은 사람들이 주소가 바뀌었다는 것을 몰라도 된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의 주소가 “서울시 강남구”의 24평 아파트에서 사람들이 하도 많이 놀러오는 관계로 집이 좁아져서 “부산시 중구”의 50평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고 해도 A의 주소지만 변경하여 등록하면, A로 찾아가는 사람들은 주소는 몰라도 아주 쉽게 A의 집으로 찾아갈 수 있는 원리이다. 만약 이런 체계가 없다면, 실제로 A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바뀐 주소를 알려야 하는데,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님은 아마도 모두들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DNS가 잘 동작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이름을 등록하고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게 된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 바로 ICANN(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이다. ICANN과 함께 가장 최상위 도메인(TLD, top-level domain)은 등록 레지스트리를 운영하는 행정기관에 의해 운영이 된다.

ICANN은 이런 최상위 도메인의 운영자에게 해당 도메인에 대한 관리의 권한위임을 할 수 있다. 각 나라의 주소체계는 대체로 해당 국가의 기관에서 권한위임을 받아서 등록하고 관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kr’로 끝나는 이름들에 대해서는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길남 게이오대 교수가 권한위임을 받아서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Korean Internet & Security Agency)이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 연재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된 WCIT에서의 결정은 결국 가장 최상위의 인터넷 주소와 이름을 관리하는 ICANN과 같은 민간기구가 결국에는 미국에 있으니, 이제는 여러 국가들에이 공동으로 관리하도록 넘겨서 국제사회의 결정에 따라 관리하자는 것이 또 하나의 중요한 의도였다. 일견하기에는 합리적으로 생각되지만, 이런 접근방법은 국가가 모든 것의 우선한다는 국가주의가 뒤에 숨어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연재를 꾸준히 읽어왔다면 인터넷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가 국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민간기구의 자율적인 철학과 문화의 확장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각의 차이가 여러 국가들의 서로 다른 입장의 차이로 나타난 것이다. 과연 인터넷은 국가의 관리체계 아래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든 독자 여러분들이 자신들의 뚜렷한 생각에 따라 내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단, 이 연재의 내용을 어렵더라도 끝까지 읽은 뒤까지 판단은 유보했으면 좋겠다.

연관글 : 2012/12/28 –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서) –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며

인터넷에 접속되는 호스트의 크기가 늘어나면서 또 한 가지 문제가 된 것은 LAN을 외부의 인터넷과 연결하는 라우터(router)의 성능이었다. 원래 라우터는 단일한 분산 알고리즘으로 구현되어 보급되었는데, 인터넷에 연결된 네트워크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새로운 형태의 계층적인 라우팅 모델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자세한 기술의 설명은 지나치게 기술적이라 일반대중을 위한 이 연재의 목적과 어긋나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중요한 것은 비용과 얼마나 빨리 대응할 수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확장성과 완결성과 같은 다양한 요구에 따라 서로 다른 프로토콜 기술들이 이용되었다는 정도로 정리하도록 하자.

TCP/IP 시대의 개막

ARPANET에서 처음에 이용되던 NCP에서 오늘날 이용되는 TCP/IP로의 완전한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1983년 1월 1일부터였다. 네트워크에 사용되던 프로토콜을 바꾼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네트워크에 참가하는 모든 참여자들이 거의 동시에 바꾸지 않는다면 엄청난 혼란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미 수년 전부터 변화를 예고하고 1983년 1월 1일 동시에 교체를 하도록 하였으며, 혹시 있을지도 모를 혼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도 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런 대규모의 전환이 예상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이는 당시만 하더라도 네트워크에 참여한 그룹들이 얼마나 열성적이고, 네트워크의 주체적인 사용자로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NCP에서 TCP/IP로의 전환은 운영을 위해 이용해야 하는 MILNET과 연구목적으로 이용된 ARPANET이 분리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게 되는데, 1985년이 되자 인터넷은 이미 수많은 연구자들과 개발자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커뮤니티로 발전하였고, 이들은 거의 매일 컴퓨터를 이용한 다양한 소통을 하였다. 특히 이들은 이메일 서비스를 활발하게 이용하였는데, 초창기에는 다양한 메일 시스템을 통해 테스트를 하였지만 이후 이메일은 인터넷의 확산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다음 회에 계속 …)

참고자료 : Domain Name System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글 : 하이컨셉
출처 : http://goo.gl/QFZM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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