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IT문제 이야기를 하면 늘상 나오는 문제는 SI업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정부 주도하의 해당 산업이 IT환경에 미치는 역할은 지대하지만 정부기관에서 만든 SW의 소비자로서 정말 해당 서비스의 품질과 가격이 경쟁력이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들곤 합니다. 예전에 이명박 대통령의 영부인이 주도했다는 김치 세계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던 사이트의 경우에도 품질은 조악했으며, 해당 서비스에 사용되었던 서버의 가격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비싸게 책정되었습니다.
제한된 리소스에서 액티브 사용자를 한 명이라도 더 모으려고 치열한 노력을 하며 경쟁하고 있는 일반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에게는 각종 지자체의 홈페이지와 협업하는데 의의가 있는 프로젝트들이 마치 딴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다시 말해서 많은 분야에 혁신을 가져오고 있는 IT산업에서 조차 정부의 프로젝트들은 비효율적으로 보입니다. 단순히 정부기관이 무능해서 일까요? 혹은 부패해서 일까요? 그런 일차원적인 비판보다는 어떤 점부터 개선하면 좋을지 같은 건설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IT 산업,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많은 중복 리소스를 사용하는 비효율적인 대한민국 정부의 IT 산업
IT산업은 수 많은 프로토콜과 규약이 표준화되어 있어 높은 호환성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이 호환성은 각 기능간 경쟁을 원활하게 하여 기능별 최고의 기술들로 양질의 IT 기술을 만들어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상적인 결과 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최신 IT기술들은 과거에 비해 눈부시게 발전했으며 이 배경에는 ‘재사용’이라는 기본 속성이 있었습니다. 더 이상 개발 단계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개발된 소스와 기술을 사용할 수 있으니 효율이 대폭 향상된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정부의 IT프로젝트들은 대부분 턴키(turn-key) 형태로 발주됩니다. 물론 소프트웨어 분리발주 등에 대한 논의는 피상적으로 있어왔으나 예산과 프로젝트를 집행하는 기관들이 독립기관으로 형성되어 있어 서로의 결과물에 대한 재사용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를 만드는 기업들 자체가 프로젝트 단위로 뭉쳤다 흩어지니 효율적인 재사용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런칭, 인수, 유지밖에 못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IT
SW개발과정 중 대부분의 SI프로젝트들은 폭포수모델의 양상을 보입니다. 실제적으로는 SW는 납품해야 하는 어떤 제품으로 여겨지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SW를 만드는 이들과 이를 인수해서 SW를 사용하는 이들이 분리되어있고, SW가 제작이 완료된 이후에는 최소한의 유지비용으로 SW가 유지됩니다. 기능개선은 추가 비용일 뿐이고, 많은 기능개선은 애당초 잘 못 만들어졌다고 여겨져 버립니다.
그러나 성공한 SW서비스들을 보면 초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서비스는 거의 없습니다. 런칭은 시작일 뿐, 오히려 그 때부터가 본 게임의 시작입니다. 런칭 이후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의 반응을 감지 하는 일입니다. 때문에 웹 서비스에는 수많은 로그들이 기록되어 있고 이 로그들을 기반으로 통계를 뽑고 사용자의 액션을 분석하여 사용자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기능을 찾아내어 필요 없이 관리포인트가 많아지는 기능들은 제거해 나갑니다. SI프로젝트들이 경쟁력을 가지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잘못된 KPI, 전시행정으로만 이용되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IT
IT서비스의 장점은 이용자의 상세 통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여 이를 KPI로 삼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통계를 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의미 있는 통계와 KPI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IT프로젝트들은 KPI가 제대로 잡혀있는지 의문입니다. 특정기간에 방문자 수로 측정하는 것도 잘못된 KPI입니다. 정부기관 사이트는 PV를 확보해 광고로 수익을 내야하는 사이트가 아닙니다.
그런데 수익을 내기 위한 광고 집행이 목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체류시간이나 PV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정부 기관 사이트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성격에 맞는 KPI를 세우는 일입니다. 또 다른 예시를 하나 더 들자면 예산을 사용하기 위해서 혹은 전시 행정을 위해 진행되는 프로젝트입니다. 소위 명목상 진행하는 데에 의의가 있는 프로젝트들이 대부분입니다.
진짜 IT가 힘을 얻으려면?
대한민국 정부의 IT기능 조직 필요
정부는 IT서비스 관련한 기능조직을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대형 IT서비스는 국내의 경우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털의 조직을 벤치마킹 할 수 있겠습니다. 국내 대형 포털의 조직 구조와 같이 인프라를 전담하는 조직, 보안을 전담하는 조직, UX를 전담하는 조직, API를 전담하는 조직, DB를 전담하는 조직, 개인정보를 전담하는 조직 등의 세분화는 모든 프로젝트의 품질을 일정 이상 수준으로 향상 시키며 각 기능별 관점에 최선을 다하게 만듭니다. 오늘날 글로벌 IT 대기업들이 그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도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운영인력과 개발인력의 밀접하고 지속적인 관계 형성
대형 IT 포털에는 기능조직 외에 서비스조직이 있습니다. 각 서비스 조직은 실제 운영과 기획 업무를 담당하며 운영과 기획을 동시에 진행하므로 실질적으로 효율적인 기능들을 만들어 냅니다. 또한 이를 위해서 각 기능조직과 밀접하게 프로젝트를 운영하므로 부족한 관점들을 채워나가면서 진행합니다. 이때 태스크는 일방적으로 기획과 운영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기능조직으로부터의 태스크들도 수행됩니다. 이러한 운영인력, 곧 서비스조직은 정부기관으로 말하자면 현존하는 조직이 될 수 있으며 기능조직은 앞에서 말씀 드린 조직들이 될 수 있습니다.
전시행정이 아닌 실질적 효과를 중심으로 한 KPI측정
실제 운영할 사람들이 기획과 개선을 하게 되면,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KPI를 세울 수 있습니다. 정부 기관 사이트에서 PV를 기준 삼는 일은 생겨나지 않을것입니다. 전시행정을 하더라도 앞에서 말씀 드린 기능 조직의 지원을 받으면 최소한의 노력과 비용으로 가능합니다. 결과적으로 말씀 드리면 정부기관의 서비스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는 포털 정도의 전문가 조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이끌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리더가 필요합니다.
진짜 IT가 힘을 얻게 되면 어떤 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비용 절감과 일자리 창출
무엇보다도 비용이 효율적으로 쓰이게 됩니다. 전문가 유치 비용이나 새 조직 구축 비용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IT기업들은 서비스 구축을 위한 인력과 인프라비용은 필수적입니다. 적절히 구축된 IT기술의 적용은 고비용의 인력과 인프라를 상쇄할만한 효과를 대부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새 조직은 일할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네이버와 같은 대형 IT 기업들의 고급 인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바로 정부기관이라고 여겨집니다. 기존 업체들의 인력 소실 문제가 대두될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된 아웃 소싱 역시 내부 전문가 없이는 사실 불가능합니다.
IT환경 개선
전문가들이 영입되어 IT의 프로젝트들이 감시되고 추진된다면, 기술력이 좋은 기업들이 대우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유착 관계에 있었던 수많은 기업들과 불합리한 수주 등 이해관계 때문에 일자리의 감소 및 기업들의 연쇄 도산을 우려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기반의 정상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고 중간 마진이 줄어든다면 결과적으로 절약된 비용은 벤처 같은 산업계에 재투자 비용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IT를 입으면 경쟁력이 된다
효과적인 IT활용은 경쟁력이 됩니다. IT 기술의 활성화 전 노트에 숫자들을 빼곡히 적어두고, 가로 세로로 합하고 검산 하던 일이 떠오릅니다. 결제 문서나 제안서도 DOS용 아래한글로 글자 하나하나를 수정하고, 줄 바꿈이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인트라넷에서 간략히 핵심 용건만 작성하고 결제를 누르면 휴가 중에도 모바일로 검토하고 결제를 할 수도 있습니다. IT는 실용의 학문입니다. 개발자의 최고의 조건은 귀차니즘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귀찮기 때문에 무언가를 만들어 자동화 시키고 효율화 시키고, 재사용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에도 번지르르한 겉포장이 아닌 이러한 것을 기대합니다.
글 : 숲속얘기[양병석]
출처 : http://goo.gl/9NP3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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