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정확하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컴퓨터의 디지털 기억과 달리 인간에게는 크게 2가지 종류의 기억이 있다. 단기기억(또는 작업기억)과 장기기억이 그것이다. 단기기억은 해마(hippocampus) 지역이 주로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장기기억은 대뇌 전반에 산재되어 있고, 기억을 회상하려고 할 때 활성화된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뇌과학 연구결과가 밝혀낸 것이다. 물론 컴퓨터에도 램(RAM)으로 접근할 수 있는 주기억과 하드디스크나 최근에는 클라우드 저장장치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보조기억으로 나누어볼 수 있지만, 이는 접근의 속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컴퓨터의 디지털 기억과 인간의 뇌의 기억이 다른 점은 인간은 감정에 따라 경험과 기억의 정도가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이는 편도체(amygdala)라고 부르는 뇌의 부위가 인간의 기분에 따라 기억을 처리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쟁이나 테러와 같은 끔찍한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기억을 쉽사리 떨쳐버리기 어려우며, 당시의 영상을 생생하게 떠올리는데 비해, 별다는 감정이 없었던 경험들은 시간과 함께 쉽게 잊혀지며, 기억이 떠올라도 희미하게 조각조각 기억을 해낼 뿐이다.
그에 비해 컴퓨터는 어떤 종류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올라오더라도 명확하게 저장하고, 필요로 할 때 꺼내어 볼 수 있다. 인간의 뇌가 기억을 코딩하는 방식은 이처럼 순간순간 달라지며, 주변환경의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신경망이 계속해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어떤 것을 회상할 때마다 계속해서 뇌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의 나의 기억과 회상을 한 이후의 기억은 완전히 똑같을 수가 없다.
디지털 기억은 굉장히 안정적이다. 만약 디지털 기억이 인간의 뇌와 비슷하게 계속해서 변하고,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이미지 파일이 있는데, 자주 접근하는 사진들은 계속해서 그 품질을 유지하지만, 잘 보지 않았던 사진들의 이미지의 질이 나빠지고, 메모리에 차지하는 공간이 줄어들면서 압축의 정도가 높아지는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학습이 이루어지면 해당 영상이 더욱 좋아지고 연관성도 높아진다. 어떤 경우에는 알아서 잘 쓰이지 않았던 기억들은 완전히 잊혀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컴퓨터의 경우에는 대용량의 장기 보조기억장치로 이관시키면 된다.
주변 환경과 관련해서는 소셜 미디어를 연결하는 상황을 가정해 볼 수 있다. 사진을 공유하면, 해당 사진들에 어떤 것들이 태그되고, 어떤 댓글과 캡션이 달리는지에 따라서 디지털 기억이 변화하도록 할 수 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어떤 위치에서 사진을 올렸을 때,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다른 사진을 올려주거나, 댓글을 달아주면 해당되는 디지털 기억의 연관성이나 집단성, 영향력 등이 달라지도록 디지털 기억을 변화시키고, 연관성을 추출하고 향후에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의 디지털 기억이 보다 완벽한 재현을 중시하고, 거대한 용량을 처리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렇게 불완전성을 가지고 맥락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디지털 기억을 처리하는 기술이 앞으로는 더욱 중요해 질지도 모른다. 디지털 기억과 관련하여 또 한 가지 미래에 고려해야 할 점은 기술이 지나치게 발전하고, 인간에게 편리해지며, 인간을 닮을수록 인간은 덜 생각하고, 덜 창의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컴퓨터와 기계가 너무 인간적이 되는 나머지,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소통을 하는 시간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인간들 사이의 관계성이 좋지 않아지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닐 것이다. 디지털 기억과 컴퓨팅 환경에 있어서 인간과 사회가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고려하고, 적절한 균형점에 대해서도 고려할 때가 되었다.
참고자료 : So you’re a cyborg — now what?
글 : 하이컨셉
출처 : http://goo.gl/xgtZ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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