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는 화성에서 왔을까?

Source : http://www.flickr.com/photos/35369853@N05/382065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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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남녀관계에 대한 대중 서적으로는 고전의 반열에 든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지침서이다. 근래에 인터넷으로 떠돌아 다니는 몇몇 강연들이 강변하는 주요 메시지의 원전쯤 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 책의 근본적인 주제는 제목이 시사하듯 “남녀는 다르다”는 것 이며(다른 별에서 왔기 때문에!), 따라서 “그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원만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스갯 소리로 “포기하면 편해” 정도가 될텐데, 놀랍게도 이 것은 현실적인 대안으로써는 매우 강력한 효력을 지니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정신나간(것처럼 보이는) 이성의 행태을 이해하려 애쓰기 보다, 원래 저렇다고 받아들이면 얼마나 간단한가. 저자 존 그레이는, 상담가로써 얻은 경험과 통찰을 통해 이러한 내용을 설파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책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강력히 비판받아왔다. 그들은 남녀의 차이가 과연 본질적인 것이냐에 대한 반문과 함께, 이 책이야 말로 사회가 개인의 젠더를 고착화시키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목하였다. 다시 말해, 남녀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야 말로 남녀의 차이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리는 페미니즘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그에 따른 비판을 너무 단순화시킨 감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충은 이렇다.

나는 이 두 의견 중 어느 한나만의 손을 들 생각이 없으며, 오히려 양측의 중간쯤이 실체적 진실이 아닐까 추측한다. 둘 다 일리가 있고, 둘 다 약점이 있다. 본질적인 차이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하다 여기며, 그러나 그 차이가 포기말고는 대안이 없을 만큼의 차이인지도 의문이다.

2.

어쨌거나 남녀간의 차이는 내가 이 포스트에서 언급하려는 주제가 아니다. 제목이 시사하듯 “개발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가 이 글의 주제이다.

그간 개발자에 대한 몰이해가 유독 심해왔던 것에 대한 반발인지, 요즈음은 개발자를 어떻게 대해야하는가에 대한 지침성 조언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개발자들의 특성, 개발자가 말하는 언어의 뜻, 개발자를 설득하는 법, 개발자와 함께 일하는 법 등등.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상대의 언어로 대화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지침은 긍정적인 면모가 많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에 맞추자는 것은, 얼마나 실용적이고 평화로운가.

그러나, 그럼에도 다소 찝찝한 마음이 든다.

앞서 페미니즘이 ‘화성남, 금성녀’를 비판했던 것 처럼, 그 시각이 다름을 무분별하게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걱정이 우선 든다. 어떤 직군이 지닌 특성이란 것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는 그 직군 자신이 내재적으로 지닌 것이 아닌, 환경 요인에 의해 강요된 것도 있다. 이를테면 “개발자가 밤에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은 예가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개발직군의 생체 리듬이 다른 직군과 다른 시차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밤이 되어야만 개발하기 용이한 업무환경이 된다는 것 때문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환경을 개선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란 것이다. 그런데 환경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개발자는 밤에 일하길 좋아하니, 그들을 이해해야한다”고 말한다면 곤란하다.

그리고 이렇게 개발자를 타자화 할 때, 유기적인 협력대신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 긋기로 발전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설령 개발자 직군이 전반적으로 지닌 어떤 특성이 있더라도, 개개인 단위에서까지 유효한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스타트업 단계에서는 개개인의 역량이 자기 업무에만 한정되어선 곤란하다. Growth Hacker 와 같은 존재가, 개발자에 대한 고정관념과 단정들 속에서 가능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이런 시각이, 개발자가 비개발자에게 마땅히 보여야 할 노력을 개발자 스스로 등한시하게 하는 정당화 기제로 작용하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다. 원활히 협력해 어떤 목표를 창출하는 것은, 특정 직군만이 감내해야 할 의무가 아니다. 결국 개발자건 비개발자건, 같은 팀에서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할 주체이다. 진정한 협력은 일방이 다른 일방에게 맞추는 것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우린 원래 그렇다”는 말은, 개발자건, 비개발자건 듣고 싶지 않은 대답일 것이다.

3.

앞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 대해 총평했듯이, 나는 개발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메시지에 대해 마냥 부정적이지도 마냥 긍정적이지도 않다. “화성에서 온 개발자” 식의 서술들에 대한 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 했지만, 어디까지나 찝찝하다는 수준을 넘지는 않는다. 사실 몰이해로 무장한 폭력보다는, 다름을 인정하고 포기하는 게 백번 낫다.

그래서.. 개발자는 아마도 비개발자와는 다를 것이며, 그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진 말자는 정도의 결론을 내려야겠다.

글 : 이충엽
출처 : http://goo.gl/QfxZ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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