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다양한 기업 지원사업들이 있다. 정부가 경제 발전을 주도하고 비교적 크게 성공한 역사가 있어왔던 만큼, 외형적으로 큰 성장을 한 현재에도 정부가 무언가 해주기를 기대하는 시각이 상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시장의 자생적인 발전보다,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설정된 다양한 목표에 맞는 투자들이 “정부지원사업”이란 이름으로 국가 예산으로 집행되고 있다.
이 자체의 옳고 그름에 대하여 왈가 왈부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시장주의자에 가깝지만, 국가 주도의 투자도 상황과 방법에 따라 효용과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어쨌건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건, 이런 정부지원사업의 옳고 그름 대신, 개별 기업이 이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기업 자신에게 도움이 되느냐의 여부이다.
정부의 기업 지원사업을 분류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극도로 단순하게 정리하면 돈을 주는 사업이 있고, 돈 대신 다른 것을 주는 사업이 있다.
1) 돈을 주는 경우는 대개 연구개발 출연 사업이다. 국가에서 유망하다고 판단한 기술, 연구, 사업 아이템을 연구/개발/상용화하는데 돈을 지급한다.
2)돈 대신 다른 것을 주는 사업은, 직접 돈을 주는 대신 외부 용역 업체에게 돈을 지급하거나, 인증, 보증, 교육 등을 통해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타트업은 이 중 전자, 즉 돈을 받는 사업은 가급적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이유는 1)그 돈을 받아도 별로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고 2)시간을 낭비하게 하기 때문이다.
받은 돈이 별 도움이 안되는 이유는, 그 사용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우선 인건비 외에 제대로 쓸 수있는 분야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단 인건비가 대부분인 SW분야 이외의 스타트업이라면, 좀 더 자금적으로 효용이 있긴 하다). 인건비라도 받는 게 어디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유연한 용처변경이 힘들다는 점 때문에 그 인건비가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적절한 지점에 투자되지 않는다.
시간낭비도 큰 문제다. 일단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들이는 노력도, 결코 가볍지 않다. 워낙 이런 지원사업에 목을 맨 업체들이 많다보니, 여러 사업을 두드려, 한 두개가 선정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선정이 되어도 시간낭비는 끝이 아니다. 세금으로 지급한 돈이니만큼 허투루 못 쓰게하는 용도겠으나, 이러한 지원사업들은 상당한 강도의 문서작업과 관리가 요구된다.
이는 초기 핵심멤버의 피와 같은 시간을 빼았기 십상이다. 지원사업에서 설정된 기간도 문제이다. 정부의 예산 집행 편의에 맞춘 사업기간은, 기업의 성패와는 전혀 다른 포커싱을 지니고 있으며, 이 때문에 사업의 타이밍을 놓치기 십상이다.
간단한 예를 통해 살펴 보자. 프로토타입을 시장에서 테스팅한 결과,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초창기의 가정은 완전히 틀린것으로 입증되었다. 당연히 재빨리 피봇팅을 해야할 시점이며, 이에 따른 예산 집행은 새롭게 짜여져야 한다. 즉 디자인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불필요한 인원은 줄이는 등), 대신 다른 파트의 인원을 늘리며, 새로운 기획을 시도해 볼 타이밍이다.
그러나 대개 정부지원사업에 해당하는 기업들은, 이미 받은 돈을 토해내지 않기 위해, 기존의 계획을 그대로 실행하게 된다. 결국 사업을 성공시키는 데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제출한 계획서를 그대로 수행 하는데 돈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돈 대신 다른 걸 지원받는 지원사업이라고 마냥 긍정적이지도 않다. 전자보다 시간 낭비가 적은 편이란 점이 강점이지만, 반대로 얻을 수 있는 개별적 효용이 크지도 않다. 용역 등을 제공하는 외부업체나 전문가의 질이 그다지 좋지 못한 경우도 흔하다. 가장 문제는 그러한 지원이 정말로 필요한 적시에 지원사업 이용이 이루어지기 힘들기 때문에,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지원을 받게 되는게 고작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지원사업의 이용은, “우리에게 ‘딱’ 필요한 것”이 “마침 공고되었을 때”를 제외하면, 크게 고려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데도 많은 스타트 업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짜를 찾아 정부의 기업지원사업을 두드리곤 한다.
그런데 정말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돈일까? 돈만 주어진다면 성공할 수 있는 기업들이, 부득이하게 정부 지원사업을 찾는 것인가? 글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미 몇번의 실패로 추진력을 잃고 힘들어진 기업이거나, 제품 개발이 단단히 오래걸리는 분야가 아니라면, 스타트업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집중을 통한 속도이다. 이 속도를 포기하고, 돈을 얻게 된다해서 사업의 성공확률은 높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낮아질 뿐이다.
그럼에도 꼭 지원사업을 유용하게 이용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문서작업 등 관리가 복잡하지 않고, 실제 사업 방향에도 잘 부합하며, 참여했던 기업들의 평판도 좋은 그런 지원제도를 찾아야 한다. 그런 지원 사업도 분명히 있긴 하니까. 물론 그런 제도를 찾는데 성공 하더라도 선정되는 건 별개의 문제기 때문에, 탐색비용을 회수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일임을 유념해야 한다.
글 : 이충엽
출처 : http://goo.gl/utlgy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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