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밴드의 성공에서 배워야 할 점
혜성처럼 등장한 카카오톡이 주목받으며 상대적 박탈감에 존재 가치가 희석되어가던 네이버. 그러나 일본에서 시작한 라인으로 세계적인 모바일 기업의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페이스북과 카카오 스토리가 모바일 커뮤니티 시장을 장악하면서, 미투데이로 모바일 시장을 준비했던 네이버의 자존심이 구겨지나 싶었는데 다시 밴드라는 서비스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의 이같은 성공은 삼성전자의 ‘치열함 속의 fast follow’ 전략이나 애플의 ‘통찰력 기반의 혁신적인 시장 선점’, 구글과 같은 기술 기반의 치밀한 상품 경쟁력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버릴 것을 과감하게 버리고, 선택과 집중 기반의 조직력 덕분입니다.
네이버톡의 실패, 라인의 부활
네이버의 모바일 대응은 신속하지 않았습니다. 카카오톡과 다음의 마이피플이 빠르게 시장을 선점 하며 성장 할 때에서야 네이버는 네이버톡이라는 모바일 메신저를 만들며 대응했습니다. 하지만 네이버톡은 카카오톡의 빠른 시장 잠식에 제동을 걸 수 없었죠. MSN 메신저가 장악한 데스크탑 메신저 시장에 뒤늦게 진출한 네이트온이 무료 SMS와 한국 시장에 특화된 기능 차별화로 반전을 했던 것과는 달리 카카오톡의 독주는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시작한 라인은 한국이 아닌 세계를 전쟁터로 삼아 한국과 해외로 뻗어나가며 카카오톡의 한국 시장 선점을 따돌릴 수 있었습니다. 라인의 성공은 될 성 싶은 새싹을 빠르게 파악하고 네이버톡에 투입된 자원을 과감히 라인에 투자하며 선택과 집중을 한 덕분입니다. 사실 본체인 한국에서 이미 먼저 시작된 네이버톡을 버리고 지사인 일본에서 뒤늦게 시작한 라인으로 전환 배치하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리소스가 집중적으로 라인에 배치되면서 라인은 무럭무럭 성장했습니다. SK커뮤니케이션즈의 네이트온에서 경험했듯이 메신저의 핵심은 안정적인 메시지 전달입니다. 카카오톡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 뛰어난 개발자들이 배치되었고, 이는 초기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라인 역시 네이버의 15년 넘는 인터넷 사업 경험 속에 확보한 슈퍼 개발자들과 기술력이 초기 집중적으로 투입될 수 있었기에 지금의 성공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네이버 속 미투데이에서 캠프모바일의 라인
사실 네이버의 모바일 전략이 초기 시장에서 눈에 띄지 않았던 것 뿐이지 히든 챔피언을 키워왔었고 그 중 하나가 미투데이입니다. 2007년 2월에 시작된 미투데이는 가벼운 마이크로 블로그로 웹 기반으로 시작되었지만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모바일 시장이 확대되면서 모바일 대응을 빠르게 추진해왔습니다. 네이버는 2008년 약 22억에 미투데이를 인수하며 모바일 커뮤니티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2011년에는 미투데이를 네이버 모바일 주력 서비스로 삼기 위해 CF를 비롯한 다양한 마케팅에 크게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미투데이는 페이스북과 카카오 스토리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고 네이버는 2012년 8월 새로운 모바일 커뮤니티인 밴드를 출시했습니다. 당시 다음은 네이버보다 3개월 앞서 캠프라는 모바일 카페를 출시해 새로운 커뮤니티 시장 선점을 본격화했습니다. 이미 미투데이로 시장 장악을 했던 네이버로선 상당한 비용을 투자하며 키워가던 미투데이를 버리고 새로운 밴드에 집중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인처럼 새로운 새싹을 틔웠고, 그 새싹을 더 키우기 위해 2013년 2월 자회사 캠프 모바일을 만들어 밴드를 네이버의 울타리에서 떼어내 광야로 내보냅니다.
일반적으로 서비스를 키우려면 큰 울타리 안에서 든든한 리소스와 안정적인 시스템으로 지원 사격을 받아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 오히려 네이버는 밴드를 더 성장시키기 위해 울타리에서 내보내는 상식 밖의 전략을 선택한 것입니다. 우려와 달리 밴드는 2013년말 성공적으로 한국 시장에 안착했으며 글로벌로의 진출을 노리고 있습니다. 밴드는 라인과의 찰떡 궁합으로 커뮤니케이션과 커뮤니티 2가지 서비스를 넘나들며 네이버의 글로벌 쌍두마차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채우려면 비워야 한다.
라인과 밴드는 네이버톡과 미투데이를 버리고 네이버 조직에서 탈출하면서 가능해진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서비스를 확장해갈 수 있었습니다. 만일 라인과 밴드가 네이버에 자리 잡고 있었다면 네이버가 가진 레거시(legacy-웹의 유물)로 인해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을 것입니다. 다음은 모바일에서 네이버보다 먼저 시장 진입을 하고 초기 마이피플, 캠프 등의 훌륭한 서비스를 만들었지만 지금 어느 하나 네이버나 다른 스타트업과 비교해 경쟁 우위에 있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이들 서비스가 다음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울타리가 꼭 회사라는 틀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 조직, 시스템 그리고 사고, 의사결정 체제 등을 아우릅니다. 이러한 것과 단절하는 눈에 띄는 방법이 결국 조직의 분리이죠. 하지만 조직을 분리하지 않고도 혁신을 해낼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애플의 카리스마 리더십과 구글의 80:20 업무 정책이 훌륭한 사례이죠)
네이버가 가진 경쟁력은 웹, PC 속에서나 통용될 뿐 모바일 세상에서는 오히려 걸림돌입니다. 그 걸림돌을 치울 때 새싹은 더 커질 수 있는 법입니다. 네이버가 만일 라인, 밴드를 네이버 내부에서 키우려 했다면 네이버의 의사결정 구조와 네이버가 보유한 수 많은 서비스들과 연계해서 상생하려는 쓸데없는 도움 아닌 부담의 발목에 잡혀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했을 겁니다.
모바일 로컬 서비스로 차분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열두시가 네이버가 인수해 키웠던 윙스푼과 비교해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이유 역시 울타리 밖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가지고 있는 경쟁력(상품 인지도, 브랜드, 트래픽, 기술력, 시스템 등)이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발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초기 불꽃을 만들어내는 발화점은 될 수 있지만 계속 불타오르게 하는 땔감이 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 경쟁력이 활활 타오를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새로운 플랫폼(모바일, 스마트TV, IoT 등)에서 새로운 서비스(앱, 콘텐츠, Device, Product)로 혁신을 할 때, 고정관념과 기존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득이 아닌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성공 공식이 득보다 실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업무와 프로젝트는 이같은 고정관념과 과거의 공식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요? 보고를 위한 보고, 실행보다는 타협과 논쟁을 위한 회의에 더 큰 시간을 보내며 발목이 잡혀 한 발도 떼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열심히 걷고는 있지만 가진 것을 지키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글 : 김지현
출처 : http://goo.gl/AedKv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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