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미디어 플랫폼 “Medium”에 발행된 전 애플 모바일 디자이너 Jordan Price(현직 프리랜서)의 글을 벤처스퀘어의 에디터 jay가 번역했습니다. 이 글은 벤처스퀘어의 입장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한 달 전, 나의 모습은 대략 이러했다. 다양한 업계에서 디자인 일을 하고, 소규모 업체의 웹사이트를 만들고 ,실패하거나 성공한 여러 스타트업에 몸을 담고 있기도 했으며 여러가지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나는 애플에서 인터뷰 제의를 받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내 포트폴리오를 애플에 입사할 수 있는 완벽한 형태로 보완했다. 내 눈에 비치는 애플은 가장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일해야하는 곳이었다.
애플 측은 인터뷰 날짜를 잡았다. 나는 디자인 팀 앞에서 선보일만한 번뜩이는 질문들과 애플의 디자인 문제들로 스스로를 중무장시켰다. 애플처럼 규모가 큰 회사는 최종결정 전에 여러번의 인터뷰를 거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인지 내 인터뷰가 세 사람 앞에서 한시간 이내로 이뤄지는 소규모 인터뷰라는 것을 알았을 때 조금 놀랐다. 인터뷰 내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쿠퍼티노(애플의 본사가 있는 도시)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면서 내가 했던 인터뷰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 생각에는 꽤 괜찮은 인터뷰같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이 나를 뽑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스스로 실망하고 싶지않았기 때문이다.
결과는 당일에 나왔다. 내 인터뷰는 생각보다 잘 된 모양이었다. 애플은 나에게 계약직 모바일 매니저직을 제안했다. 우와! 얼마나 기뻤는지 나는 전화를 받으면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내가 소식을 부모님들과 가족에게 전해주었을 때 그들 또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페이스북에 애플에 채용되었다는 소식을 올리자 나는 내가 태어나서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Like의 수를 확인했고, 축하를 받았다. 심지어 내 딸이 태어났을 때보다 더 많은 like를 받았다. 몇 년 전에는 친구였지만 이제는 연락이 끊긴 친구들조차 나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나는 트위터에 내 직함을 변경했고,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팔로우 신청을 하기 시작했다. 1주일 전만 하더라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었다. 지인들과 나는 내가 스스로를 축하하기 위해 간단한 술자리를 만들었을 때 매우 즐거운 밤을 보냈다. 내가 해낸 작은 업적에 사람들이 기뻐해주는것은 나에게 아주 행복한 일이었다
출근 하루 전, 밤새 잠에 들 수 없었다. 긴장되면서도 매우 설렜다. 애플에서부터 직업제의를 받은것이 마치 디자이너로서의 내 재능을 인정받은 것 같았다. 나는 애플로 나를 이끈 내 과거의 긴 여정을 생각했다. “내 커리어에 애플 입사는 대체 무슨 의미일까? 나는 어떤 일을 하게될까? 이 모든게 나를 어디로 이끌까? 내가 지금까지 하고 있던 아이폰 앱 작업을 끝낼 수 있을까?” 그랬다. 아주 많은 질문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드디어 출근 날. 출근하자마자 긴 업무 시간과 통근 시간때문에 부담감을 느꼈지만 나는 적어도 악명높은 tech-people들 사이에 있을 수 있었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하는 ‘와이파이가 가능한’ 통근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특히 이 버스에 관심이 갔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랐기 때문에 tech boom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도시 모습을 본 세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시를 파괴하는 주범들 중에 하나가 되어있었다).
거의(내가 여기서 쓴 거의라는 단어는 곧 한번도라는 의미이다)일주일동안 내 딸을 볼 수 없었다. 근무시간이 너무 빡빡했기 때문이다. 소득 또한 줄었지만, 이렇게 훌륭한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은 곧 내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일 자체를 시작하는 것도 순탄치 않았다. 애플에는 너무나도 많은 비밀번호와, 계정과, 로그인 창이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직원들의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모든 과정은 최첨단의 기술로 만든 제품을 가진 회사에겐 꼭 ‘필요한 악마’ 로 여겨졌다. 불편했지만 나의 밝은 미래를 생각하면 가벼이 여겨졌다.
나의 직속 상사는 (애플에서는 producer이라고 불린다) 그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농담으로 포장한 심한 말로 모욕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나에게 모욕감을 주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특정한 일을 하거나, 하지 않으면 내 재계약은 물 건너 갈 것이라고 상기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나의 뒤를 그가 딜버트의(미국 S. Adams의 신문 연재 만화에 나오는 승진·실직 우려로 전전긍긍하는 회사원) 보스인마냥 맴돌며, 초기 단계의 디자인을 아주 급한 듯이 당장 끝내라고 재촉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깔보거나 무례한 발언을 하는데 거리낌이 없었지만 나는 그가 내 팀 멤버들에게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불쾌했다. 나는 내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회사에서 일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보잘것없는 작은 소매점에서 일하는 사춘기소년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밝은 면을 보려고 노력했다. 세계적 수준의 디자이너들과 세계적 수준의 제품들이 있는 애플에서 일하기 때문이었다. 내 동료들은 디자인에 대해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수준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애플이 디자인 과정에 쏟아붙는 관심과 디테일을 사랑했다. 픽셀 하나 하나, 스크린, 사양 그리고 UX 디자인은 검토되고 또 검토되었다. 구내 까페테리아의 음식은 훌륭했고, 내 새 아이패드 에어가 좋았다. 하지만 상사에게서 나오는 농담, 모욕 그리고 부정적인 마인드는 일을 하는데 큰 방해가 되었다. 금요일이 빨리 오기를 빌었으며 일요일 저녁에는 죽어갔다. 가족들과 친구들 중 몇몇은 내가 애플에서 일하는게 생각보다 좋지 않음을 듣고 싶어했다. 그들은 “좀 참아보렴”, “넌 더 큰 사람이 되어야해” 혹은 “넌 인제 시작했으니 그만둘 수 없어” 라고 말하기를 좋아했다.
문제의 그 날 오전,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 집 앞에 서는 애플 버스를 놓쳤다. 길이 살짝 막히는 상황에서 직접 운전해 회사에 출근했다. 매일 아침 운전하지 않아도 되었음이 감사했다. 하지만 애플에서 일하기 전 내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주었던 때가 더 좋았다는 생각을 했다. 출근하자마자 나는 바로 다른 미팅에 참석해야했다. 미팅은 잘 마무리되었고 나는 내 책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흔한 인사치레도 없이, 내 상사는 농담으로 교묘하게 표정된 모욕감을 주는 말을 던졌다. 무시하고 일을 다시 하려 노력했지만,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야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걸 알려야하나? 내가 계약이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다른 팀으로 옮길 수 있을까? 쿠퍼티노에 이렇게 계속 있으면 언제 새 직장을 찾지? 상사에게 한 방 먹일까? 아니야 그러면 안돼.
그리고 점심시간에 나는 아이패드의 데이터를 다 지우고, 내가 작업하던 파일들을 서버에 깔끔하게 정리하고 내 모든 물건들을 책상에 두고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상사에게 쪽지를 남겼다. 그는 내 인생 중에 최악의 상사이며 애플이 나의 이력에 얼마나 도움이 되든 더 이상 당신 아래에서 일을 할 수 없다고 말이다.
나를 애플과 연결시켜 주었던 회사는 내가 그들과 애플의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었기 때문에 심한 유감을 표시했고, 회사를 박차고 나온 행동이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라 평가했다. 스스로도 내 행동이 자랑스럽지는 않으며, 오랜 기간 알았던 헤드헌터와 관계가 깨진것도 매우 슬프게 생각한다. 애플에서 일하는게 된 것이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 내가 이로 인해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것은 결국 이렇다. 나는 정말로 애플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글쎄, 그닥이다.
글 : Jordan Price
출처 : http://goo.gl/qO7JMF
Skype: hello.jordan
홈페이지 : http://www.j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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