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하십니까’ 현상은 미디어의 형태변이와 진화를 증명하는 재미난 사례다. 지금은 연일 트위터와 페이스북 얘기가 끊이지 않고 유튜브 조회수가 뉴스가 되는 시대다. 모든 일이 온라인에서 벌어진다. 그러던 중 ‘안녕들하십니까’는 전에 없는 참신한 포맷과 스토리텔링, 왠지 단순한듯 복합적인 전개방식, 다양한 소재와 신선한 등장인물로 몇 주째 고공행진중인 한편의 드라마가 되었다.
모든 사람과 사물, 콘텐츠가 연결되는 시대에 미디어는 지각변동중이다. 이번 사례는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없어지고 SNS, 신문, 방송이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루는 현상, 우리 스스로 노드가 되고 미디어가 네트워크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오가닉 미디어(Organic Media) 현상 자체이자 미디어 진화를 상징하는 이정표로 기록될 만하다. 지금부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흥행 드라마를 만든 3가지 특성
우선 도구적(오가닉 미디어에서는 컨테이너라 불리운다)측면, 콘텐츠 측면, 매개자 측면에서 정리해볼 수 있다.
- 메시지 전달 도구는 ‘대형 손글씨 벽보’
우선 오프라인 공간의 벽보가 매체로 이용되었다. 처음에는 대학 게시판에서 시작했지만 아파트 엘리베이터, 공공건물 화장실 등 물리적 공간의 벽면에 큼지막한 손글씨의 편지가 붙었다. 주소도 수신자도 없는 대형 손편지에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답을 할 수 있다. 문자를 보내면 문자로 답을 하듯 손글씨 벽보는 다시 손글씨로 답을 했다.
우리는 이미 온라인의 수많은 도구를 통해 포스팅, 댓글, 패러디, 좋아요 등 각종 방법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데 익숙해 있다. 대형 손편지 미디어는 전통 방식으로 회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직간접적인 메시지를 주고 받는 지금의 익숙한 미디어의 응용판이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일상적으로 묻고 답하고 외면하고 공감하는 커뮤니케이션에는 리듬(라임)이 있다. 각각에는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 규칙(@맨션, 리트윗, 공유방법, 공감표시 등)이 있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문화가 있다.
이번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같은 선상에 있다. 모바일이나 PC에서처럼 대화가 직접적이고 즉각적이지 않을 뿐이다. 전염병이 퍼지듯 ‘나도 안녕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의 형식(규칙)을 갖춘 메시지가 돌림노래를 하듯 전이되었다. 그리고 클릭 한번이 아니라 삐뚤빼뚤 손글씨를 벽에 붙이는 과정속에서 많은 것들이 걸러지고 신중해지는 과정은 거기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체험이 되었을 것이다.
- ‘내’가 주인공인 스토리텔링 대형 손편지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 사회, 경제, 정치 도처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핵심은 나의 고백에서 시작된다. 고백이든 반성이든 주장이든 나를 시작점으로 하기에 참여가 쉽다. 누구든지 자신이 처한 상황, 자신이 아는 이야기에서 출발하고, 커뮤니티에 가입할 필요도 없다. 취업준비생, 고등학생 엄마, 평범한 회사원 등 소속이나 직업에 관계없이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도 메시지는 이어진다. ‘안녕하지 못하다’는 고백이 전체 드라마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 각종 미디어가 참여한 매개현상
각각의 편지는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낱낱의 조각들이며 연결되어 있지 않고 한 공간에 응집되어 있지도 않다. 조직화되어 있지 않으며 커뮤니티보다 개인의 자발적 판단과 참여가 원동력이 된다.
대신 연결과 매개는 인터넷 서비스와 신문, 방송 등을 통해 이뤄졌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카카오톡 등과 같은 SNS가 대자보, 벽보를 퍼뜨리고 알리는 보조적 역할을 수행했다. 신문과 방송은 물리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흩어진 사람들을 안방까지 연결했다. 온오프라인을 취재한 다양한 뉴스는 관심을 낳고 또다시 다른 콘텐츠가 생산되는데에 일조했다.
도처에서 발생한 이벤트를 어떻게 엮느냐가 또다시 수많은 스토리텔링을 생산했다. 물리적 공간에 기반한 편지 형식은 다양한 장소만큼이나 다양한 컨텍스트를 갖고 있고 그만큼 풍부한 소재를 제공했다. (오가닉 미디어에서는 컨텍스트가 콘텐츠의 가치형성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오가닉 미디어 현상과 미디어 진화의 이정표
위의 특성들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새로운 미디어 현상을 낳았다. 흩어진 이야기는 서로가 모두에게 보내는 답장이자 거대한 편지 네트워크가 되었다. 편지를 직접 주고 받아서가 아니다. 친구의 SNS를 매개로, 신문의 댓글에서, 방송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결, 공유, 더해진 네트워크이다. 이것이 바로 오가닉 미디어이다.
오가닉 미디어는 ‘사용자의 참여를 기반으로 네트워크가 유기적으로 성장하는 미디어’를 일컫는다. 아래 스키마는 이와 같은 오가닉 미디어의 형성 과정을 참여자 행위를 기반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오가닉 미디어 관점에서 3가지 시사점을 종합해 볼 수 있다.
1. 콘텐츠의 자생력과 네트워크의 성장
이야기가 죽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말을 걸고 답을 기다리는 ‘안녕들하십니까’의 기본 규칙을 응용하여 콘텐츠가 이어지고 더해지고 파생되었다. 전통 미디어에서는 콘텐츠를 전달함과 동시에 이야기가 끝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콘텐츠가 자생력을 가지고 지속적인 이슈를 생산하고 진화했다.
처음에는 철도 민영화 등 정치적 이슈로 시작했지만 점차 각자 처한 위치에서 다양한 스토리가 되었다(정치적 견해나 메시지의 옳고 그름 등의 이슈는 논외로 한다). 우리 각자의 삶의 이야기만큼 다양한 소재가 계속 될 수 있고 그에 따라 등장인물도 계속 바뀔 것이다. 대형 손편지의 소재와 주인공은 셀 수 없을 것이다. 손편지를 쓰든 보도를 하든 좋아요를 누르든 메시지 공유와 관련된 모두가 참여자이고 생산자이며 곧 매개자이다.
콘텐츠가 자생력을 가지고 살아있는 한, 미디어도 살아있다. 이 때 미디어는 이미 만들어진 콘텐츠를 일방향으로 배포하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미디어를 만든다. 우리가 콘텐츠를 만들고 그 콘텐츠의 성장이 미디어를 진화시킨다. 이러한 현상을 만든 것은 오프라인의 대자보도, SNS도 신문도 아니다. 앞으로는 개별적인 미디어가 아니라 참여자 전체가 미디어를 이룬다. 개별 미디어에서 연결된 네트워크로 중심축이 이동된 것이다.
2. 항상 연결된 미디어(나)의 잠재성
우리는 스마트폰 등 각종 도구를 사용하여 언제든지 메시지를 생산하고 반응할 수 있는 잠재적 미디어이다. 더 이상 커뮤니티나 소속 정당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지 않는다. 내가 주인공이며 내가 바로 미디어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우리가 습득한 것은 ‘직관적’으로 반응하는 능력이다. 생각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빠르고 본능적으로 적응한다. 우리의 활동은 동시다발적이며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상호전이된다. 도처에 흩어져있는만큼 미디어의 규모도 커진다. 한 지점에 모인 숫자가 영향력을 산정하는 기준이 아니다.
그러므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이원화는 더이상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이제 완전한 오프라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휴대 미디어를 통해 ‘항상 연결된’ 상태의 모든 개인이 노드가 되는 이상 인터넷 공간과 물리공간은 개인의 활동에 따라 연결되는 하나의 네트워크이다. 페이스북과 신문, 방송, 휴대폰의 서비스 등이 서로 인용하고 참조하면서 형성하는 네트워크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각곳에서 벌어지는 이벤트와 언론보도, 반응 등 ‘안녕들하십니까’ 관련 모든 콘텐츠가 매개되어 있다.
3. 네트워크의 노드로 자리잡는 전통 미디어
앞으로 미디어는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네트워크로 정의될 것이다. 신문, 방송, 블로그 등의 메시지 전달도구는 더이상 개별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나’의 활동이 만드는 네트워크 지형안에서 모든 메시지 전달도구는 매개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앞으로 이야기의 주인공은 팔로워가 많은 사람도, 방송사도 언론사도 아닌 ‘나’ 자신이 될 것이다.
대형 손글씨의 벽보 형태는 언젠가 모습을 감출 것이고 ‘안녕들하십니까’ 를 보도하는 신문 기사도 페이스북의 좋아요도 멈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다. 어떤 매체를 통하든 어떤 메시지든 상관없다. 내가 커뮤니케이션의 주인이 되는 한 스토리텔링은 이어지고 네트워크는 성장할 것이다. 우리는 살아서 진화하는 네트워크의 생산자, 참여자, 매개자이며 오가닉 미디어 자체이다. 우리 자신이 미디어의 주인이 되는 세상이 시작되었다.
글 : 오가닉 미디어랩
출처 : http://goo.gl/Gjss7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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